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武俠小說
古龍 孤星傳 / 第五章 鑽石蒙塵 본문
鑽石蒙塵
(찬석몽진: 티끌에 가려진 금강석)
건달 연청(燕青)은 왕년에 경신술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이 연청십팔번(燕青十八翻)은 그가 명성을 떨친 천하의 절기였다. 지금 북두칠살(北斗七煞) 가운데 삼살(三煞) 막서(莫西)가 이 경공을 시전한 것이다. 몸을 도피한 뒤에도 그 부골지저(附骨之蛆)와 같은 냉소소리가 뒤를 쫒았다.
지붕의 기와 위에서 이런 무공을 시전 하는 것은 무림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는 허리, 팔꿈치, 어깨, 무릎 그리고 발꿈치를 한꺼번에 힘을 써서 살쾡이처럼 지붕위로 솟구치며 수중의 접철쾌도(摺鐵快刀)를 춤추듯 휘둘러 일단의 서설(瑞雪) 같은 도광(刀光) 뿌려댔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마구 휘둘렀다.
지금 그는 적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세 번을 솟구친 뒤
도광을 작열해 한 줄기 은빛 무지개를 그어댔다. 신형은 ‘쌩’하고 담장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분명 강적을 대해본 경험이 많아 임기응변의 재주가 과연 최고다. 그는 경공을 시전해 지붕위에서 빠르게 내달려도 그 사람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지면으로 도망치기로 하고 솟구쳐서 숨을 장소를 찾으려고 했다. 혹시 아무데라도 방안에 숨으면 냉월선자가 그를 찾아내는데 몹시 어려울 것이다.
그가 주판알을 튕기는 걸 좋아했지만 그의 발끝에 닿은 곳을 알았다. 또한 등 뒤에서는 등골을 오싹케 하는 냉소 소리가 있었다. 그는 다급해서 팔을 뒤집어 칼을 휘둘렀는데 얼마간의 공력이 있어 강한 바람소리가 일었다.
그러나 그는 이 칼이 절대로 남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발끝을 약간 교차해 맹렬하게 위로 비스듬히 쳐올려 청남색의 도광이 반원을 그리며 그어댔다. 도화(刀花)가 어지럽게 날렸다. 옥대위요(玉帶圍腰) 와 매화착락(梅花錯落)의 두 초식은 사나움, 독랄함, 빠름 그리고 정확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의 도법은 몹시 흉악하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도광이 화려한 가운데 그는 그의 몸 옆을 스쳐가는 귀신같은 하나의 백색 인영을 보았다. 그는 칼을 잡은 손바닥의 식은땀으로 칼 손잡이의 천을 흠뻑 적셨다. 하지만 감히 손을 멈출 수는 없어 칼 한 자루를 빠르게 휘둘러 미처 스며들지 못한 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냉월선자는 차갑게 웃으며 그의 몸 주위를 빙빙 돌며 움직였다. 막서는 ‘오호단문도’의 정묘한 초수를 다 써버려 양팔은 늘어뜨리고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옷자락은 조금도 흔들림 없었다. 본래 그들의 싸움은 객잔의 후원에서 벌어져 당시 객잔에 묵던 여행객들을 놀라게 하여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말고는 창문을 굳게 닫고 있어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봄의 찬 기운이 밤바람과 함께 엄습했으나 삼살막서는 온몸에 땀을 흘렸고 기력이 점점 떨어져 마지막 힘으로 쉭쉭쉭! 연속 삼도를 펼치고 왜소한 체구를 뒤로 젖혀 몸을 담벼락에 붙였다.
그는 칼을 든 채 냉월선자를 바라보고 헐떡거리며 말했다.
“나의 성은 막씨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소. 친구가 고수인지 모르고 오늘 실수를 하였소. 친구가 같은 무림동도로 생각되니 신분을 밝혀주시면 청산이 변치 않고 녹수가 흐르는 한 나중에 뵙게 되면 우리 막씨 칠형제는 친구에게 보답을 하겠소.”
죽음을 목전에 둔 제안이었지만 그의 말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 과연 노강호의 언변이었다. 허나 냉월선자 예청에겐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관심하게 막서를 바라보고 차갑게 웃으며 그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의 문사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밤바람이 불자 옷소매가 나부끼어 옷 안의 성숙한 몸이 더욱 사람의 맘을 흔들었지만 평상시 여색에 목숨을 걸던 막서도 이 때 만큼은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를 감상할 맘이 없었다.
