中國武俠小說
古龍 孤星傳 / 第三章 歷盡滄桑 본문
歷盡滄桑
(역진창상 : 세상만사의 모든 변화를 다 경험하다.)
배각은 우발적인 의기로 결과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마침내 비룡표국의 담장을 넘어 나갔다.
그는 눈을 감고 담장에서 땅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해 결국은 땅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전신을 뒤흔드는 통증이 몰려왔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골목으로 양 끝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배각은 곰곰이 생각해보고는 왼쪽으로 가면 비룡표국의 대문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바로 긴 골목의 우측으로 걸어갔다.
이때 그의 마음은 흥분되어 있었다. 비록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환상으로 가득 차있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그가 아직 현실적인 문제로 시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나서자 비교적 넓은 청석판로가 있었다. 또한 좌우로 뻗어 있었다. 그는 본시 목적지가 없어서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우측으로 걸어갔다.
이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노상엔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녹색의 관교 하나만 지나갔다. 앞에는 여덟 명의 하인이 있었는데 ‘숙정(肅靜)’ 과 ‘회피(迴避)’의 팻말을 메고 있었다. 틀림없이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 경관(京官: 중앙관리)이다. 그는 관교가 지나가도록 멀찌감치 길가로 피했다.
관교의 창가 주렴이 내려져있었다. 그는 안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지 잘 볼 수 없었다. 그는 호기심을 갖고 추측했다.
‘안에 앉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국, 그는 자기가 대신 결론을 내렸다.
‘전부 「명리(名利)」 뿐이겠지!’
그는 슬그머니 비웃고 자기가 저 관교 안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더 즐거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자기는 완전히 자유로워 어떠한 일에도 구속받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의 마음은 마치 날개가 돋친 듯 아득히 먼 곳까지 날아갔다.
그는 연두색(水湖色) 단삼을 입고 있었고 발에는 바닥이 얇고 날쌘 장화를 신고 있었다. 이것은 무예를 연습할 때의 차림으로 아주 편리한 차림으로 걷고 있었다.
이 길을 돌아나가니 작지 않은 시장이 있었다. 이때는 이미 아침 시장이 열려있었다. 시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뚫고 지나갔다. 마음은 몹시 홀가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파왔다.
이것은 그를 괴롭힐 첫 번째의 현실적인 문제였다. 시장 안에는 물건이 매우 많았다. 북경성내에서 이름난 ‘당호로(糖葫蘆)’, ‘첨산사(甜山楂)’, ‘조아고(棗兒糕: 대추떡)’등 모두 그가 평소 즐겨 먹던 것들이었는데 지금 보자 더욱 군침이 돌았다. 조금도 먹지 못해 한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주머니엔 한 푼도 없었다. 그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맘때 그가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이 돈의 힘이었다. 돈의 귀중함을 아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문제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가 그를 덮쳤다.
생활, 이것은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삶에서 가장 부족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금전이다. 금전이 거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배각은 곤혹스러웠다. 우선 그는 당장 오늘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더욱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걱정스러웠다.
음식을 팔고 있는 노점상이 그가 좋은 옷차림인 것을 보고 모두 그를 향해 앞 다투어 호객행위를 했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모두 거절했다. 사실 그는 음식을 조금 사먹는 걸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배고픔의 정도에 따라 그는 내심 공포심이 증가했다.
‘오늘 점심은 못 먹지만 저녁은 먹을 거야. 그래 오늘 저녁은 굶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내일은?’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부 쓸데없는 재주 말고 그는 삶을 도모할 방법은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그는 조금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기정의 결심을 곧바로 바꾸려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시는 자기의 결심을 바꾸지는 않겠다.’
그에게는 그런 바보스러움이 있었다.
그는 마음속에 갖가지 상념을 안고 인파를 따라 걸었다. 인파에 비해 몇 배나 훨씬 혼잡했다.
