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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龍 孤星傳 / 第二章 匆匆七年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고성전(孤星傳) - 古龍

古龍 孤星傳 / 第二章 匆匆七年

少秋 2019. 12. 20. 17:00

古龍의 孤星傳 표지

세월은 빠르게 흘러 수년이나 지났다.

사람들은 수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갔다. 석년 강호의 이목을 끌며 무림을 불안하게 했던 신비몽면인은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었는지 이제는 더 이상 언급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중주일검의 혁혁한 예전 명성조차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용형팔장만이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무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날로 높아만 갔다. 뿐만 아니라 비룡표국 또한 양하제일의 표국이 되었다. 심지어는 저 멀리 강남에서 새외까지 지점을 설치했다. 강호상에 표국이 생긴 이래 그 어느 표국도 이런 성세를 누린 적이 없었다.

용형팔장 단명 본인은 표행을 나가는 경우가 극히 적었다. 그가 친히 나설만한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 종일 일이 없었다.

당시 몽면인에게 살해당한 표객들의 후인들은 현재 전부 장성해서 막내가 열세 살이 되었다. 용형팔장은 일이 없을 때는 그들의 무공을 가르쳐주었다.

열다섯 먹은 외동딸이 있는 용형팔장은 이미 중년으로 강호상의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해결되지 않는 분규와 마주치게 된다면 여전히 그를 도우러 불원천리 달려갔다.

무림의 이 세대엔 적지 않은 고수들이 있었지만 무공이나 명성을 막론하고 용형팔장과 비교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표객의 후인들은 자질이 너무 나빠 알아듣지 못해 용형팔장의 십성 공부중 일성조차도 배우지 못했다.

※ ※ ※

또 다시 봄이다. 중주일검이 죽고 여섯 번째의 봄이다.

동틀 무렵 비룡표국의 연무장엔 이미 누군가 권법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열 대여섯살 정도 먹은 소년이었다. 눈썹이 길고 수려하며 두 눈의 안색은 맑은 정기가 빛났으며 비록 체구가 크지는 않았으나 균형 잡힌 몸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미남자라 할만 했다.

소년은 침요좌마(沉腰坐馬)의 자세로 주먹을 펴고 발을 차는데 적절하게 힘을 쓰며 일사불란하게 권법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애석한 것은 이 권법이 무림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대홍권(大洪拳)이라는 것이다. 이 대홍권은 초식이 단조로워 신체를 강하게 해줄 뿐 호신용으로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공격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정신을 집중해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연습했다. 권법을 한 차례 끝내자 이마엔 미미하게 땀이 보이는데 내공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여러 차례 깊이 호흡하며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비록 얼굴엔 총명함이 가득했지만 얼굴빛은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다.

이 소년은 옛날 창검쌍절 중의 구겸창 배양의 독자 배각이었다. 몇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오랜 기간 계속 무공을 연마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표국의 평범한 쟁자수(趟子手)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크게 낙담하여 자신의 우둔함을 속으로 원망했다. 용형팔장이 친히 무공을 가르칠 때마다 그는 더욱 열심히 배우러 갔지만 여전히 몇 가지 무공에 불과했으며 단명은 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연습은 평생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용형팔장이 그들에게 진짜 무공을 가르치길 원치 않는 것으로 조금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형팔장은 그들을 조금도 나쁘지 않게 대했다. 그는 자기의 대은인에 대해 감히 어떤 의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다른 표사들이 연무하고 있을 때인데 용형팔장이 그들에게 가서 봐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들의 심사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각은 천성이 워낙 강직해 남들이 원치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유혹이 너무 커서 그는 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그는 원래의 총명 발랄함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매일 아침 날이 밝기 전에 조용히 일어나 권법을 수련했다. 본래 그는 아홉 명이 같이 있었는데 모두 표국의 후인이었다. 그러나 용형팔장이 그들을 떼어 놓았다. 어떤 아이는 하남으로 보내지고 어떤 아이는 강남으로 보내졌다. 말인즉슨 그들에게 나가서 경험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다만 배각과 가장 어린 여자애 하나만이 북경성에 있는 표국에 남았을 뿐이다.

그 여자애는 원로진(袁瀘珍)이라 하는데 단혼표(斷魂鏢) 원일량(袁一樑)의 후인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아주 똑똑하고 큰 두 눈을 둘러보는 것이 마치 상대의 걱정거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배각은 그녀를 매우 좋아해 늘 그녀의 손을 잡고 표국 밖을 산보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늘 그녀를 데리고 대화를 나눴다. 기실 그들 모두 아직은 어려서 우울함이 오래 가진 않았다.