막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당신도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나 막모가 당신의 털끝만큼도 집적거리지 않을 것인데 당신도 구태여 고생해가며 핍박할 필요가 뭐가 있나.”
말투 가운데 이미 뚜렷하게 겁먹은 티가 났다.
예청은 여전히 냉소를 날리며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평소 삼살 막서의 악명이 높았기에 이 노마두에 살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조금도 바뀌지 않고 살기를 품고 움직였다.
그녀는 매우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마치 막서의 마음속을 밟고 있는 듯 했다. 막서는 탄식을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친구 좀 봐봐, 어쩔려구!”
공허한 일성을 내지르며 수중의 칼을 바닥에 던지고는 돌연 손을 번쩍 들자 십여 개의 차가운 빛이 그의 소매에서 발사되어 나왔다. 바로 그의 성명절기인 ‘칠성신노’였다.
칠성신노의 ‘노’라는 것은 독침으로 평소 소매에 관을 설치해서는 용수철을 움직여 발사되는 것이다. 한 통에 일곱 개의 침이 들어 있어 막서는 좌우 쌍수에 모두 한 통씩 설치하고는 위급할 때가 아니면 절대 경솔하게 사용치 않지만 한번 발사되면 상대가 피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는 것이었다.
이때 그가 두 손을 번쩍 들어 14개의 독침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사방 이 장 내에는 모두 그의 독침으로 덮이게 되었는데 냉월선자와 그의 거리가 칠팔 척에 불과하였다. 그녀가 그의 악독한 암기아래에 놓이게 되는 것을 바라보며 막서는 냉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가 암기를 출수할 순간에 그는 이미 한 치의 착오도 없음을 알았다.
막서는 크고 작은 싸움을 거치며 얼마나 많은 무림의 영웅들이 그이 이 작은 열네 개의 독침아래 상처를 입었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냉월선자는 냉소를 거두지 않고 옥수를 가볍게 내젖자 소나기처럼 빠른 열네 개의 비침이 마치 진흙으로 빚은 소가 바다에 들어간 것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잃자 삼살 막서는 얼굴색이 갑자기 창백해져서는 경호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천수서생!“
그는 담벼락에 겨우 기대어서는 발버둥 칠 힘도 없었다.
만일 예청이 이런 독침을 날려버릴 벽공장력을 몰라 혹시 절정의 경공으로 피했더라면 막서는 비록 놀라기는 했겠지만 이같이 놀라서 벌벌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때 예청이 사용한 수법은 분명 천수서생의 독문무공인 ‘만류귀종’으로 수십 년 전 이름을 떨친 천하의 기인인 구선생의 독보천하 절기였던 것이다.
막서가 강호를 오랫동안 돌아다녀 그는 이런 수법을 들어는 봤지만 아직 보지는 못했다. 천하에서 그의 ‘칠성신노’와 같은 암기를 수거하는 방법은 ‘만류귀종’과 같은 수법밖에 없다. 천하의 무림인 가운데 이런 절정신공을 전수할 수 있는 사람은 천수서생부부뿐이었다.
막서는 깜짝 놀라 외쳤다. 그는 비록 입으로 ‘천수서생’을 외쳤으나 마음속의 적수는 냉월선자였다. 예청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양손의 열 손가락을 깍지를 끼고 몸을 훌쩍 날려 달려들며 초식도 없이 뜻밖에도 때리려 들었다.
예청은 냉소를 흘리며 옥장을 휘둘러 발사되었던 14개의 암기가 두 통의 ‘칠성신노‘로 되돌려 보내자 막서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열네 개의 독침이 전부 그의 몸에 꽂힌 것이었다.
냉월선자는 매혹적인 몸을 움직여 휙 스쳐 지나갔다. 번쩍하는 백색의 인영을 눈을 돌려 쳐다보지도 못한 채 죽음이 임박한 막서는 땅바닥에 누워 통곡하고 있었다.
※ ※ ※
예청은 극쾌의 속도로 휙 돌아 지붕을 순시하여 자기의 방을 확실히 알아내고는 여전히 열려있는 창문으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배각은 여전히 진홍색의 여자 의상을 입고 침상에 엎드려 이미 잠이 든 모습 같았다.
예청이 웃으며 살짝 물었다.
“이봐! 자네 자는가?”
