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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단겁지난(丹劫之難)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第十一章 단겁지난(丹劫之難)

少秋 2024. 11. 5. 00:00

 

第十一章 丹劫之難

 

 

연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요녀 청제(靑媞)가 예상했던 것처럼 육신의 모든 감각이 얼어붙어 사라지고 점점 죽음에 이르는 정신만 남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뒤로 넘어지는 순간, 앞서 침입하여 줄곧 억제되어 있던 '소요제군'의 진기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잠복처에서 튀어나와, 신구 두 줄기의 진기가 서로 양립하며 또 충돌하여, 순식간에 그의 전신 경맥을 힘 겨루는 전장(戰場)으로 만들었다. 두 기운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싸우니, 그 고통은 강한 남자인 연비라 할지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마치 천만 개의 빙설로 이루어진 소털처럼 가는 칼날로 그의 경맥과 오장육부를 도려내는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소리치지는 못했지만, 이미 온몸이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워 마치 '빙형(冰刑)'의 고문을 당하는 듯했다.

 

그의 모든 감각은 기능을 상실하여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경계에 던져진 것처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동반하는 것은 점점 더 극심해지는 고통과 상처뿐이었다.

 

이 비참한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갑자기 한 가닥의 따뜻한 기운이 생겨났다. 비록 여전히 죽고 싶을 만큼 아파 차라리 빨리 죽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희미하게나마 따뜻한 기운이 심장 한가운데에서 일어나 점점 심맥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상황은 마치 꽁꽁 얼어붙은 추운 세상에서 얼어 죽을 뻔한 사람이 갑자기 한 점의 불씨를 얻어 불꽃이 점점 살아나고 뜨거워지는 것과 같았다.

 

연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났고, 어떻게 이런 특이한 상황이 일어났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자신을 얼음처럼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잊고 온 마음을 다해 그 조금의 따뜻함을 지켜냈다.

 

따뜻한 기운은 점점 커져 심맥을 따라 임독이맥으로 천천히 퍼져나갔고, 정신을 한 가지에만 집중하자 고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것은 결코 그가 추위에서 따뜻함으로 변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더 이상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는 것이고 임독이맥은 여전히 한독이 점거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일부 통제권을 되찾았다. 그의 감각은 조금씩 지각을 회복하기 시작해 몸과 사지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일어나 도망치는 것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었다.

 

마음속에서 생각이 떠올랐다. 우연한 일로 먼저 침입한 임요(任遙)의 한독 덕분에 잠시 자신의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기고(陽極陰生), 음도 극에 달하면 양이 생긴다(陰極陽生)는 이치다. 두 줄기의 지극지한지기(至陰至寒之氣)가 부딪치면서 물극필반(物極必反)하여 반대로 따뜻한 양기가 생겨났다. 게다가 그가 익히고 있는 일월려천대법(日月麗天大法)은 줄곧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무공으로 자체에 극한의 추위 속에서 따뜻함을 만들어내는 선결 조건을 갖추고 있어 기회와 인연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져 뜻밖에도 죽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비의 마음속에는 조금도 기쁜 마음이 없었다. 그는 이 방면의 전문가로 몸 안의 상태를 보고 이미 가능한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마치 빙원설지(氷原雪地) 속의 유일한 화염열(火焰熱)처럼 그의 목숨을 잠시 부지할 수 있을 뿐, 그의 경맥은 과도한 손상으로 무공을 완전히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반신불수의 폐인이 되어 영원히 자신의 힘으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음극양생(陰極陽生)에 따른 이 소량의 순양지기(純陽之氣)는 그에게 더 큰 고통을 줄 뿐이었다. 만약 요녀 청제가 돌아와 시체를 수습하다가 그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본다면 어떻게 그를 능욕(凌辱)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 사람을 이렇게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 증오, 분노, 고통, 피로, 쇠락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 머릿속이 번득이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품속에 있는 비밀을 헤아릴 수 없는 구리항아리에 든 단겁(丹劫)이었다.

 

  ※※※

 

사현은 말의 속도를 늦추자 모든 기병들이 속도를 늦추었고 높은 곳으로 올라서자 사람들은 모두 변황집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변황집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아직 몇 시진을 달려야 했다.