구겸창(鉤鐮槍) 배양(裴揚)의 아내는 배각을 낳은 후 세상을 떠났다. 배각은 조실부모하고 지금은 더부살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부심이 강해 절대 남에게 지려하지 않아서 늘 스스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신에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근본적으로 어떻게 생계를 도모할지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용형팔장은 늘 그를 위로했다. 그를 불러 집에서 잘 지내도록 했다.

그가 담 모퉁이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데 날은 이미 밝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서서 동쪽 하늘의 일출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돌멩이 하나가 날라 왔다. 그의 머리를 맞추자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병기대에 기대어 서서 그를 향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자색의 비단 겉옷을 입은 소녀가 보였다.

돌멩이를 발출한 힘은 비록 심하진 않았지만 맞은 그의 머리는 여전히 은은한 통증이 발생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머리에 손을 대자 그 소녀가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널 멍청하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려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네 꼴 좀 봐라. 이렇게 오랜 동안 무공을 연마했는데도 네 뒤에 암산하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다니 돌대가리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며 네 머리는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이상해졌을 거야.”

이 소녀는 바로 용형팔장 단명의 금지옥엽으로 꽃 같이 아름다운 미소와 구슬 같은 목소리 그리고 웃을 때 양 뺨에 깊게 파이는 보조개는 사람으로 하여금 백합이 처음 피었을 때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배각은 일소했다. 이런 말은 그가 평소에도 많이 들어와서 차츰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 비룡표국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멍청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멍청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데 그는 말이 많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멍청한 것 같았다.

단문기는 느릿느릿 다가와서는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권법 훈련을 끝내지 않았어?”

배각은 머리를 끄덕였다.

단문기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내듯 말했다.

“너 정말! 미치겠네. 사람들이 너에 대해 늘 벙어리 같다고 말하잖아.”

배각은 변함없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단문기는 작은 입을 삐쭉거리며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린 어울리지 않아. 네가 말한 대로 너의 원소매만 어울린다는 거냐? 좋아!”

그녀는 또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돌려가며 한편으로 말했다.

“이후 너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각의 얼굴빛이 아주 이상해졌다. 자기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단문기는 급히 가면서 고개를 슬쩍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며 말했다.

“기매....”

다음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달달한 기분이었다.

단문기는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는 만족한 듯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왕짜증! 나 말고 누가 널 가르치겠냐?”

커다란 두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각은 몰래 한숨을 쉬고 내심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어찌하면 좋으냐?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 남녀 간의 정에 대해 어렴풋이 개념을 갖고나 있나 모르겠네. 단문기를 보지 못할 때 나는 항시 그녀를 보고 싶어 했는데 막상 그녀를 보게 되면 또 피하게 되고 나 때문에 그녀는 자기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가 마음속에 이런 갈등이 있다는 걸 단문기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버르장머리가 없고 입으로는 그가 멍청하다고 질책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의 성격이 조금 괴팍스러운 것 같았다. 그녀는 뭣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원로진과 함께 웃고 떠는 걸 보고 속으로 화가 나서 다음 그를 볼 때 일부러 화를 내었다. 하지만 그는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녀는 또다시 내심 후회했다.

배각은 멀거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해가 떠올라 그의 얼굴을 벌겋게 비추었다.

단문기는 그의 면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그녀는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서는 위에서 아래로 던졌다. 햇빛에 비춰진 그 물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알고 보니 닭털로 만든 제기였다.

배각의 눈빛이 그 제기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맘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또 왔구나.’

단문기를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하고 제기차기 할래?”

배각은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단문기는 입을 삐죽거리며 제기를 쥐고 달려와 그의 면전에 서서 화내며 말했다.

“너, 나하고 제기 차기를 하지 않을래?”

하면서 곱고 예쁜 얼굴을 배각의 얼굴에 닿을 듯이 갖다 대었다.

배각의 콧구멍에 소녀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 차서 살짝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거듭 대답했다.

“찰께! 찰께!”

단문기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이래야 착하지.”

배각의 마음은 더욱 더 두근거려 그녀의 보조개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단문기는 위를 향해 들고 있던 제기를 던졌다. 그 제기는 빠르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발이 일초를 시전하자 제기는 평온하게 그녀의 발등위에 있었다.

그녀는 또 만족해하며 배각을 향해 웃었다. 발을 다시 들어 올리자 제기가 위로 날아올랐다.

