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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四 第二章 겁후여생(劫後餘生)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卷四 第二章 겁후여생(劫後餘生)

少秋 2024. 11. 13. 00:00

 

第二章 劫後餘生

 

 

연비의 의식은 마치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다 밑에서 점점 위로 떠오르면서 뿌리 없는 부평초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생각이 점차 모이고 차가웠던 몸이 점점 따뜻해지더니 마침내 신음 소리를 내며 두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온 환상적인 풍경은 마치 꿈속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곳은 넓은 방으로 고상하고 간결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담요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쪽 창문에서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왔고 밖은 온통 은백색으로 방금 큰 눈이 내린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감각이 매우 기괴하고 괴이하다고 느꼈다. 눈앞에 있는 이곳은 이전 세계와 조금도 연결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그저 모호하고 불분명한 부서지고 조각난 기억일 뿐이지만 말이다.

 

햇살은 강하지 않았지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 급히 눈을 감고 빠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는 자연스럽게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손발은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몸 안에 가득 차야할 진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전혀 모아지지 않았다.

 

연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이미 내공을 잃고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연비는 시선을 방문 쪽으로 돌렸는데 문 밖은 소청(小廳)인 것 같았고 누군가 소청으로 들어와 방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까?

 

한 어린 시비가 문턱을 넘어 눈앞에 나타났는데 비록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오관이 단정했고 두 눈이 커서 호감이 갔다. 그녀는 방 안에서 자고 있던 연비가 깨어난 줄은 생각지 못한 듯 가볍게 걸어 들어와 곧장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나무 대야를 침대 머리맡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또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내려 물속에 넣었다.

 

연비는 "아가씨"하고 부르고 싶었지만 갑자기 말을 하기가 무척 어려워 목까지 올라온 소리는 신음 소리로 변했다.

 

시비는 온몸을 심하게 떨며 얼굴에 매우 괴이한 표정을 짓더니 장막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 연비를 보고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두 걸음 뒤로 물러나 가슴을 감싸 안고 두 눈에서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쏘아냈다.

 

연비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대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녀는 입술을 가볍게 떨며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아래쪽 다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고 문 옆에 다다르자 비명을 지르며 뒤 돌아서 소청을 지나 어디론가 뛰어갔다.

 

연비는 무력감을 느끼며 침대에 다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지옥이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죽기 전의 세상과 조금도 다를 게 없네. 만약 방에 들어온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모친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이 조금씩 기억의 바다로 돌아왔고 등에는 아직도 임요가 쌍장으로 전력으로 강타한 차가운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접련화는?

 

연비는 다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고 방 한쪽 벽에 무사히 걸려 있는 접련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방의의 참채도(斬菜刀)가 걸려 있어 마음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솟았지만 이내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그에게 접련화는 이미 제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설마 임요의 쌍장이 뜻밖에도 자신이 어려서부터 수련한 내공을 흩어 놓았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단겁(丹劫)의 후유증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발소리가 다시 일어나더니 세 명에서 여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분명히 발소리로 오는 사람의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비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는 사람들이 임요나 요녀 청제(青媞)만 아니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곤란해질 것이다.

 

남자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너희는 여기 있거라."

 

연비는 조금 안심했다. 임요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형, 깨어나셨소?"

 

연비는 깜짝 놀랐다. 그는 누군가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눈을 뜨자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청의 무사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침대 옆에 서 있었는데 두 눈에서는 기쁨과 간절함이 가득한 눈빛을 쏘아내며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연비는 일어나 앉아서 두 손을 구부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릿속의 잡생각을 털어내며 조용히 물었다:

"여긴 어디요?"

 

남자는 침상의 장막을 걷어 고리에 건 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친절하게 말했다:

"이곳은 건강성 오의항에 있는 사씨 저택이오."

 

남자는 동정심과 애석함이 담긴 표정을 드러내며 가볍게 말했다:

"연형은 변황집에서 임요에게 부상을 입고 줄곧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소. 사현 소야께서 연형을 수양으로 보낸 뒤 이곳으로 다시 보내셨소. 다행히 하늘이 도우셨는지 연형이 마침내 깨어나셨구려."

 

그리고 주저하며 물었다:

"연형의 현재 상태는 어떠시오?"

 

연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최소 열흘 이상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얼마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정확히 백 일이 되었소!"

 

연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라고요?"