배각은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예청은 하품을 하고는 피곤하였지만 전혀 잠이 들지 않았다. 다만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할 뿐이었다.
방에는 등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창문으로 별빛이 들어와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누워있는 침상엔 한 가닥 한기가 느껴졌다. 몽롱한 사이에 배각이 잠깐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져 잠깐 눈을 떠보니 창 안으로 달빛이 들어와 공교롭게도 그녀의 옆에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는 뜻밖에도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사람은 배각이 아니었으며 음흉하게 코웃음을 쳤다. 예청의 얼굴이 흙색이 되어 힘을 한 번에 써서 허리를 굽히고 낚아채려 하자 그 사람은 침상에 오른쪽 팔꿈치로 지지하고 왼쪽 손을 약간 뻗어 예청의 허리 적절한 곳에 점혈을 해서 마치 예청이 자기 허리를 점혈하도록 그에게 갖다 대준 것처럼 되어 예청의 허리가 휘어지며 침상에 엎어졌다.
그 사람은 얼굴에 득의의 빛을 띠우고 신형을 움직여 마치 누군가가 밑에서 그를 받치고 있는 것 같이 침대 위에서 표표히 일어나 몸에 걸친 붉은 비단으로 된 여자 옷을 벗는데 노출된 안쪽 면은 수공으로 만들어진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것으로 소재도 아주 고급스러운 단삼이었다.
그는 침상으로 돌아간 뒤 그가 점혈한 곳을 쳐다보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배각을 바라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 침상 뒤에 걸려있는 회색 장삼을 입고는 매우 슬프고 처량한 모습으로 침상 앞으로 돌아와서는 예청에게 말했다.
“내가 왔으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겠지?”
어조에는 삼푼의 비웃음과 칠푼의 원한이 담겨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결국 내가 너를 붙잡았구나.”
그는 눈에서 흉악한 광망을 번득이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는 손을 뻗어 마치 매가 작은 닭을 움켜잡듯 아주 쉽고 편하게 예청을 움켜잡아 무릎을 점혈하고 창가로 잡아끌고 갔다가 코웃음을 치며 침상 뒤로 잡아끌고 가서 손가락을 검처럼 해서는 배각의 몸 두 곳에 재빨리 점혈하고 신형을 돌려 창밖으로 나갔다.
그의 신형은 아주 경쾌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가벼운 연기 같았다.
※ ※ ※
침상 뒤의 후미진 곳에 엎어져 있던 배각은 속으로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을 느끼고 있었으며 또한 이 모든 일에 대해 그는 좀 막막함을 느꼈다.
방금 흠모하던 예청이 붙잡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치고 배고파하며
고개를 숙여 자기 몸에 여전히 입혀져 있는 진홍색의 여자 옷을 바라봤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일어나 떨쳐 버리려 했던 그는 나온 지 이제 겨우 하루가 되었지만 그가 하루 동안 경험한 일은 마치 그의 일생 중에서 다른 날들을 모두 합친 것과 같았다. 그는 조금 괴롭기도 했지만 흥분되기도 했다.
갑자기 그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들어보니 호리호리한 사람이 보였다. 언제 앞에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치고 뒤로 두 걸음을 물러났다.
그 사람은 회색빛 문사 장삼을 입고 있었는데 배각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대담하게 물었다.
“당신 누구요?”
그 사람은 냉랭히 웃으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배각은 말할 수 없는 한기를 느껴 입을 떨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차갑게 웃으며 몸을 갑자기 약간 움직이며 물었다.
“예청은?”
빛이 창문 밖에서 들어와 그 사람의 한쪽 얼굴을 비쳐서 배각은 그 사람의 옆모습을 보았다. 매부리코에 윤곽이 아주 뚜렷했다. 그 사람은 한 걸음 내딛으며 다그쳐 물었다.
“예청은?”
배각은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나갔어요.”
그 사람이 눈을 돌리자 배각은 신형이 바람처럼 다가옴을 느꼈을 뿐인데 자기 허리는 이미 점혈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손으로 그를 번쩍 들고는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소곤소곤 말했다.
“어쩐지 내가 그녀를 찾지 못하더라니, 원래 그녀는 남자로 변장하고 있었지.”
고개를 숙여 배각을 한번 보고 침을 뱉고는 욕을 해댔다.