그 제기는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녀는 십여 번을 찼다. 갑자기 몸을 살짝 기울였다 뛰어 올랐다. 오른 발이 후면에서 왼 발을 가로질러 나와 제기를 차면서 한편으로 말했다.

“야, 너 왜 내가 찬 숫자를 안세냐?”

귀엽고 작은 체구지만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꽃을 가로지르는 나비와 같았다.

배각은 입으로 숫자를 세었다.

“십, 십일.....”

눈은 그녀를 따라 맴돌았다.

단문기는 차면 찰수록 더욱 흥이 났는데 순간 눈가에 배각이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이자 입을 오므리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까? 그 제기는 멀리멀리 차여졌다. 그녀는 몸을 비틀어 마치 비상하는 제비같이 따라갔다. 신법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볍고 재빠르며 아름다웠다.

배각은 마음속으로 견디기 어려워 곰곰이 뇌까렸다.

‘내가 그녀처럼 멋진 신법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애석하구나, 에이! 내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단문기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날리며 옷소매가 펄럭이는 것이 마치 수선화를 보는 듯 했다. 갑자기 가볍게 몸을 돌려 양발로 연속해서 차서 제기를 높이 차고는 손을 들어 받았다.

그녀는 이런 몇 가지 동작을 전부 단숨에 해치웠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었고 부자연스러움도 전혀 없었다. 아름답게 신형을 멈추었다.

그녀는 조금 애교스럽게 숨을 헐떡였지만 그것이 더욱 그녀의 매력을 부채질했다.

그녀는 배각에게 다가오며 그에게 제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백 개 찼어. 이제 네 차례야! 만약 네가 이백 개를 못 차면 오늘 날 용서해야 해.”

※ ※ ※

배각은 갑자기 얼굴에 의아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내가 만약 이백 개를 찬다면?”

단문기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머릿속에 서툴게 제기 차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연속해서 열 개도 못 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휴, 물론 넌 능히 이백 개를 찰 수 있지!”

그녀는 양 손을 허리에 대고 얼굴이 붉어지며 또 말했다.

“좋아, 네가 이백 개를 차면 뭐든 네 맘대로 할 수 있어.”

배각이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단문기는 얼굴을 붉히며 꾸짖듯 말했다.

“넌 죽었어!”

뭐라 딱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이상야릇한 속마음이 형용하기 어렵게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배각은 순간 그녀가 왜 자기를 질책하는지 알았다. 얼굴이 벌게진 단문기는 매우 사나웠다. 배각은 머리를 숙이고 제기를 받아들고는 제기를 차기 시작했다.

단문기는 의기양양해서 큰 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그녀의 숫자를 세는 소리는 갈수록 작아져 도달한 후엔 숫자를 세는 힘이 모두 없어진 것 같았다.

원래 배각의 신법은 비록 그녀처럼 경쾌함이 없었고 자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한참 못미쳤지만 제기는 눈이 달린 것처럼 아래 위로만 움직이고 다른 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배각은 발을 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 제기가 그의 발에 딱 맞게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이다.

눈 깜빡하는 순간에 배각은 백개를 찼다.

단문기는 속으로 이상하다 여겼을 뿐만 아니라 다급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가 어떻게 갑자기 이리 잘 찬단 말인가?

다급해졌다. 그가 이미 이백 개를 차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 것이다.

그녀는 배각의 품성이 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제기 찰 때 단문기가 웃는 바람에 엉망으로 했다. 맘이 언짢아 몰래 제기를 만들어서 매일 밤잠도 자지 않고 마당에서 제기차기를 했다. 그녀와 좋은 승부를 펼칠 때까지 제기를 차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본래 제기차기에 무슨 기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는데다가 그는 본래 몹시 총명하니 제기차기에 도가 튼 것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억제를 당해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을 뿐인 것이다.

연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자유자재로 제기를 찰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말 하지도 않고 속에만 두고 중얼거렸다.

‘네가 날 찾아 제기를 차자고 할 때까지 기다릴 거다. 내가 널 아주 놀라게 해주마.“

과연 그녀는 지금 매우 놀라 옆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너는 정말 나쁘구나. 몰래 가서 배운 거냐? 나한테 말도 없더니 나를 속였구나.”

배각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어 입으로는 일면 큰 소리로 외쳤다.

“백구십삼, 백구십사.....”

단문기는 갑자기 뛰어가며 제기를 단숨에 빼앗아 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넌 나빠, 나쁘다고!”

배각은 대소하며 말했다.

“네가 졌어. 아직 안 끝났단 말이야.”

