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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지우지은(知遇之恩)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第十一章 지우지은(知遇之恩)

少秋 2024. 10. 10. 00:00

 

第十一章 知遇之恩

 

 

연비는 아무런 목적 없이 변황을 떠돌며 일부러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된 마을을 피하고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을 골라 동쪽으로 갔다. 배가 고플 때는 야생 채소를 따서 허기를 채우고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아 유랑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무공을 연마했다. 요 며칠 동안 그는 고수와 여러 차례 겨루며 큰 도움을 받았고 이전에는 깨닫지 못하고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무공의 미묘한 부분들을 이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이에 갑자기 깨달았다. 하지만 일월려천대법(日月麗天大法)에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날 밤 그는 한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는데 반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고 마음속은 허탈했고 게다가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쪽으로 사, 오리쯤 떨어진 곳에는 오십여 채의 허물어진 집으로 이루어진 황촌이 있었는데 전쟁의 만행을 고발하는 듯 처량하고 고독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가득했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탁발규나 남방 한인에 대해 그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그가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황집 제일루에서 한족 황인들이 집단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 같은데 갑자기 여기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마치 꿈같고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변황집을 멀리 벗어나 안전하다는 느낌에 오히려 일 년 동안 익숙해진 나른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돌아갔다. 어떤 일에도 활기차게 나서려는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 선택을 해야 했다. 적어도 방향이라도 정해야 했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가면 결국에는 바다의 가장자리에 닿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움직였다. 듣자 하니 해외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고 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는 왜국(倭國)과 이주(夷州)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이미 중원의 전쟁과 고통에 대해 깊이 염증을 느끼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바다를 건너 전쟁이 없는 낙토(樂土)를 찾아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설령 분노한 바다에 몸을 묻힌다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연비는 산꼭대기를 떠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부견은 기병을 이끌고 대채의 남문을 나와 곧장 채 밖의 한 고지로 달려갔다. 좌우에는 걸복국인, 모용영, 독발오고, 저거몽손, 여광, 주서 등 여러 대장들이 수행하였고, 뒤에는 백여 명의 친위병 전사들이 뒤따랐다.

 

영수 너머로 봉화 연기가 밤하늘로 치솟았는데 그곳은 변황집과 가장 가까운 봉화대였고 봉화 연기로 변황집에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런 봉화대는 백여 개가 있었고 영수 서안에 두루 분포되어 전선과 후방의 신속한 소식 전달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견은 봉화가 갑자기 피어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흥분되어 즉시 채를 나와 직접 살펴보았다.

 

기마대가 한바탕 바람처럼 산꼭대기로 휘몰아쳤고 부견이 말을 멈춰 세우자 여러 장수와 병사들은 급히 말을 통제하며 그 뒤에 섰다.

 

부견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수양이 이미 함락되었구나!"

 

여광(呂光)이 급히 말했다:

"천왕의 홍복에 힘입어 수양을 일격에 무너뜨렸으니 건강도 머지않았습니다."

 

저거몽손이 장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남방 아이들의 담력은 쥐새끼처럼 작습니다. 저 몽손이 보기에 사현은 이미 꼬리를 말고 건강의 보금자리로 도망쳤을 것입니다."

 

걸복국인은 저거몽손과 여광처럼 흥분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전선의 쾌마가 날이 밝기 전에 돌아올 것이니 그때 우리는 수양의 확실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견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주경(朱卿), 그대는 남방의 상황에 가장 익숙하니 이에 대해 어떤 견해와 의견이 있는가?"

 

주서는 그의 질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가 말을 듣자마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답을 했다:

"북부병의 현재 총 병력은 약 8만 명 정도이며 약 일할이 기병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병입니다. 현재 수양(壽陽), 협석(峽石), 우이(盱眙), 회음(淮陰), 당읍(堂邑), 역양(歷陽) 등 여섯 개의 강북 중진(重鎮)에 병력을 나누어 주둔시켜 아군이 회수를 건너 기습하는 것을 방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많은 병력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나누면 약해질 것이니 수양의 수비군은 분명 오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호빈은 우리가 수양을 공격하는 군사력이 방대하다는 것을 보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수양의 주둔군을 협석성으로 철수시키고 팔공산의 험준함과 비수의 격절함에 의지하여 두 성의 병력을 모아 완강하게 저항하려는 것입니다."

 

모용영이 냉소하며 말했다:

"이것은 확실히 별다른 방법이 없어 시행한 유일한 계책이지만 우리의 기습 부대와 정면 공격 부대의 좌우 협공이라는 고명한 배치에 딱 들어맞습니다."