※ ※ ※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가볍게 치는 사람이 있어 그는 망연히 몸을 돌렸다. 초라하게 생긴 남자가 웃으며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그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이상해졌는데 놀랍게도 달아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 사람이 빨리 걸으면 그도 빨리 걸었고 그 사람이 천천히 걸으면 그도 천천히 걸었다. 그가 비록 잠재의식이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이미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초라한 남자는 시장을 빠져나와 돌아 돌아서 아주 비좁은 골목으로 갔다. 그 골목의 양 옆에 있는 집들은 아주 낮게 지어져있었지만 다층집이었다. 게다가 골목은 너무 좁아 맞은 편 창가에 넣어놓은 물건을 이 창문을 따라 손을 뻗으면 거의 잡을 수도 있었다.
몇 집 밖에 없는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 그 사내는 조그만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각은 이미 마법에 걸려 따라 들어갔다. 집은 작고 더러웠는데 아래층엔 몇 명의 괴상망측한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고성에 웃고 욕하는 것이 완전히 여성의 멋이라곤 한 점도 없었다.
그 여자들은 사내가 배각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앞으로 모여들어 그의 곁에 둘러섰다. 우르르 몰려들어 배각의 몸을 만져대며 말했다.
“이 상품은 진짜 나쁘지 않은데.”
한편 어떤 사람은 그의 얼굴을 더듬고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봐봐, 이 녀석의 피부가 정말 부드럽네. 얼굴이 불면 터질 것 같은 게 꾸며놓으면 분명 여자 같을 거야.”
배각은 약간 흐릿하게 화가 났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혼돈 속에 빠져있었다. 화가 난 이 느낌도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 사내는 그 말을 듣고는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그곳을 밀어젖히자 보면 볼수록 어색한 ‘여인’이 말했다.
“내가 위층으로 올라가 그를 위해 화장을 해줘야겠다.”
입을 벌려 웃는데 입안의 치아가 전부 누런색이었다.
그 사내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배각도 위층으로 따라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큰 침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침상 밑에 있는 나무상자 안에서 몇 가지 여성의복을 꺼내서는 배각의 몸에 대보더니 진홍색의 옷을 택해서는 침상위에 놓았고 나머지는 거두어서 상자 안에 넣었다.
그는 또한 배각을 위해 붉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탁’하고 배각을 침상으로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방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거 같았다.
이때 배각은 완전히 한 구의 영혼 없는 시체 같았다.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혼미스러워 이 일이 실제로 아주 기괴하다는 것을 흐릿하게 깨달았을 뿐이다.
바로 그 때는 침대로 밀린 모습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방문이 열리고 뚱보가 들어왔다. 배각을 들여다보고는 머리를 내밀고 밖에 있는 사람과 몇 마디를 하고는 쾅하고 문을 닫았다.
뚱보는 술 냄새를 풍기며 침상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와서는 손을 뻗어서 배각의 옷을 벗겼다. 알고 보니 이곳은 ‘상고단자(像姑團子 : 像姑가 여장남자 배우인 듯 싶지만 ’남창’을 이르는 것 같음. 남창집 정도의 뜻 인듯)’였다. 그 초라한 사내는 강호의 비천한 수법인 ‘박화수법(拍花手法 : 미혼약을 살포하는 수법)’으로 배각을 데려온 것이다. 우습게도 배각이 너무 잘생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일에 대해 배각은 전혀 몰랐다. 그가 비록 신지가 흐렸지만 이미 이 일이 좋지 않다는 것은 희미하게 깨달았다. 그러나 사지에 힘이 없어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
그 뚱보는 ‘노완가(老玩家: 상고와 놀려고 온 사람정도의 뜻)’였다. 그는 세심하게 배각을 살피다 또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물 잔을 들고 돌아와 입에 물을 머금었다 배각의 얼굴과 머리에 뿜어댔다. 원래 이 뚱보는 배각이 미혼약에 중독된 것을 한 눈에 알아봤다. 그는 미혼약에 중독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맑은 물로 배각을 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배각을 구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에 물이 뿜어지자 배각은 곧 정신를 차렸다. 물은 본시 ‘박화(미혼약)’의 유일한 해약이었다.
그 뚱보는 또한 손을 뻗어 배각의 의복을 벗기려고 했다. 이때 배각은 기력이 회복되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이 뚱보는 술에 취해서는 웃으며 말했다.