그는 지난 몇 년간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 적이 없었다. 그의 승부욕은 무척이나 강했지만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눌려 평소엔 자연 침울했던 것이다.

단문기는 거의 그의 품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내가 졌어. 네가 바라는 게 뭐야?”

배각은 내심 진탕되었다.

지금 막 해가 떠오르는데 마침 소년의 연애감정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떠오르는 햇살이 단문기의 솜털을 비추자 꿈처럼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나긋한 숨이 배각의 얼굴에 내뱉어지자 배각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다시 잡기 어려운 기회라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의 입술이 단문기의 볼에 닿을 찰나 두 사람은 모두 감전되어 전신이 마비된 것 같았다. 이때는 설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천지만물이 모두 그들 두 사람의 입맞춤을 위해 존재하는 하찮은 것이라 느꼈을 뿐이다.

※ ※ ※

갑자기 커다란 기침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 두 사람은 크게 놀라 당장 떨어져 쳐다보고는 더욱 혼비백산했다. 원래 그들 두 사람의 몸은 옆으로 기대어 서 있었는데 바로 용형팔장의 얼음장 같은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문기가 비록 평소엔 어리광도 부리고 철이 없지만 이때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깜짝 놀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각은 더욱 어찌할 줄 모르고 얼굴이 가지처럼 시뻘게졌다. 양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불안해서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용형팔장의 얼음과 같은 눈빛이 그들의 얼굴을 향해 노려보고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엄하게 말했다.

“기아는 방으로 돌아가자.”

하고는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단문기는 억울한 듯 큰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또한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흘낏 그를 바라봤다. 이때 그녀는 한 줄기 소녀방심이 이미 그의 신상에 가 있음을 자신도 몰랐다.

배각은 단문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것에 놀랐는데 그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그는 더욱 참기 어려웠다. 마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잘못해 그녀가 고통을 받는구나.’

또 다시 생각했다.

‘단대숙은 내가 멍청해 그의 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한숨이 나오는구나. 아! 누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인 나 자신을 부르겠는가. 내가 조금 총명해질 수 있다면 그럼 너무 좋은 거 아닐까?’

한편 그는 놀라서 오랜 동안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개미가 보였는데 멍청하게도 저 보다 훨씬 큰 곤충의 시체를 운반하고 있었다. 행동이 느리고 비실비실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이 개미를 응시했다. 심중엔 그가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한 가지 감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나는 비록 멍청하지만 내 자신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종일 남의 집에서 빈둥대는 것은 곤란하다. 내 어찌 남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다 내 어찌 돌아가신 양친을 대할 수 있겠는가. 기매는 어떻게 대할 것이며 또한 내 자신은 어찌 대하겠는가?’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갑자기 의기가 솟자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도 나가야겠다. 일단 나가서 운명을 시험해보자. 내가 성공한다면 이곳으로 금의환향하는 거야. 그때는 단대숙도 다시는 내가 장래성이 없다고 하진 못하겠지. 어쩌면 기매와 내가 같이 있는 것을 기꺼이 허락할 거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갑자기 생기가 충만하고 전신에 활력이 넘치는 걸 느꼈다. 마치 이곳을 떠날 생각이 들자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고무친인지라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해 무슨 고통이 수반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혈기왕성한 배각이 이때 생각해낼 만한 것이다.

‘하지만 소매는 내가 떠나면 분명 죽었다고 괴로워 할 텐데.’

또한 그는 원로진을 떠올렸지만 순간적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정말 금의환향한다면 그녀는 열배나 더 기뻐하겠지?’

그의 성격이 지극히 굴강하여 마음속으로 결정한 일을 바꾼 적이 없다.

그는 일체 다시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의 어떠한 실패, 어떠한 좌절도 그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이때 그의 마음속은 아주 강렬한 소망 한 가지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의 계획에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담장을 바라봤다.

그는 담장 밖은 비룡표국에 속해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담장 주변까지 뛰어가 담장위로 나갈 생각으로 열심히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경공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어 능력이 부족했다. 이 높은 담장을 뛰어올랐다가 쿵하고 땅바닥으로 크게 떨어졌다. 엉덩이에 은은한 통증이 왔다.

그는 추호도 낙담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몸의 먼지도 털지 않고 또 위로 몸을 날렸다.

이번에 그는 양손으로 담장을 기어올랐다. 그래서 그는 붙잡고 놓지 않고 온 몸에 힘을 써서 열심히 담장을 기어올랐다.