“그녀가 뜻밖에도 남자 같지도 않은 너를 맘에 들어 했다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개 같은 년.“
배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감을 갖고 억울함을 느꼈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배각을 침상에 쾅하고 던진 뒤, 배각은 허리부위가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을 뿐 마비되어 바닥에 누워 꼼짝하지 못했다.
이때 그 사람이 그를 붙잡고 떠날 때 그는 가슴과 턱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무공을 조금 알 뿐이라 혈도에 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해서 남이 자기의 혈도를 점혈한 것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 ※ ※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잠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 년이나 된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의 귀는 본래 바닥에 붙어있었는데 그 순간 방안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고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나왔다.
이어서 그는 눈앞에 꽃이 있음을 느꼈고 그의 눈앞에 한 쌍의 빨간 덧신을 신은 발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그 사람의 상체를 볼 수도 없었다.
이어서 그 한 쌍의 빨간 덧신을 신은 발이 움직여 그의 옆구리를 향해 발길질을 하였다. 배각은 전신에 큰 통증을 느꼈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몹시 놀란 듯 ‘엇!’하고 소리를 내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의 독문 점혈이군.”
그는 배각을 옮기고 배각의 등 복판을 십여 차례 아주 빠르게 쳤다.
온몸의 뼈마디가 흩어져 있는 것 같다고 느낀 배각은 가래침을 콱 뱉았다. 몸이 비록 아프지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천천히 버둥거리며 일어나 은색 장삼을 입을 사람을 보니 그의 면전에 서서 얼굴에 경멸의 표정을 띠고 있었다. 아래턱엔 짧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잘 생겼지만 오만해 보였다. 배각이 보기엔 마치 천신 같아서 자신을 생각하니 열등감에 살아났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때는 이미 새벽이 조금 밝아져 있어서 배각은 능히 그의 얼굴 표정을 살필 수 있었고 그 사람도 배각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것이 무척 깔보는 것 같았다.
배각은 마음속에 말 못할 괴로움이 있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때 유독 조용하다고 느꼈다.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지조차도 곤히 잠든 것 같았다.
돌연, 그는 그 사람이 또 한 차례 걷어찼다고 느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의 입을 보고 그는 몇 번이나 움직였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속엔 저도 모르게 극도의 두려움이 치솟았다. 입을 열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단지 지극히 작고 낮은 ‘아, 아’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는 급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틀어쥐었다. 마음속에 갑자기 수십 개의 거석이 꽉 막혀있는 것 같았다. 압박으로 인해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조금의 연민도 없었다.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연민에 대해 그는 도리어 경멸을 했다. 한 손으로 배각의 머리카락을 꽉 쥐고 눈을 몇 번 자세히 보고는 갑자기 손을 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놈의 수법은 정말 지독하구나.”
배각을 한 번 보고는 거듭 말했다.
“너의 장래성이 없음을 탓할 수밖에 없구나.”
발걸음을 돌려 은빛이 번쩍이고 옷을 펄럭이며 조용히 사라졌다. 배각의 시선이 그의 뒷모습을 쫓았는데 그의 신형은 마치 사람의 시선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종적이 사라졌다.
배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벙어리에 자신의 귀까지 먹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 은삼의 중년인이 내뱉은 이야기를 그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 경멸의 기색이 가득했던 것을 배각은 보지 못했다. 그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억압과 괴롭힘을 당했다. 냉월선자를 만나 겨우 무공을 배울 희망을 찾았건만 또 이런 일이 생겼다. 그의 희망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자신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의 불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을 단단히 조였지만 바로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이 세상은 그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이 젊은이는 본래 아침의 태양과 같이 현란하고 다채로워야 하는데 하늘은 오히려 그를 비오는 밤보다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 ※ ※
밝은 태양이 동쪽으로 솟아올라 새벽빛이 활짝 피어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안을 환하게 비췄다.
햇빛이 방안의 먼지를 통해 회색 기둥을 비추자 배각은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빛이 비추는 곳에 먼지가 있을까?”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자신을 위해 답을 찾았다.
“원래 빛이 먼지를 비추었던 것이야. 빛이 없는 곳에도 먼지는 있어. 단지 우리가 볼 수 없을 뿐이지.”
그는 고개를 숙이니 심정은 더욱 쓸쓸해져 그는 생각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빛은 왜 모든 먼지를 다 비추지 않는 거냐? 왜 그 먼지들은 어둠속에 숨어있는 거냐?”