 

사현은 흔쾌히 말했다:

"나는 벌써 요장이 이런 수를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말 뒤를 따르던 유유가 말했다:

"새로 지은 목채만 태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황집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사현은 한가롭게 마치 사소한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자네는 변황집에 정이 가서 안타까운 건가?"

 

유유는 자신들이 부견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기회에 인마(人馬)를 쉬게 하며 기운을 회복시키도록 했다. 원기를 회복한 말로 지친 부견의 전마를 추격한다면 당연히 우세를 점할 것이고 부견은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변황집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곳이죠. 무슨 황당한 일도 일어날 수 있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규칙과 제약을 던져버리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사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그동안 변황집에 몇 번이나 들어갔고 또 어떤 제약들을 버렸나?"

 

유유는 얼굴을 붉히며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북부 여러 군에서는 한 번도 술집에 가지 않았지만 변황집에 간 후로는 매일 밤 고언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즐겼고, 다만 도박장에 들어가 운을 시험해 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사현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인지상정이지. 좋은 술과 미인이 있으면 가끔 방탕하게 즐기는 것은 당연히 통쾌하기도 하지. 듣기로 변황집은 결코 가격이 싼 곳이 아니라고 하던데."

 

유유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고언이 씀씀이가 커서 매번 그가 계산을 했습니다. 현수께서는 잘 아실 겁니다."

 

사현은 아연실소하며 말했다:

"그냥 물어본 것뿐이니 도둑이 제 발 저릴 필요 없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잠시 멈춘 뒤 말했다:

"부견 일행은 십 리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세 갈래로 나누어 행군해야 하니 매복에 조심해야 한다."

 

깃발병(旗號兵)이 급히 신호를 보내고 부대는 진형을 재정비한 후 대부분의 횃불을 끄고 사현을 따라 계속 적을 추섭(追躡)했다.

 

  ※※※

 

부견 일행은 비록 적을 맞이할 진세를 펼쳤지만 모두들 배고픔과 추위와 피로가 몸에 스며들어 모든 장병들이 전투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투지도 잃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달빛 아래 수백 명의 기병들이 남서쪽의 구릉 고지로 달려 올라와 말을 세우고 멈추었다. 아직도 많은 부대가 후방 남쪽의 밀림에서 튀어나와 말을 세우고 전진하지 않고 진형을 갖추었다. 대열은 정연하고 혼란스럽지 않아 상대방이 정예 부대임을 보여주었다.

 

걸복국인이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용 상장군의 사람들입니다."

 

부견은 어찌 할 바를 몰랐지만 심장이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모용수에 대해 비록 그가 자신의 신하이지만 항상 꺼림칙하게 생각했고, 모용수는 왕맹이 생전에 유일하게 경계했던 사람으로 임종 전에는 자신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용수의 실력이 자신보다 훨씬 못했기 때문에 부견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모용수의 초인적인 전투력에 기대어 북방을 평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형세가 역전되어 저족 병사들의 정예부대가 낙간과 비수 두 전투에서 지리멸렬하게 되었고, 원통하게도 부융까지 잃게 되었다.

 

요장이 이미 그를 배신하고 떠났는데, 요장보다 더 무서운 모용수는 자신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까?

 

상대방의 기병 진형이 갈라지면서 세 명의 기수가 천천히 달려왔는데, 선두에 선 사람은 머리에 강철 고리를 두르고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려 마치 마신(魔神)과도 같은 모용수였고, 좌우에는 그의 아들 모용보(慕容寶)와 친동생 모용덕(慕容德)이 함께하며 부견의 말 앞으로 곧장 다가왔다.

 

세 사람은 조금도 이상한 기색 없이 평소처럼 말 위에서 그에게 군신의 예를 올렸다.