담장 밖은 뒷골목이었다. 이때 마침 채소 장수가 짐을 메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그를 이상하게 여기며 흘긋 쳐다보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비록 담장에서 지면까지의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양다리를 굽히고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수년이나 지났다.

사람들은 수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갔다. 석년 강호의 이목을 끌며 무림을 불안하게 했던 신비몽면인은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었는지 이제는 더 이상 언급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중주일검의 혁혁한 예전 명성조차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용형팔장만이 시간의 흐름에 따르지 않고 무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날로 높아만 갔다. 뿐만 아니라 비룡표국 또한 양하제일의 표국이 되었다. 심지어는 저 멀리 강남에서 새외까지 지점을 설치했다. 강호상에 표국이 생긴 이래 그 어느 표국도 이런 성세를 누린 적이 없었다.

용형팔장 단명 본인은 표행을 나가는 경우가 극히 적었다. 그가 친히 나설만한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 종일 일이 없었다.

당시 몽면인에게 살해당한 표객들의 후인들은 현재 전부 장성해서 막내가 열세 살이 되었다. 용형팔장은 일이 없을 때는 그들의 무공을 가르쳐주었다.

열다섯 먹은 외동딸이 있는 용형팔장은 이미 중년으로 강호상의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해결되지 않는 분규와 마주치게 된다면 여전히 그를 도우러 불원천리 달려갔다.

무림의 이 세대엔 적지 않은 고수들이 있었지만 무공이나 명성을 막론하고 용형팔장과 비교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표객의 후인들은 자질이 너무 나빠 알아듣지 못해 용형팔장의 십성 공부중 일성조차도 배우지 못했다.

※ ※ ※

또 다시 봄이다. 중주일검이 죽고 여섯 번째의 봄이다.

동틀 무렵 비룡표국의 연무장엔 이미 누군가 권법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열 대여섯살 정도 먹은 소년이었다. 눈썹이 길고 수려하며 두 눈의 안색은 맑은 정기가 빛났으며 비록 체구가 크지는 않았으나 균형 잡힌 몸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미남자라 할만 했다.

소년은 침요좌마(沉腰坐馬)의 자세로 주먹을 펴고 발을 차는데 적절하게 힘을 쓰며 일사불란하게 권법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애석한 것은 이 권법이 무림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대홍권(大洪拳)이라는 것이다. 이 대홍권은 초식이 단조로워 신체를 강하게 해줄 뿐 호신용으로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공격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정신을 집중해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연습했다. 권법을 한 차례 끝내자 이마엔 미미하게 땀이 보이는데 내공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여러 차례 깊이 호흡하며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비록 얼굴엔 총명함이 가득했지만 얼굴빛은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다.

이 소년은 옛날 창검쌍절 중의 구겸창 배양의 독자 배각이었다. 몇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오랜 기간 계속 무공을 연마했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표국의 평범한 쟁자수(趟子手)조차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크게 낙담하여 자신의 우둔함을 속으로 원망했다. 용형팔장이 친히 무공을 가르칠 때마다 그는 더욱 열심히 배우러 갔지만 여전히 몇 가지 무공에 불과했으며 단명은 그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연습은 평생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용형팔장이 그들에게 진짜 무공을 가르치길 원치 않는 것으로 조금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형팔장은 그들을 조금도 나쁘지 않게 대했다. 그는 자기의 대은인에 대해 감히 어떤 의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다른 표사들이 연무하고 있을 때인데 용형팔장이 그들에게 가서 봐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그들의 심사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각은 천성이 워낙 강직해 남들이 원치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유혹이 너무 커서 그는 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그는 원래의 총명 발랄함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매일 아침 날이 밝기 전에 조용히 일어나 권법을 수련했다. 본래 그는 아홉 명이 같이 있었는데 모두 표국의 후인이었다. 그러나 용형팔장이 그들을 떼어 놓았다. 어떤 아이는 하남으로 보내지고 어떤 아이는 강남으로 보내졌다. 말인즉슨 그들에게 나가서 경험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다만 배각과 가장 어린 여자애 하나만이 북경성에 있는 표국에 남았을 뿐이다.

그 여자애는 원로진(袁瀘珍)이라 하는데 단혼표(斷魂鏢) 원일량(袁一樑)의 후인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아주 똑똑하고 큰 두 눈을 둘러보는 것이 마치 상대의 걱정거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배각은 그녀를 매우 좋아해 늘 그녀의 손을 잡고 표국 밖을 산보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늘 그녀를 데리고 대화를 나눴다. 기실 그들 모두 아직은 어려서 우울함이 오래 가진 않았다.