돌연 문 밖에서 객점 주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날이 밝았으니 얼른 일어나 길을 재촉하셔야죠.”
목소리가 우렁찼지만 배각은 한 올도 들리지 않았다. 창밖의 햇살이 한층 더 강렬해졌지만 그의 심정은 창밖의 날씨와는 상반되었다.
“날이 밝았으니 가야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억지로 참고 있지만 눈물은 여전히 그의 눈가를 적시고 있었다.
“사내대장부는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이 작은 방을 한 차례 둘러보다 갑자기 냉월선자가 가지고 있던 작은 보따리가 여전히 탁자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가져갈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내가 가져가도 될까?”
그는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리는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객점에서 잤으니 돈을 내야 하잖아.”
그리고는 그 보따리를 풀자 안에는 과연 금 원보와 얼마간의 은자가 있었다. 그는 약간의 은자를 얼른 집어 들고 그 보따리를 다시 묶은 후 의삼을 단정히 하고 방을 나섰다.
어젯밤 투숙한 후 객점 주인은 배각을 자기도 모르게 달리 보게 되었다. 그는 어젯밤에 두 사람이 들어왔는데 오늘은 한 사람만 나가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게다가 어젯밤엔 여자였는데 오늘 아침엔 남자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자신을 경고했다.
“쓸데없는 짓이야. 어쩌면 이 사람은 도적일지도 모르는데. 네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네게 칼을 겨눌지도 몰라.”
그래서 그는 말없이 달려가고 배각이 조금의 은자를 주자 손을 흔들며 말했다.
“더 많이 가져가세요!”
주인이 보니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었지만 감히 더 말하지 못했다. 예청의 말을 끌고 나오면서 점소이가 웃으며 말했다.
“손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배각의 조상을 욕하고 있었다.
“객점에 묵고 돈도 내지 않다니 네 얼굴에 아주 철판을 깔아야겠구나. 네 몰골을 보니 십중팔구는 몸종이구만.”
하지만 배각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조차 듣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의 마음 속 생각을 알 리 없었다. 고삐를 조이자 마음속으로 다소 흐뭇해했다.
“말이 있으니 나는 어디든 도망갈 수 있다.”
아직은 멀었지만 당연히 그의 이 기뻐함은 우울함보다 낫다.
말을 끌고 걸으며 청각을 잃은 외롭고 처량한 이 젊은이는 자기의 갈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장삼을 걸치고 손에는 철구를 쥔 두 남자가 그에게 곧장 걸어왔다. 등이 약간 구부러지고 태양혈에 고약 덩어리를 붙인 남자가 손을 뻗어 그를 밀치며 말했다.
“너의 이 말은 어디에서 훔쳐 온 것이냐?”
배각은 어찌 된 셈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 남자는 철척을 높이 들며 엄하게 말했다.
“어서 관아의 현령에게 가자!”
길가의 행인들은 짐작하고는 말했다.
“원래 도적을 잡는 관리구나.”
이 두 사람이 관아의 식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 도박판에서 밤샘 도박을 해서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은전을 모두 날려 버리고 아침 일찍 나와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고 싶어 했다. 배각이 아무 말도 못하자 그는 점점 더 의기양양해져 소리쳤다.
“이 놈은 틀림없는 도둑놈이다. 너희들이 보다시피 이따위로 입고 있는데 손에는 이런 좋은 말을 쥐고 있다.”
그는 손을 뻗어 말의 고삐를 빼앗으려 했다. 배각은 깜짝 놀라 허둥대며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아 속으로만 응얼거렸다.
“저기요. 저기요.”
그가 따귀를 때리며 욕을 해댔다.
“니미 씨팔놈아, 너 어린 노무새끼가 아직도 생떼를 쓰는구나.”
또다시 손등으로 따귀를 때렸다.
배각은 화가 치밀어 올라 냅다 뛰어오르며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자 그 관원은 완전히 정신이 돌아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어린 도둑놈이 감히 반격을 해!”
왼손으로 배각의 눈을 가리더니 오른 다리를 걷어차 배각을 땅바닥에 쓰러트리고는 쫓아가서 양 다리를 잡았다. 배각은 용형팔장(龍形八掌)을 따라하며 그토록 오랫동안 무공을 배웠지만 이때는 관청에서 가장 무술이 낮은 사람에게 조차도 맞아서 땅바닥에 나뒹굴 정도로 반격할 힘이 없었다.