 

부견은 마음이 한바탕 격동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장군……"

 

걸복국인, 여광, 권익 등은 모두 묵묵히 말없이 모용수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번 남정 전투에서 모용수와 요장의 본부 병마만이 전혀 손실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모용수가 계속 부견에게 충성을 다할 것인지 여부는 이민족 여러 장수들의 부견에 대한 지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모용수는 표정은 평온했고 눈빛은 변황집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를 바라보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천왕께서는 먼저 신이 늦게 호위하러 온 죄를 용서하소서. 변황집은 이미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니 가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천왕께서는 이곳에서 사수(泗水)로 직접 가신 후 다시 북쪽으로 돌아 경사로 돌아가시고, 신은 전력으로 사현의 추격군을 막아내겠습니다. 그들도 감히 변황집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모용수가 운성(鄖城)에 있었다면 어제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왔어도 최소한 내일 해질녘이 되어서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줄곧 부근 어딘가에 잠복해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모용수의 병력은 약 이천에서 삼천 명 정도인데, 그의 나머지 이만여 명의 본부 병마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때의 형세가 미묘하고 흉험하여 부견도 감히 그에게 묻지 못했다.

 

모용덕과 모용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

 

부견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격동을 누르고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상장군이 와서 도와주니 우리는 패잔병을 수습하고 진용을 재정비하여 사현이 승리에 취해 교만한 틈을 타 군사를 돌려 반격한다면, 패배를 반전시켜 승리할 수도 있을 것이오."

 

모용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은 패국이 이미 이루어졌고 식량 보급로도 끊겼으니, 설사 제 수중에 있는 인마가 배로 늘어난다 해도 사현이 또 목숨을 잃는다 해도 여전히 협석과 비수의 관문을 넘기 어렵습니다. 만약 환충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휘몰아 공격해 오면 우리는 북방으로 돌아갈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니, 천왕께서는 즉시 출발하시옵소서. 늦을까 염려됩니다."

 

부견은 하마터면 사람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여 마음속의 비분을 쏟아낼 뻔했다. 이번 남정은 본래 천하를 위압하는 것이었으나, 철두철미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모용수의 말은 구구절절이 사실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후미의 중임은 상장군께서 맡아 주시오. 짐은 낙양에서 상장군을 기다리겠소."

 

모용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에게 아직 하나의 청이 있사오니 천왕께서 윤허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부견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상장군께서 무슨 요구가 있으시오."

 

걸복국인 등은 모두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고, 모용수가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겉으로 보기에 모용수는 여전히 부견에게 공경하게 대하는 것 같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용수가 부견에 대해 이미 과거의 존경심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모용보와 모용덕 두 사람의 태도가 심하여 부견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모용수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군의 남정이 실패하였으니 북방의 변방 여러 부족들은 필시 준동하고자 할 것입니다. 신이 본부의 인마를 이끌고 가서 진압하여 융적(戎: 서쪽 이민족, 狄: 북쪽 이민족)을 안정시키고 가는 길에 조상들의 묘에 참배하고자 합니다."

 

부견의 마음은 곧장 가라앉았다. 이는 마치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아서 모용수에게 본부 병마를 이끌고 북강(北疆) 근거지로 돌아가게 한다면 그가 다시 자신의 지시를 받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눈앞의 형세에서 그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연비는 영지(榮智)가 죽기 전에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단겁(丹劫)'을 자신에게 맡긴 것을 생각했다. 이 물건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분명했고, 요녀 청제(青媞)가 얻고자 하는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 만약 자신이 그것을 삼키고 그녀에게 빈 병을 보여준다면 그녀를 미치도록 화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포와 신비'의 의미로 가득 찬 '단겁(丹劫)'에 '갈홍읍제(葛洪泣製)'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데도 영지는 끝내 감히 복용하지 못했으니, 극독하고 패도한 단약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겁(劫)'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연비는 죽어도 지장이 없었으니 이제 복용한다고 해서 더 이상의 손실은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를 통해 남은 생을 마감하고 저승에서 어머니와 재회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연비는 의지를 일으켜 의념으로 기를 인도하여 형편없이 미약한 난류(暖流)를 오른손의 경맥으로 인도하였다. 그의 오른손은 즉시 떨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팔 전체의 통증이 몇 배나 심해졌다.

 

명확한 분투 목표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과 귀의 감각도 점차 강해져 희미하게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이때 고찰 방향에서 한바탕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비록 여전히 먼 하늘 끝 땅 끝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들렸다.

 

웅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길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소요제후께서 친히 납시셨군요. 우리 쪽 인마가 액운을 피하기 어렵겠군."

 

요녀 청제의 목소리가 호응했다:

"강 교주께서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주셨으니 제가 당연히 성심껏 모셔야지요."