 

부견이 하늘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사현의 재주는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주서는 속으로 계략에 빠진 것은 너희들이라고 생각하며 기회를 틈타 진언하였다:

"잠시 후 전선에서 정탐병이 돌아오면 호빈이 싸우지 않고 후퇴한 것에 대한 소신의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소신은 또 다른 제안이 있습니다. 만약 호빈이 소신이 예측한 대로라면 북부병의 병력이 분산되어 약해질 것이니 대왕께서는 친히 전선에 임하여 군사를 독려하고 작전을 수행하시면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일거에 협석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강변까지 진출해도 진나라 사람들은 반격할 힘도 없을 것이니 그때 건강은 기세에 눌려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걸복국인은 주서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측 보군 중 변황집에 도착한 것은 십여만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이동 중이며 게다가 피로가 극에 달했으니 지금 수양을 얻었고 협석도 머지않았으니 천왕께서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시고, 서두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행동하시면 자연스럽게 천하를 통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견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두 분 경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으나 우리의 두 갈래 선봉군을 합치면 병력이 이미 이십만이나 되니 설사 북부병이 모두 협석성에 모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짐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만약 주경의 예측대로 된다면 내일 아침 짐이 친히 이만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전선으로 달려가 협석을 공격할 것이니 그대들은 오늘 밤 반드시 행군 준비를 마치도록 하라."

 

중인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호응하였고 심지어 상반된 의견을 제시한 걸복국인도 협석을 취하는 것은 열에 아홉은 확실한 일이라고 여겼다.

 

주서는 사현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졌는데 그가 말한 것은 사현이 밀서에서 지시한 것에 부합하였고 사현은 편지에서 부견이 반드시 계략에 빠질 것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었다.

 

부견은 말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려 영지(營地)로 달려갔고 그는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목표에 대해 이때만큼 충분한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

 

유유는 협석성 서쪽 성벽에 올라 사현이 호빈의 배석 하에 손을 뒤로 한 채 산처럼 우뚝 서서 팔공산 발치 비수 서안에 있는 적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온몸에 백색 베옷 유복을 입고 찬바람 속에 옷소매를 휘날리며 천하를 떨게 하는 구소정음검(九韶定音劍)을 메고 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감과 강인한 기백이 흘러나와 마치 속세에 내려온 천신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공경하게 하였다. 특히 그가 천하제일명사인 사안의 전장에서의 대표라는 생각을 하니 유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유유는 평소 고고한 명문 귀족에 대해 악감(惡感)만 있을 뿐 호감은 없었지만 사씨 가문만은 유일하게 예외였다. 사현 한 사람만으로도 그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게 했는데 하물며 만인이 우러러보는 사안이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사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유유는 가슴이 벅차올라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장(裨將) 유유는 다행히 명을 욕되게 하지 않고 현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사현은 번개처럼 앞으로 다가와 그가 꿇어 엎드리기 전에 그를 일으켜 세우고 두 손을 꼭 잡으며 신묘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 대 진나라 남아답구나! 수고했다!"

 

유유는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현을 접하자 하마터면 감동하여 말을 잇지 못할 뻔했다. 쉴 새 없이 달려와 보고하느라 쌓인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 눈이 빨개진 채 말했다:

"현수님……저는……"

 

사현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모든 노력과 갖은 고난 그리고 위험한 과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고 그에게 상하의 구분이나 귀족과 비천한 가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도 없다는 듯 그의 팔을 끌어당기며 성벽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의 친위병들은 눈치껏 옆으로 피해 그들이 밀담을 나눌 수 있게 해주었다.

 

두 사람이 호빈의 곁을 지나가자 호빈은 손을 뻗어 유유의 어깨를 툭툭 치며 태도가 친절하고 우애롭게 굴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유유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는 태도가 천양지차였다.

 

유유는 갑자기 꿈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히 심부름만 하는 작은 인물이 아니라 이미 북부병 지도층의 핵심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니 앞으로의 발전은 무한할 것이다.

 

사현은 마침내 멈추고 서서 그를 놓아주고 시선을 수양으로 돌렸다.

 

유유도 수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팔공산의 동쪽 길을 따라 산을 올라 입성하였기에 지금에야 비로소 수양의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 비수 서안의 군영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고 등불이 밝게 켜져 있어 수양성의 안팎이 대낮처럼 밝았고 적의 군영은 성벽에 기대어 설치되어 있었으며 깃발이 펄럭이고 진영이 엄청났다.