「귀염둥이야 걱정 말아라. 내……」
배각은 대노해서 침상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힘을 썼다. 그 뚱보는 입을 벌려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귀염둥이야, 너 뭘 하려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각에게 주먹으로 맞았다. 코를 때린 것이다.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눈물마저 찔끔했다.
그 뚱보는 큰 소리로 욕을 해댔다.
“냄새나는 놈아, 너 미쳤구나.”
배각은 더욱 화가나 또 뚱보의 얼굴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비록 그의 무공이 높지는 않지만 다년간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다. 몸은 자연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강하다. 힘도 자연 보통 사람들보다 세다. 그 뚱보가 이 일권을 어찌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배각은 분노가 극에 달아 또 다시 뚱보를 몇 대 때렸다. 뚱보는 맞아서 죽는 소리를 냈다. 아파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살려!」
이어 한바탕 어수선한 소리가 계단에서 들여왔다. 이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이곳의 졸개로 생각되는 두 명의 우람한 사내들이 이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배각은 방의 문 안쪽을 뚱보로 막아 놨다. 그래서 밖에서 조급해 하고 있는 두 명의 졸개는 들어올 수 없었다.
배각은 주먹을 비같이 출수하여 뚱보를 돼지 잡듯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음은 점점 작아졌다. 눈으로 보기에도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두 명의 졸개는 들을수록 심상치 않았지만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이 같은 집은 두 사람이 밀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기압소리를 내며 두 사람이 힘을 쓰자 뜻밖에도 방문이 밀려 떨어져 나갔다. 그 바람에 두 졸개는 비틀거리며 쳐들어갔다.
이때 배각은 뚱보의 몸에 타고앉아 있었다. 얻어맞은 뚱보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졸개들이 화가나 소리쳤다.
「좆만한 새끼가 정말 사는 게 살짝 귀찮아졌구나!」
큰 손을 쭉 뻗어 배각의 옷깃을 꽉 붙잡아 아래로 질질 끌었다.
배각이 나이가 어리고 무공 또한 진전을 얻지 못했으며 게다가 몸은 아직 다 크지도 않았다. 어떻게 이런 두 명의 숫소 같은 사내들과 대적이 되겠는가. 그들에게 끌려가다 곧장 일어섰다.
방안의 크기가 다소 작아 근본적으로 두 장한이 손발을 벌려 시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배각을 문밖으로 끌었다. 손바닥을 벌려 배각의 따귀를 갈기며 욕을 해댔다.
「좆만한 새꺄, 넌 여기가 어딘지도 알아보지 않았구나. 여기서 뒤질려고 작정을 했구나!」
배각은 두 사내에게 잡혀 움직이지도 못했으나 어쨌든 그는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팔꿈치를 밖으로 맹렬히 휘둘러 퍽퍽 소리와 함께 이 두 대한의 늑골을 연이어 가격했다. 그 두 대한은 매우 아파서 비명을 질러대며 자기도 모르게 잡았던 손을 놨다.
배각은 아래로 도망치려 길을 찾았다. 그 두 대한은 그를 놓치자 욕을 하며 말했다.
「오늘 어르신이 너를 봐주지 않겠다.」
배각은 맘속으로 이 두 사내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 눈빛을 굴려 복도 끝에 열려진 창문을 보았다.
그는 이전처럼 맑은 정신은 아니었다. 그가 겪은 일이 온통 흐릿했다, 흐릿한 윤곽만이 조금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는 당연히 위층인지 아래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두 사내를 죽을힘을 다해 한 대 치고 창문으로 뛰어나가야겠구나.」
이때 그 두 명의 사내 또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좌수로 막고 오른 주먹을 뻗어 그 사내의 가슴을 쳤다. 가볍지 않게 때렸다. 이때는 사내도 방심하지 않고 왼손으로 막고 오른 주먹으로 배각의 어깨를 때렸다.
배각의 마음속에 이미 계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어깨 위에 한 대를 맞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머리를 숙이고 그 사내의 왼팔 밑으로 뚫고 나와 힘껏 창문턱 위로 뛰어 올랐다. 감히 머리를 돌리지 못하고 아래도 쳐다보지 못한 채 몸을 날려 밑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이 건물은 높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뛰어내려 그의 발이 지면에 접촉할 때 그의 온 몸이 흔들려 더 이상 신형을 바로 세우지 못해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번엔 당연히 충격이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때 오직 이곳을 도망갈 생각밖에는 없었다. 아무것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기어 일어나 방향도 분간하지 않고 곧장 내달렸다.