구겸창(鉤鐮槍) 배양(裴揚)의 아내는 배각을 낳은 후 세상을 떠났다. 배각은 조실부모하고 지금은 더부살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부심이 강해 절대 남에게 지려하지 않아서 늘 스스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신에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근본적으로 어떻게 생계를 도모할지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용형팔장은 늘 그를 위로했다. 그를 불러 집에서 잘 지내도록 했다.

그가 담 모퉁이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데 날은 이미 밝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서서 동쪽 하늘의 일출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돌멩이 하나가 날라 왔다. 그의 머리를 맞추자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병기대에 기대어 서서 그를 향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자색의 비단 겉옷을 입은 소녀가 보였다.

돌멩이를 발출한 힘은 비록 심하진 않았지만 맞은 그의 머리는 여전히 은은한 통증이 발생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머리에 손을 대자 그 소녀가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널 멍청하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려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네 꼴 좀 봐라. 이렇게 오랜 동안 무공을 연마했는데도 네 뒤에 암산하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다니 돌대가리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며 네 머리는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이상해졌을 거야.”

이 소녀는 바로 용형팔장 단명의 금지옥엽으로 꽃 같이 아름다운 미소와 구슬 같은 목소리 그리고 웃을 때 양 뺨에 깊게 파이는 보조개는 사람으로 하여금 백합이 처음 피었을 때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배각은 일소했다. 이런 말은 그가 평소에도 많이 들어와서 차츰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 비룡표국 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멍청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도 멍청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데 그는 말이 많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멍청한 것 같았다.

단문기는 느릿느릿 다가와서는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권법 훈련을 끝내지 않았어?”

배각은 머리를 끄덕였다.

단문기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내듯 말했다.

“너 정말! 미치겠네. 사람들이 너에 대해 늘 벙어리 같다고 말하잖아.”

배각은 변함없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단문기는 작은 입을 삐쭉거리며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린 어울리지 않아. 네가 말한 대로 너의 원소매만 어울린다는 거냐? 좋아!”

그녀는 또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돌려가며 한편으로 말했다.

“이후 너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각의 얼굴빛이 아주 이상해졌다. 자기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단문기는 급히 가면서 고개를 슬쩍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며 말했다.

“기매....”

다음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달달한 기분이었다.

단문기는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는 만족한 듯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왕짜증! 나 말고 누가 널 가르치겠냐?”

커다란 두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각은 몰래 한숨을 쉬고 내심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어찌하면 좋으냐?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 남녀 간의 정에 대해 어렴풋이 개념을 갖고나 있나 모르겠네. 단문기를 보지 못할 때 나는 항시 그녀를 보고 싶어 했는데 막상 그녀를 보게 되면 또 피하게 되고 나 때문에 그녀는 자기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가 마음속에 이런 갈등이 있다는 걸 배문기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버르장머리가 없고 입으로는 그가 멍청하다고 질책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의 성격이 조금 괴팍스러운 것 같았다. 그녀는 뭣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원로진과 함께 웃고 떠는 걸 보고 속으로 화가 나서 다음 그를 볼 때 일부러 화를 내었다. 하지만 그는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녀는 또다시 내심 후회했다.

배각은 멀거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해가 떠올라 그의 얼굴을 벌겋게 비추었다.

단문기는 그의 면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그녀는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서는 위에서 아래로 던졌다. 햇빛에 비춰진 그 물건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알고 보니 닭털로 만든 제기였다.

배각의 눈빛이 그 제기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맘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또 왔구나.’

단문기를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하고 제기차기 할래?”

배각은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단문기는 입을 삐죽거리며 제기를 쥐고 달려와 그의 면전에 서서 화내며 말했다.

“너, 나하고 제기 차기를 하지 않을래?”

하면서 곱고 예쁜 얼굴을 배각의 얼굴에 닿을 듯이 갖다 대었다.

배각의 콧구멍에 소녀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 차서 살짝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거듭 대답했다.

“찰께! 찰께!”

단문기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이래야 착하지.”

배각의 마음은 더욱 더 두근거려 그녀의 보조개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단문기는 위를 향해 들고 있던 제기를 던졌다. 그 제기는 빠르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발이 일초를 시전하자 제기는 평온하게 그녀의 발등위에 있었다.

그녀는 또 만족해하며 배각을 향해 웃었다. 발을 다시 들어 올리자 제기가 위로 날아올랐다.

그 제기는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녀는 십여 번을 찼다. 갑자기 몸을 살짝 기울였다 뛰어 올랐다. 오른 발이 후면에서 왼 발을 가로질러 나와 제기를 차면서 한편으로 말했다.