“어린 도둑놈을 잡아라“
본래 이런 사람들의 주특기로 그는 한편으론 발길질을 하고 또 한편으론 욕을 하는 것이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목을 옷 속에 움츠리고 콧물이 막 나오려고 하는 마른 남자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장형(張兄), 그만 됐소. 장물을 가져가면 그만이지 이 어린 도둑이 불쌍하니 그냥 놔주시오!”
태양고(太陽膏)를 붙인 공차(公差)는 눈을 돌려 말을 힐끗 쳐다보니 그들이 어젯밤에 잃은 돈을 충분히 메울 수 있는지라 삭이지 못했던 기분이 대부분 풀려서 땅바닥에 있는 배각에게 침을 한 번 탁 뱉고 말을 끌고 막 가려고 했는데 그 마른 남자가 또 한 마디 했다.
“이 어린 도둑놈의 몸에 있는 저 보따리에 어떤 장물(贓物)이 있을지 모르니 자네가 가져와 봐.”
그리하여 배각이 죽어라 붙잡고 있던 보따리를 또 빼앗기고 그 공차는 싱글벙글하며 은자를 챙기고는 그 보따리를 땅바닥에 던져 버렸다.
배각은 땅바닥에서 일어나려 발버둥치고 몸의 통증은 이 굴강(倔強)한 소년의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그러한 굴욕과 모욕으로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려 하는가. 설마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과 모욕을 당하려고 태어났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물건을 강탈해가는 두 사람을 원망했으며 그는 거리를 가득 메운 행인들이 이런 불의한 행동을 보며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던 것도 미워했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는 언제나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 보따리를 주웠고 안에서 약간의 은(銀) 부스러기라도 찾아 구운 떡을 살 수 있기를 바랐으나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 보따리 안에는 남아 있는 것이라고 얇은 책 두 권 뿐이었다.
책은 흑상피지(黑桑皮紙)를 써서 만든 표지에는 글자가 쓰여 있지 않았고 또한 그는 지금도 책을 읽을 마음이 없었다. 한동안 길을 걷다가 배가 고파서 괴로워도 그는 천성적으로 오만한 성격이라 구걸하는 일은 영원히 하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자 호떡을 파는 뚱보가 그를 보고는 가련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호떡 두 개를 쥐어주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는데 배각은 감격하여 목구멍까지 막혔다. 그가 태어나 받은 가장 소중한 증여(贈與)를 받으며 뚱보의 얼굴을 바로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당신은 세 개의 금니를 가지고 있으며 귀에 점이 하나 있군요. 나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에게 보답할 것입니다.’
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그 뚱보는 다른 사람에게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허름한 종이로 호떡을 싸서 주니 배각은 입으로 호떡을 먹으며 마음이 움직여 보따리에서 그 얇은 책 두 권을 꺼내어 그 뚱보에게 건네주었다.
“저는 당신의 호떡을 먹었으니 이제 당신께 두 권의 책을 드리니 당신은 호떡을 싸도록 하세요.”
그는 결국 다른 사람의 한줄기 호의도 거저 얻기를 원치 않았다.
그 뚱보는 두 권의 책을 뒤적거리더니 배각에게 다시 되돌려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볼 필요가 없네.”
그러더니 또 배각에게 호떡을 쥐어주었다.
배각을 그 책 두 권을 쥐자마자 고개를 돌려 달려갔다. 분명히 그 뚱보는 그가 호떡을 더 먹고 싶어 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굴욕적인 비애를 느끼며 달리다가 또 눈이 축축해졌다.
세상에는 천성적으로 오만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하필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받을 때 반항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슬퍼할 것도 없었다. 배각은 아직 광채를 발하지 않는 금강석으로 길가에 자갈과 같이 섞여 있어 사람들에 짓밟혀 누구도 그의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니 이 금강석의 운명은 영원히 남에게 짓밟히고도 과연 빛을 발할 날이 있을까?
'무협소설(武俠小說) > 고성전(孤星傳) - 古龍' 카테고리의 다른 글
古龍 孤星傳 / 第四章 撲朔迷離 (0) | 2019.12.20 |
---|---|
古龍 孤星傳 / 第三章 歷盡滄桑 (0) | 2019.12.20 |
古龍 孤星傳 / 第二章 匆匆七年 (0) | 2019.12.20 |
古龍 孤星傳 / 第一章 幪面殺手 (0) | 2019.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