이런 좁은 골목은 대체로 나쁜 사람과 악행을 감싸주는 곳이다. 이때 양측의 작은 건물 출입구에는 화장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상고(像姑)’들이 뿔뿔이 흩어져 앉아 이층에서 뛰어내려 달려가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모두 상황을 알고 있어 놀라지도 않았고 그를 저지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인성에 동정지심을 잠재하고 있어 이 사람들이 비록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도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뿐이다.
배각은 두 눈이 깜깜해졌다. 도망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몰래 골목길로 오고 있었다.
※ ※ ※
배각은 한동안 알지도 못하고 달아났다.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기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미친 여자(女瘋子)인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경성내의 인심은 순박하여 모두 쓸데없는 일을 원치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도망갔지만 실제로는 별로 도망가지 못했다. 뒤에서 나는 소리에 신경 쓰긴 했지만 추격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천천히 멈추었다. 숨을 헐떡이며 방금 일어난 사건은 정말 한편의 기괴하고도 황당한 악몽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이가 어려 순진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사지가 조금 나른하고 여전히 배가 많이 고팠다.
사방을 둘러보니 뜻밖에도 이곳은 북경성 변두리에 있는 가장 저급한 장소였다. 주위가 모두 판잣집이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 북경성내에 가장 최하층의 인물들이 대다수였다.
배각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머리를 숙이고 쳐다보니 자기 몸에 여자 옷이 입혀져 있는 것이었다. 발에는 한 쌍의 얇고 날렵한 남자용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화장은 확실히 이도저도 아닌 것의 극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는 거울도 없어 그는 자기 얼굴의 형상을 알 길이 없었지만 난처한 상태로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문 입구에 서있던 여자와 아이가 그를 가리키며 슬그머니 웃었다. 그는 얼굴이 벌게지며 고개를 숙이고 황벽한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은 인지상정으로 스스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느꼈을 때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배각은 사람이 더 적은 곳으로 더욱 뛰어갔다. 이때 이미 밤이 되어 새싹이 돋고 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봄날의 저녁 바람이라 아직은 차게 느껴졌다. 그는 미미하게나마 냉기를 느꼈다. 마음속으로 생각이 조수처럼 세차게 흐르듯이 생겨났다.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는 의탁할 곳이 전혀 없었다. 이때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연약했다면 즉시 비룡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곳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부적으로 굴강한 성격으로 추위에 떨고 굶주리더라도 돌아가지 않았다. 홀로 쓸쓸히 걸었다. 눈이 조금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뜻밖에도 눈물이 빨리 흘렀다. 그는 얼른 울음을 억제했다. 왜냐하면 그는 우는 것이 남자대장부의 행동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돌연 그는 등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아득한 오밤중에 그의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인영이 보였다. 무슨 속셈인지 알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경궁지조(驚弓之鳥: 한 번 화살에 놀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가 되어 있었다. 무엇에 대해서도 두려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빠르게 걸었다.
그걸 알고 몇 명의 인영도 그를 점점 더 빨리 따라왔다. 그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 나는 늘 이런 재수 없는 일을 만날까?’
발밑을 조심하지 않아 돌에 부딪쳐 엎어졌다.
그 몇 명의 인영이 한바탕 웃어 대며 쏟아져 나왔다. 모두 옷차림이 단정치 않은 동네 불량배였다. 모두 나이는 어리고 머리엔 과피모를 삐딱하게 썼으며 소매는 높이 걷어 올렸다.
그들은 배각을 붙잡아 놓고 어떤 사람은 바로 그의 몸과 얼굴을 마구 더듬고 웃기 시작할 때 목소리엔 은은하게 야릇한 기색을 품고 있었다.
배각은 마음속으로 갑자기 그들의 의도를 알게 되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 그들은 나를 여인으로 여겼었구나.‘
마음속으로 절로 화가 나기고 하고 또 웃기기도 하고 급하기도 하여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그 아이들도 역시 나이가 어렸지만 힘이 좋았다. 게다가 사람도 더 많았다.