“야, 너 왜 내가 찬 숫자를 안세냐?”

귀엽고 작은 체구지만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꽃을 가로지르는 나비와 같았다.

배각은 입으로 숫자를 세었다.

“십, 십일.....”

눈은 그녀를 따라 맴돌았다.

단문기는 차면 찰수록 더욱 흥이 났는데 순간 눈가에 배각이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이자 입을 오므리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까? 그 제기는 멀리멀리 차여졌다. 그녀는 몸을 비틀어 마치 비상하는 제비같이 따라갔다. 신법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볍고 재빠르며 아름다웠다.

배각은 마음속으로 견디기 어려워 곰곰이 뇌까렸다.

‘내가 그녀처럼 멋진 신법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애석하구나, 에이! 내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단문기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날리며 옷소매가 펄럭이는 것이 마치 수선화를 보는 듯 했다. 갑자기 가볍게 몸을 돌려 양발로 연속해서 차서 제기를 높이 차고는 손을 들어 받았다.

그녀는 이런 몇 가지 동작을 전부 단숨에 해치웠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었고 부자연스러움도 전혀 없었다. 아름답게 신형을 멈추었다.

그녀는 조금 애교스럽게 숨을 헐떡였지만 그것이 더욱 그녀의 매력을 부채질했다.

그녀는 배각에게 다가오며 그에게 제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백 개 찼어. 이제 네 차례야! 만약 네가 이백 개를 못 차면 오늘 날 용서해야 해.”

※ ※ ※

배각은 갑자기 얼굴에 의아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내가 만약 이백 개를 찬다면?”

단문기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머릿속에 서툴게 제기 차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연속해서 열 개도 못 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휴, 물론 넌 능히 이백 개를 찰 수 있지!”

그녀는 양 손을 허리에 대고 얼굴이 붉어지며 또 말했다.

“좋아, 네가 이백 개를 차면 뭐든 네 맘대로 할 수 있어.”

배각이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단문기는 얼굴을 붉히며 꾸짖듯 말했다.

“넌 죽었어!”

뭐라 딱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이상야릇한 속마음이 형용하기 어렵게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배각은 순간 그녀가 왜 자기를 질책하는지 알았다. 얼굴이 벌게진 단문기는 매우 사나웠다. 배각은 머리를 숙이고 제기를 받아들고는 제기를 차기 시작했다.

단문기는 의기양양해서 큰 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러나 그녀의 숫자를 세는 소리는 갈수록 작아져 도달한 후엔 숫자를 세는 힘이 모두 없어진 것 같았다.

원래 배각의 신법은 비록 그녀처럼 경쾌함이 없었고 자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한참 못미쳤지만 제기는 눈이 달린 것처럼 아래 위로만 움직이고 다른 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배각은 발을 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 제기가 그의 발에 딱 맞게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이다.

눈 깜빡하는 순간에 배각은 백개를 찼다.

단문기는 속으로 이상하다 여겼을 뿐만 아니라 다급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가 어떻게 갑자기 이리 잘 찬단 말인가?

다급해졌다. 그가 이미 이백 개를 차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 것이다.

그녀는 배각의 품성이 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제기 찰 때 단문기가 웃는 바람에 엉망으로 했다. 맘이 언짢아 몰래 제기를 만들어서 매일 밤잠도 자지 않고 마당에서 제기차기를 했다. 그녀와 좋은 승부를 펼칠 때까지 제기를 차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본래 제기차기에 무슨 기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기는데다가 그는 본래 몹시 총명하니 제기차기에 도가 튼 것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억제를 당해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을 뿐인 것이다.

연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자유자재로 제기를 찰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말 하지도 않고 속에만 두고 중얼거렸다.

‘네가 날 찾아 제기를 차자고 할 때까지 기다릴 거다. 내가 널 아주 놀라게 해주마.“

과연 그녀는 지금 매우 놀라 옆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너는 정말 나쁘구나. 몰래 가서 배운 거냐? 나한테 말도 없더니 나를 속였구나.”

배각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어 입으로는 일면 큰 소리로 외쳤다.

“백구십삼, 백구십사.....”

단문기는 갑자기 뛰어가며 제기를 단숨에 빼앗아 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넌 나빠, 나쁘다고!”

배각은 대소하며 말했다.

“네가 졌어. 아직 안 끝났단 말이야.”

그는 지난 몇 년간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 적이 없었다. 그의 승부욕은 무척이나 강했지만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눌려 평소엔 자연 침울했던 것이다.