 

그 사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딱 백 일이었소. 사현 소야께서 임요를 격퇴하고 연형을 구해내셨을 때 연형은 도가의 수련자들이 드물게 겪는 태식(胎息) 상태와 유사한 상태에 빠져 있었소. 생기가 거의 끊기고 오직 심맥만 천천히 뛰고 있었소. 백 일 동안 연형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고 의술과 단도에 정통한 지둔대사(支遁大師)조차 연형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소."

 

연비는 비단 장막을 젖히고 근육과 뼈를 쭉 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했고 내공을 잃었음에도 의기소침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문 쪽을 바라보니 몇몇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부내 경비원과 비복(婢僕) 같은 인물들로, 그 큰 눈을 가진 그 시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연형, 몸은 좀 어떠시오?"

 

연비는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귀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오?"

 

그 사람이 대답했다:

"저는 송비풍(宋悲風)으로 사안 어르신의 수행원입니다."

 

연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송형이었군요. 변황집에서 송형의 대명을 들은 적이 있소."

 

송비풍은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연비가 말했다:

"송형은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지금 상태가 매우 좋소. 백 일 동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지만 여전히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지 않으니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요. 오늘이 이미 춘절이 지난 것이 아니오?"

 

송비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형은 운기행혈(運氣行血)을 할 수 있으시오?"

 

연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방면은 완전히 끝났소. 앞으로 무공과 검술과는 인연이 없을 것이오!"

 

송비풍은 크게 놀라며 마음이 아프고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하려다 말더니 마침내 말했다:

"정말 이상하구려! 연형이 만약 부상이 너무 심해 진기가 난행(亂行)하여 내공이 흩어지는 화를 입었다면 가벼우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려 반신불수나 발광하게 되고 무거우면 분경겁난(焚經劫難)으로 죽게 되오! 어찌 연형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멀쩡할 수 있단 말이오? 게다가 눈 속의 신채(神采)가 모여 흩어지지 않고 감추어져 있으니 그 속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묘한 것이 있을 것이오."

 

연비는 조용하게 말했다:

"생각해도 모르는 일은 신경 쓸 필요가 없소. 나는 비록 무공을 잃었지만 정신은 매우 맑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위안감이 들기도 하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건강이 오 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싶소."

 

송비풍은 연비가 무공의 존폐에 개의치 않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탄복했고, 또 그가 남진을 위해 세운 대공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흔쾌히 말했다:

"연형께서 유흥이 크게 발동하셨다니 송모는 기꺼이 주인된 도리를 다하겠소. 다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즉시 사안 어르신과 고공자께 알려야겠소."

 

연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고공자요?"

 

송비풍이 말했다:

"고언 공자 말이오. 공자께서는 그대가 이곳에 온 것을 아시고 두 달이 넘도록 매일 한 번씩 찾아와 주셨는데 눈보라가 몰아쳐도 변함이 없으셨소. 역시 연형 같은 영웅호한만이 고공자와 같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오."

 

연비는 놀라며 말했다:

"고언 그 녀석이라고요? 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송비풍은 문 밖에 서 있는 비복들이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고 공자는 풍류를 즐기는 인물인데 변황집이 이미 불타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즐기며 지내고 있소. 하지만 그대에게 확실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소기(小琦)도 그가 몇 번이나 그대의 침대 옆에 앉아 몰래 우는 모습을 보았다오."

 

연비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녀석이 나를 위해 울다니요?"

다시 아연실소하며 말했다:

"혹시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난 건가?"

 

송비풍은 두 사람 사이의 복잡한 사정을 확실히 알 수 없어 연비의 어깨를 두드린 뒤 일어나며 말했다:

"소기가 연형제의 머리를 빗고 세수를 시켜드리며 옷을 갈아입는 것을 시중들 것이오. 그녀는 제가 부리는 어린 여종으로 매우 똑똑하고 영리하다오. 다만 조금 전에 연형의 모습에 깜짝 놀란 모양입니다."

 

하하 하고 웃으며 방을 나섰다.

 

연비는 침상 끝으로 옮겨가 두 발로 땅을 디디니 큰 재난을 겪고 살아남은 느낌이 솟구쳤다. 비록 앞으로 복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청제(靑媞)와 임요(任遙)를 포함해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죽지 않은 이상 무공을 잃은 후의 평범한 생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공자님!"

 

연비는 고개를 들어 두 발에서 소기의 겁에 질린 표정의 커다란 두 눈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내가 무서우냐?"