비록 그가 전신기력을 다 소진하면서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 몇 명의 불량배들은 더욱 크게 웃었다. 어떤 이는 손을 뻗어 그의 의복을 벗기며 한편으로 말했다.
“요 며칠간 돈도 없고 못 견디게 답답했는데 이 소저가 정말 하늘에서 보내준 보화로군.”
배각은 급히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려 했다. 이때 이런 상황 하에서 그가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그는 또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멍청함을 속으로 책망하였다.
‘만약 내가 수준 높은 무공을 연마했다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발로 차서 비록 한 사람이 넘어졌지만 다른 한 사람이 올라타서 눌렀다.
갑자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는데 고요한 밤이라 유난히 귀를 거슬리는 소리였다. 몇 명의 불량배들이 서로 얘기했다.
“누가 왔나보다.”
모두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배각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 사람이 이곳으로 오지 않을까 걱정해서 목청이 찢어져라 몇 번 불러댔다. 한 사내가 입을 막으며 말했다.
“한 번 더 소리 지르면 죽여 버릴 거야.”
그 말발굽 소리는 뜻밖에도 갈수록 멀어졌다. 옆길을 따라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이 불량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각은 초조해서 어찔할 바를 몰랐다. 손발에 다시 힘을 주고 몸부림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말발굽 소리가 갑자기 속도를 내었다. 게다가 이쪽 방향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불량배들은 모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인원을 믿고 겁 없이 흉악한 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끼어들면 엉아들이 함께 그를 뒤집어놓을 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마리의 말이 달려왔다. 그 속도는 마치 말발굽 소리와 같이 도착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말은 전신이 순백색으로 그들 면전에 도착해 한 번 선회했다. 말 위에 탄 사람이 엄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이곳에서 뭐하고 있느냐?”
배각은 누군가 와서 그를 구해주니 대단히 기뻤다.
“너 어린놈이 뭔데 감히 관 나리의 일에 끼어드느냐. 일찌감치 꼬리를 말고....”
말을 미처 끝내기 전에 땅을 쓸어버릴 소리와 함께 말하고 있는 불량배의 머리 위로 채찍이 날라 왔다.
맞는 소리와 함께 “아얏.”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 불량배들은 갑자기 크게 동요하고 욕을 해댔다.
“이 자식, 네놈이 감히 사람을 쳐.”
우르르 주위로 몰려들어 말에 탄 사람을 떨어뜨리려 했다.
말에 탄 사람이 노해서 꾸짖으며 말채찍을 빗발처럼 그들의 몸을 때렸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 가늘고 작은 채찍에 백근이 넘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몸을 때리자 고통이 뼈에 사무쳤다.
배각은 앉아 있었다. 별빛을 빌려 바라보니 은은히 보이는 바로 마상의 인물은 일개 서생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마상에 앉아 불량배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오히려 천신 같았다. 배각은 맘속으로 흠모했다. 이 사람이 상당히 고강한 무공을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 사내들은 과연 불량배들이었다. 땅바닥에 쓰러져서도 여전히 가려 하지 않고 욕을 했다.
“좋아 네가 때렸어. 네가 때렸어.”
땅바닥을 구르며 말의 다리를 안았다. 그 말은 비범한 동물인지라 그걸 알고 발을 높이 들었다. 그 사람은 발길에 채여 기절했다. 마상의 인물이 대노하여 갑자기 찌르기 위해 말채찍을 바꿔 휘둘렀다. 부드럽던 말채찍이 그의 손에서 마치 막대기처럼 되었다. 한 번 찔러대자 바람소리가 쌩쌩 나고 마침내 한 사람의 견정혈을 향해 찔러댔다.
이와 같은 것은 부드러운 병기로 점혈하는 수법인 것이다. 무림에서도 드문 수법으로 게다가 그는 단지 가드다란 마편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들 불량배들이 언제 이런 절정의 솜씨를 만나보았겠는가. 눈 깜짝할 순간에 그는 점혈을 당해 쓰러졌다. 땅바닥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그들 불량배들은 이제야 비로소 크게 놀라 크게 소리쳤다.
“사람 잡네.”