단문기는 거의 그의 품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내가 졌어. 네가 바라는 게 뭐야?”

배각은 내심 진탕되었다.

지금 막 해가 떠오르는데 마침 소년의 연애감정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떠오르는 햇살이 단문기의 솜털을 비추자 꿈처럼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나긋한 숨이 배각의 얼굴에 내뱉어지자 배각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다시 잡기 어려운 기회라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의 입술이 단문기의 볼에 닿을 찰나 두 사람은 모두 감전되어 전신이 마비된 것 같았다. 이때는 설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천지만물이 모두 그들 두 사람의 입맞춤을 위해 존재하는 하찮은 것이라 느꼈을 뿐이다.

※ ※ ※

갑자기 커다란 기침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 두 사람은 크게 놀라 당장 떨어져 쳐다보고는 더욱 혼비백산했다. 원래 그들 두 사람의 몸은 옆으로 기대어 서 있었는데 바로 용형팔장의 얼음장 같은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문기가 비록 평소엔 어리광도 부리고 철이 없지만 이때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깜짝 놀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각은 더욱 어찌할 줄 모르고 얼굴이 가지처럼 시뻘게졌다. 양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불안해서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용형팔장의 얼음과 같은 눈빛이 그들의 얼굴을 향해 노려보고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엄하게 말했다.

“기아는 방으로 돌아가자.”

하고는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단문기는 억울한 듯 큰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또한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흘낏 그를 바라봤다. 이때 그녀는 한 줄기 소녀방심이 이미 그의 신상에 가 있음을 자신도 몰랐다.

배각은 단문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것에 놀랐는데 그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그는 더욱 참기 어려웠다. 마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잘못해 그녀가 고통을 받는구나.’

또 다시 생각했다.

‘단대숙은 내가 멍청해 그의 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한숨이 나오는구나. 아! 누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인 나 자신을 부르겠는가. 내가 조금 총명해질 수 있다면 그럼 너무 좋은 거 아닐까?’

한편 그는 놀라서 오랜 동안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개미가 보였는데 멍청하게도 저 보다 훨씬 큰 곤충의 시체를 운반하고 있었다. 행동이 느리고 비실비실하며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이 개미를 응시했다. 심중엔 그가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한 가지 감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나는 비록 멍청하지만 내 자신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종일 남의 집에서 빈둥대는 것은 곤란하다. 내 어찌 남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다 내 어찌 돌아가신 양친을 대할 수 있겠는가. 기매는 어떻게 대할 것이며 또한 내 자신은 어찌 대하겠는가?’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갑자기 의기가 솟자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도 나가야겠다. 일단 나가서 운명을 시험해보자. 내가 성공한다면 이곳으로 금의환향하는 거야. 그때는 단대숙도 다시는 내가 장래성이 없다고 하진 못하겠지. 어쩌면 기매와 내가 같이 있는 것을 기꺼이 허락할 거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갑자기 생기가 충만하고 전신에 활력이 넘치는 걸 느꼈다. 마치 이곳을 떠날 생각이 들자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고무친인지라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해 무슨 고통이 수반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혈기왕성한 배각이 이때 생각해낼 만한 것이다.

‘하지만 소매는 내가 떠나면 분명 죽었다고 괴로워 할 텐데.’

또한 그는 원로진을 떠올렸지만 순간적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정말 금의환향한다면 그녀는 열배나 더 기뻐하겠지?’

그의 성격이 지극히 굴강하여 마음속으로 결정한 일을 바꾼 적이 없다.

그는 일체 다시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의 어떠한 실패, 어떠한 좌절도 그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이때 그의 마음속은 아주 강렬한 소망 한 가지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의 계획에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담장을 바라봤다.

그는 담장 밖은 비룡표국에 속해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담장 주변까지 뛰어가 담장위로 나갈 생각으로 열심히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경공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어 능력이 부족했다. 이 높은 담장을 뛰어올랐다가 쿵하고 땅바닥으로 크게 떨어졌다. 엉덩이에 은은한 통증이 왔다.

그는 추호도 낙담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몸의 먼지도 털지 않고 또 위로 몸을 날렸다.

이번에 그는 양손으로 담장을 기어올랐다. 그래서 그는 붙잡고 놓지 않고 온 몸에 힘을 써서 열심히 담장을 기어올랐다.

담장 밖은 뒷골목이었다. 이때 마침 채소 장수가 짐을 메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그를 이상하게 여기며 흘긋 쳐다보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비록 담장에서 지면까지의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양다리를 굽히고 지면으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