 

소기는 예쁜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가슴을 두드리며 귀여운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비가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아! 요 며칠 동안 공자께서는 계속 가만히 누워만 계시고 코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다행히 몸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아! 소비는 정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비는 어이없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강시(殭屍)로 생각한 것이냐?"

 

소기는 부끄러운 듯 커다란 눈으로 그를 훔쳐보더니 난처한 듯 말했다:

"소비가 겁이 많아서요. 공자님께서는 나무라지 마세요. 공자님은 정말 친절하고 자상하세요. 이제 건강을 회복하셨다니 하늘에 감사드리고 땅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어서 가는 허리를 살짝 틀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어서 와서 공자님 시중을 들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저택의 위사 한 명과 건장한 하인 두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와 연비를 부축하려 했다.

 

연비는 손짓으로 제지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썼는데 몸을 바로 세우는 순간 한줄기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온몸에 퍼지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위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공자님,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십니까?"

 

잠시 후 연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바로 힘이 없어져 손을 뻗어 위사의 어깨를 짚고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

"형씨의 성함을 알고 싶소."

 

젊은 무사는 총애를 받자 놀란 듯 말했다:

"저는 양정도(梁定都)라 하며 송 어르신의 제자입니다."

 

다른 부복은 연비의 성격이 온화하고 친근한 것을 보고 담력도 커져서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슨 제자라고? 송 어르신께서는 정식으로 제자를 거두신 적이 없는데."

 

양정도는 그들과 말다툼하는 것에 익숙한 듯 빈정거리며 말했다:

"어째서 제자가 아니란 말인가? 적어도 반 제자는 되지. 송 어르신께서 나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내게 상승검법을 전수해 주셨겠는가?"

 

소기는 오히려 기뻐하며 웃으며 말했다:

"싸우지 마세요! 빨리 공자님의 머리를 빗겨드리고 옷을 갈아 입혀드리지 않으면 송 어르신께서 돌아오셔서 공자님께 안공(安公) 어르신을 뵈러 가자고 하실 텐데, 그럼 여러분들은 혼이 날 거예요."

 

연비는 여전히 방금 일어났을 때의 그 이상하고 기묘한 온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집안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그가 어렸을 때만 느꼈던 감정이었다.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끊임없이 그의 뇌리 속에 떠올랐고 전생의 윤회와도 같은 기억의 지도를 다시 그려나가다가 갑자기 입을 열어 물었다:

"사현이 전쟁에서 이겼느냐?"

 

이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사현의 영명하고 용맹함을 칭찬하며 부견을 크게 패퇴시키고 물러나게 했는지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전쟁 평론의 전문가가 된 듯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연비는 진군이 비수대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송비풍이 말했던 변황집이 이미 타버려 폐허가 되었다는 것도 기억났다.

 

또 다른 놀라운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유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느냐?"

 

양정독과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유유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소기가 말했다:

"연공자께서 말씀하신 분은 유부장(劉副將)님이신가요? 그분이 직접 공자님을 오의항으로 모셔왔어요! 그 후에는 황급히 떠나셨어요. 그분은 고공자님의 친한 친구이신데, 고공자님을 모셔온 것도 그분일 거예요."

 

연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유유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승진하여 부장이 되었으니, 이는 적어도 두 달 전의 일이다. 그의 현재 상황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아!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방의가 있는데 자신은 더 이상 도울 수 없으니 그저 통지하고 경고하는 책임만 다할 뿐이다. 갑자기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두 눈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거리가 아니라 심리상의 거리였다. 연비는 더 이상 칼끝에 피를 묻히는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안은 뒷짐을 지고 동원의 망회각(望淮閣)에 서서 난간에 기대어 아래로 영원히 지치지 않고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지치고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비수대전이 가져다준 기쁨은 이제 조정의 치열한 싸움으로 대체되었다. 사마요가 매우 나태해졌고, 두 달 전부터 사마도자가 바친 미녀를 귀인으로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북방 호족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자 조정의 정치를 소홀히 하고 매일 밤 내전에서 이 여자와 주연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들었고, 권력은 점차 사마도자의 손에 떨어지게 되어 사안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사위 왕국보가 사마도자와 함께 끊임없이 사마요에게 그에 대한 나쁜 말을 하여 그의 명성을 손상시키고, 사마요가 그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송비풍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연공자께서 도착하였습니다!"