하고는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 ※ ※
배각은 비록 무공이 높지는 않으나 그는 무림세가에서 자라났다. 평소 자주 보고 들어서 익숙한 습관이 되어 안목이 매우 높았다. 이때 마상인의 수법을 보고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했다.
‘저 사람의 무공은 정말 고강하구나.’
마상인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미하게 냉소를 흘렸다. 배각은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보니 전신이 순백이었다. 밝게 빛나는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보자 열등감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그 사람은 머리를 숙여 그를 한참 동안 세심히 바라보더니 돌연 말했다.
“너희 집이 저기에 있느냐?”
배각은 경악했다. 수많은 근심이 마음속에서 맴돌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나와 나이도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무공이 나보다 몇 배나 강한지 알 수도 없고. 아,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가진 게 뭐란 말인가? 나는 무엇도 가진 게 없어!’
얼굴빛이 자기도 모르게 매우 울적해졌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는 그를 보고 마치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집이 없느냐, 왜 말을 하지 않느냐?”
배각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갑자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정면으로 읍을 하고는 방향을 돌려 가버렸다.
이때 그의 마음속은 괴로웠다. 절대로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목구멍에 뭔가에 막힌 것 같았다.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또 두 걸음 정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사람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는데 이때는 한 줄기 연민의 표정이 무심코 드러난 것 같았다.
그는 말채찍의 손잡이로 말안장을 두드렸다. 속마음은 매우 초조한 것 같았다. 돌연 그는 큰소리로 질렀다.
“어이 계집애야, 얼른 돌아와라.”
배각은 발을 멈추었다. 그는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계집애’가 자기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체면이 크게 깍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람이 그에게 여자 옷을 입은 원인을 물어본다면 그에게 어찌 해명한단 말인가. 그는 자존심이 강해 다른 사람의 연민이나 동정을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비웃음에 대해 그는 더욱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돌아가서 그 사람의 말 앞에 섰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여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얼굴엔 놀란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연후 그는 갑자기 말을 했다.
“기왕에 네가 집이 없으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장탄식을 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나도 집이 없는 사람이다.”
완전한 강남 지방의 사투리로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오히려 처량한 기색을 띠고 있어서 배각은 듣고서 상린지심(相憐之心)이 크게 일어지만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그 사람이 또 말했다.
“내가 또한 네게 무공을 조금 가르칠 수도 있다. 네가 조금 배울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는 너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로는 자기가 심오막측한 무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배각은 기뻐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 쭈뼛쭈뼛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멍청한데 가서 배워봐야 결국 얼마 배우지도 못할 것 아니오?”
그 사람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무공을 배워봤냐?”
배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네가 멍청하다고 누가 그러더냐? 과거에 너는 누구한테 무공을 배웠느냐?”
배각이 말했다.
“용형팔장(龍形八掌) 단명(檀明)이오.”
그는 자기가 이 이름을 얘기하면 반드시 이 사람이 놀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 사람은 듣고는 ‘흥’ 하고 차가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가 뭔데!”
배각은 자신도 모르게 놀랬다. 이 당시 용형팔장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안다면 이 말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사람은 듣고서 오히려 더욱 경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내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이 사람의 무공이 단대숙보다 더 높단 말인가?”
배각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이가 어려 보였다. 오히려 자기의 추측이 조금 불합리하다고 여겼다.
그 사람의 성격이 매우 급한 것 같았다.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갈래냐 말래냐?”
배각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든 나는 이 사람을 따라가 배워야 돼. 정말 잘 배울 수만 있다면....’
그는 감히 다시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충분히 환상을 심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도 말이 없었다. 말채찍을 휘두르자 그 말이 발을 높이 들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상의 인물은 허리를 굽혀 손으로 배각의 허리를 잡았다.
배각은 단지 허리가 당겨지는 것만 느꼈는데 완전히 공중으로 솟구쳐서는 그 사람의 앞에 앉게 되었다. 그는 나이가 어려 많은 일이 있음에도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세심하게 생각했다면 그의 옷차림과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이 사람은 그를 여자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으나 그는 자기와 함께 가자고 했고 또한 그는 몸을 안고 있었다. 혹여 ‘그’에 대해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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