 

수양성의 성문은 모두 부서졌고 성문 조교(吊橋)는 철거되었으며 해자의 물길이 끊겼을 뿐만 아니라 모래와 돌로 메워져 있었고 불을 질러 성을 태우기만 하면 되었다. 성안에는 반 톨의 양식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며 화살과 병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쪽 팔공산 산자락 근처에는 수십 개의 전루(箭壘)를 쌓아 산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분포되어 있었는데 가장 낮은 곳은 비수에서 불과 수백 보 거리에 있어 마치 수호신처럼 비수에서 가장 얕고 넓어서 도하가 가능한 지역을 꽉 쥐고 있었다.

 

적은 비록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유유는 적이 사람도 지치고 말도 지쳐 아군의 지금 강을 건너 기습을 해도 대응할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견이 싸우지 않고 수양을 얻어 원래의 계획했던 부대 배치에 문제가 생겼다. 양성의 군대는 내일 저녁에야 비로소 회강을 건너 낙간 서안에 도착할 수 있어서 부융은 반드시 양성(梁成)이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야 비로소 동서 양쪽에서 고립된 협석성을 협공하는 대계를 진행할 수 있는데 이 점만 봐도 사현이 이미 곳곳에서 선기를 점하고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사현은 뒷짐을 지고 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강한 척하면 오히려 약함이 드러나고 약한 척하면 오히려 강함이 드러난다. 부융아! 너는 아직 조금 부족하구나."

 

유유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왜 사현이 남조(南朝)에서 조적(祖逖), 환온(桓溫) 이후 가장 뛰어난 병법의 대가로 추앙받는지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가 적을 대함에 있어 침착한 태도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기품을 보니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자신도 뒤지지 않았지만 자신은 적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사현이 말했다:

"소유는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나에게 자세히 말해라."

 

  ※※※

 

연비는 황촌(荒村)으로 통하는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폐허가 된 마을을 돌아 계속 동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막 오솔길을 떠나려다 갑자기 무언가를 느껴 길가의 큰 나무를 바라보니 그 큰 나무의 밑동에서 1장쯤 떨어진 곳에서 금속 물체가 반사되는 번쩍거림이 있었다.

 

연비가 정신을 차리고 보더니 가슴이 철렁하여 땅에서 펄쩍 뛰어올라 나무에 박힌 물건을 뽑아내어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연비는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방의의 감채도(砍菜刀)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지시에 따라 황야로 도망치다가 이곳에 이르러 변고를 만나 호신용 감채도를 던져야 했는데 목표물을 맞히지 못한 것을 보니 흉이 많고 길이 적은 것 같았다. 다행히 주변에 핏자국이나 시체는 보이지 않아 아직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그는 감채도를 허리춤에 꽂고 방향을 바꾸어 오솔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며 마을 안에서 부상을 입고 숨어 있는 방의를 찾기를 바랐지 그의 시신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

 

유유가 말을 마치고 조용히 사현의 지시를 기다렸다.

 

사현은 수양을 응시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유, 너는 정말 잘했어. 너에 대한 유참군(劉參軍)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네가 이야기한 과정을 보면 너의 복이 많고 앞으로의 전도가 무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나는 너를 군에서 달리 대우할 것이다. 지금 당장 너를 부장(副將)으로 삼을 테니 계속 노력해서 일을 잘 처리하도록 해라."

 

유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처럼 편장(偏將)을 건너뛰고 두 계급이나 승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현이 그를 잘 키워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급히 무릎을 꿇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사현은 다시 한 번 그를 일으켜 세우며 흔쾌히 말했다:

"이것은 네가 지혜와 용기로 쟁취해 온 것이다. 특히 돌아오는 길에 양성 일군의 동향을 철저히 파악한 것은 이번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었다."

 

유유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었다. 북부병에 들어간 이후로 그는 줄곧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랐는데 모든 노력이 이 순간 마침내 값진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현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 후에 물었다:

"네가 보기에 탁발규는 어떤 사람이냐? 과장하지도 말고 그가 호인(胡人)이라고 해서 일부러 폄하하지도 마라."

 

유유는 사현이 다른 부귀한 집안의 명사들과 구별되는 점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한말(漢末) 이후로 인물을 품평하는 풍조가 크게 성행하여 지금까지도 쇠퇴하지 않았다. 강좌의 명문들은 인물을 품평할 때 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명한 가문이 아니면 경시하는 마음을 품었고 호인에 이르러서는 모두 저급한 문화를 가진 야만인으로 여겼다. 사현처럼 특별히 그에게 일깨워 준 것만 봐도 사현의 독특한 면을 알 수 있었다.