 

사안은 마음속의 시름을 떨쳐버리고 흔쾌히 몸을 돌려 두 눈을 반짝이며 눈앞에 포의유복(布衣儒服)을 입고 있지만 여전히 그 비상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 젊은 청년을 살펴보았다.

 

연비도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천하제일의 명사로 불리는 이 풍류 재상은 강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선풍도골(仙風道骨) 같은 선인(仙人)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안이 장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높은 봉우리는 구름 속에 솟아 있고 맑은 시내는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니 제비는 하늘 높이 나는구나. 연소제가 건강을 회복하였으니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연비는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이 벅차올라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공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안공의 칭찬은 감당하기 부끄럽습니다. 연비는 무공을 모두 잃어 세상사에 이미 마음이 식고 재가 되었으니 다시는 높은 하늘을 날겠다는 뜻은 없고 그저 평범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사안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난간 옆으로 끌어당겨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멀리 바라보게 한 뒤에야 손을 놓았다.

 

송비풍은 조용히 물러섰다. 그의 마음속에는 연비가 무공을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통한 감정이 가득했다. 그는 방금 연비의 맥박을 짚으며 연비의 내기가 모두 사라져 이미 평범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연비는 당대의 이름난 재상에게 특별히 총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총애에 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줄곧 아무 구속 없이 자유롭게 행동했고, 오만하고 무리와 어울리지 않았으며, 조금도 권세와 지위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사안에게는 존경심이 우러나왔는데 사안의 신분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선비인 자신에게 전혀 거들먹거리지 않는 것을 보고 그의 흉금과 기개를 알 수 있었고, 그의 고아(高雅)한 말투와 행동거지는 더욱 그를 감동시켰다.

 

사안은 넋을 잃은 듯 마음이 끌려 말했다:

"황초(黃初) 사 년에 조식(曹植)이 하루는 경성을 나와 해질녘에 낙수洛(水) 가에 이르러 한 미녀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마치 놀란 기러기처럼 경쾌하게 움직이며 유룡(游龍)처럼 우아하게 서 있어 멀리서 보면 막 떠오르는 아침햇살처럼 밝았고 가까이서 보면 마치 연꽃이 푸른 물결에서 나온 것 같았다고 하네. 이에 마음이 미혹되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여인이 옥잔을 들어 바치며 깊은 연못에서 만나기를 청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하네. 그때서야 조식은 낙수의 여신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으나, 사람과 신은 길이 달라 사귈 수 없음을 깨닫고 조식은 밤새 배회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고 마침내 후세에 길이 전해지는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고 하네."

 

연비는 진회하 건너편을 응시하며 백설(白雪)에 정화된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상과 강 위를 오가는 배들을 보았고 귓가에는 사안이 갑자기 옛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에게 인간과 신의 사랑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는 소리가 들렸으며 자신의 상실감과 미망감에 더해져 마음속에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사안은 풍류 명사로 불리기에 부끄러움이 없었고, 연비는 그가 이 옛 이야기를 빌려서 마음속에 쌓인 울적한 정서를 토로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으며, 또한 그에게 연비가 옛 친구처럼 보자마자 그를 깊이 이야기할 만한 대상으로 여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복비(宓妃)는 복희씨의 딸로 낙수에 빠져 낙수의 신이 되었으며,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조식의 '낙신부'는 결실을 맺지 못한 인간과 신의 괴로운 사랑을 묘사한 것으로, 조식 자신이 가족과 왕조에 대한 그리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루지 못할 큰 뜻과 억압받는 정서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낙신은 바로 이상의 상징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상은 덧없이 신처럼 멀어져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다가갈 수 없으니, 이것이 사안의 현재 모습이다.

 

연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몸 서남풍이 되어 먼 길을 가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 그대 품이 끝내 열리지 않는다면 천첩은 어디에 의지해야 할까요? 이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안공께서는 어찌하여 동산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희망이 없는 곳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가 읊은 네 구절의 시문은 조식의 「칠애시(七哀詩)」에서 나온 것으로, 그의 문무를 겸비한 재능을 충분히 드러내어 청담(清談)에 능한 사안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으며, 사안에게 그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사안은 나이를 잊고 지기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어 갑자기 말했다:

"대진(大秦)은 끝났네!"

 

연비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요?"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탁발규(拓跋珪)였다. 대진이 망한다면 북방은 즉시 사분오열(四分五裂) 될 것이고, 이 일은 비수대전 후 백일 이내에 일어난 것이니, 탁발규는 아직 진각(陣腳)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난세에 일어난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