 

유유는 머릿속에 복잡하게 쌓인 자료를 정리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탁발규는 식견이 남다른 사람으로 모든 통솔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일을 멀리 내다보며 투철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며 작은 것을 보고도 큰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수님께서 수양을 버리고 떠난 것만 보고도 현수님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신념을 가지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유일한 단점은 지나치게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인데 만약 그에게 권력을 쥐어준다면 무서운 전횡 폭군이 될 수 있습니다."

 

사현은 두 눈에 놀라운 기색을 내뿜으며 유유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구나. 하지만 너의 지혜와 탁발규가 서로 같지 않다면 결코 그의 장점과 단점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이다. 네 생각으로는 통솔자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유유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추태를 부리지 않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 했다. 그는 자사 대인처럼 말하고 싶었지만 사현이 아부한다고 나무랄까 봐 두려워하며 할 수 없이 말했다:

"미천한 제가 보기에 통솔자는 천군만마의 조직을 지휘하는 자로서 반드시 자신과 적을 알고 순식간에 변하는 전장에서 위기에 처해도 흔들리지 않는 지도력와 결단을 내려야 하니 이는 마치 노도를 헤치고 배를 모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변황집 안에서 탁발규는 바로 이러한 특질을 보여주었고 특히 무너진 화로를 등에 업고 있는 것만으로도 임기응변의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제가 일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여 주대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 그가 끝까지 반대해 준 덕분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고, 사후에 생각해 보니 매우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사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당시 내가 너였다면 상황의 경중과 완급에 따라 곧바로 돌아와 적의 중요한 군 정보를 즉시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탁발규의 탁월함을 더욱 엿볼 수 있다."

 

이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탁발 선비족은 용맹하게 잘 싸웠고 대국(代國)은 비록 망했지만 탁발 선비는 새외에서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탁발규가 이끄는 도마적군(盜馬賊群)은 서북을 종횡무진하며 부견도 어쩌지 못하고 있고 나도 그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만약 탁발규에게 탁발 선비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하게 한다면 반드시 강력한 군대를 일으켜 북방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것이다."

 

유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줄곧 모용수와 연계하고 있고 모용수도 줄곧 그를 자기 사람으로 삼으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 사람됨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용수가 호랑이를 키워 화를 자초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탁발규는 결코 다른 사람 밑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모용수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현은 다시 한 번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말투는 온화하고 친근하여 담담하게 말했다:

"소유, 너는 또 어떠냐?"

 

유유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급히 말했다:

"비직은 단지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사현은 호탕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사람은 누구나 대담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나라고 해서 어찌 그렇지 않겠느냐.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들은 점차 버려지거나 바뀌게 된다. 지금 나는 그저 진 황실을 부흥시켜 백성들이 안락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유는 속으로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존경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대사를 이루는 사람은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녀자의 인자함도 버려야 한다. 연비처럼 친근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도 천하를 다툴 만한 재목은 아니며 그럴 마음도 없다. 자신과 탁발규 같은 사람이라야 영웅을 논할 수 있다.

 

사현이 말했다:

"천군은 얻기 쉬워도 한 명의 장수는 구하기 어렵다. 너 같은 인재를 사현은 결코 묻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여정이 고단했을 테니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부터 내 옆에서 잘 배우도록 해라."

 

유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현에 대한 지우감은(知遇感恩)의 마음이 생겨났다. 사현의 흉금과 기개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비로소 마음속에 있던 가장 진실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즉 그를 높이 평가하는 손무종(孫無終)에게도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원대한 포부를 꿰뚫어 보지 못하도록 머리를 숨기고 꼬리를 감추어야 했다.

 

그는 동시에 결심했다. 사현이 살아 있는 한, 그는 전심전력으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다. 사현은 그토록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 마디 말로 그의 재능과 기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인사를 하고 물러가려 할 때 사현은 갑자기 가볍게 말했다:

"이건 한 마디 여담인데, 소유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보거라. 물론 드러누워 잠이나 자라는 것은 아니다."

 

유유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여전히 잠자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쁜 여자를 안고 푹 자고 싶습니다."

 

사현이 크게 웃는 가운데 유유는 성의 돌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호빈을 지날 때 호빈이 손을 뻗어 그를 꽉 잡자 그의 마음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이미 이 중요한 장수의 교분을 얻었으니 장래의 전도가 더욱 유리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돌계단을 내려갈 때 그는 잊을 수 없는 전우 연비를 떠올렸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