 

연비는 크게 놀라며 마음속으로 이 요녀가 뜻밖에도 임요의 여동생이 아니라 그의 '가짜 황후'라니 정말 뜻밖이었다.

 

소요교 사람들은 행사(行事)가 괴이하고 이상하여 상식적으로 추론하기 어려웠고 자신이 몸소 그 해를 입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때 그는 이미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는 경맥이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증거였지만 한독(寒毒)은 여전히 사납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여력이 있을 때 죽기 전의 유일한 소원을 이루어야 했다.

 

그의 성격은 도도하고 굳세어 더 이상 요도 요녀의 대화를 듣지 않고 오로지 오른손을 움직여 품속에 넣는데 집중했다. 이 간단한 동작이 이때는 수많은 재난을 겪어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비록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강릉허의 목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들려왔다:

"듣자하니 제후께서 최근에 교묘한 계책을 써서 안세청 부녀에게서 천심옥패를 빼앗았다던데 제후께서 몸에 지니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연비는 보물이라도 얻은 듯 동호(銅壺)를 움켜쥐었고 그 말을 듣고서야 태을교와 천사도 양편의 인마가 왜 안세청을 찾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심패가 원래 안세청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임요 부부는 천(天), 지(地), 심(心)의 세 패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으니 연비와 유유를 죽이면 그 비밀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안세청의 딸이 바로 이 때문에 변황으로 쫓아온 것이었다.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그 신비하고 심원한 두 눈이 떠오르며 몸 안의 고통도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동호를 품속에서 꺼냈다.

 

청제의 목소리가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강 교주께서는 소식이 빠르고 정확하시니 제 몸에 천심패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저를 사로잡아 철저하게 뒤지면 분명히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음사(淫邪)한 의미로 가득 차 있어 상대방에게 몸을 수색당하는 즐거움을 표시하고 있어 유혹하는 능력이 가득했다. 연비는 그녀가 일부러 강릉허의 색심을 건드려 살수를 쓰지 못하게 하여 쉽게 기회를 잡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뜻밖에도 강릉허는 계략에 빠지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라. 넌 나 강릉허를 세 살배기 아이로 아느냐? 네 시신에서 찾아내도 마찬가지 아니냐?"

 

청제가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강 교주께서는 왜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으며 말만 하고 손을 쓰지 않으시나요?"

 

이것은 연비도 마음속에 의문을 가졌던 것으로, 앞서 강릉허가 뇌정만균(雷霆萬鈞)의 기세로 마차 행렬을 공격하고 대거 살계를 열었던 것을 보면 눈앞에서 속전속결하여 단번에 적을 쳐부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의 손은 천천히 동호를 입술로 가져갔고 거의 저항할 수 없는 한 줄기 피로감이 오른손 전체로 퍼지면서 그는 하마터면 포기하고 이대로 눈을 감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흉악하고 잔인한 마음을 지닌 독녀(毒女)에게 보물을 바치게 될 것이다. 그는 무상의 의지를 일으켜 그의 심령을 갉아먹는 한독에 맞서 싸우며 오른손에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모아 억지로 입술로 옮겼다.

 

강릉허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직도 시치미를 뗄 셈이냐? 만묘, 일어나라."

 

그가 이렇게 말하자 연비는 만묘가 분명 연화신호(煙花訊號)탄을 발사한 후 혼미한 척하며 강릉허를 유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크나큰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만약 그녀 둘이 힘을 연수(聯手)한다면 강릉허를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어찌 강릉허가 자기편 교인들을 도륙(屠戮)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유일한 해석은 그녀들이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임요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라도 넋을 잃고 뼈를 녹일 듯한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한바탕 들려왔다. 바로 만묘 부인의 듣기 좋은 달콤한 목소리였다. 연비는 사람을 유혹하는 그녀의 누운 자세를 본 적이 있기에 머릿속에서 그녀의 요염한 자태를 그려낼 수 있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연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마개를 봉인한 화칠(火漆)을 눌러 깨뜨리고 온 힘을 다해 동호의 마개를 밀어내려고 했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뚜껑을 뽑을 확률은 이삼 성도 되지 않는다.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화칠을 눌러 깨뜨리자 원래는 얼음처럼 차가웠던 동호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때의 그에게는 누군가 급할 때 도움을 준 것처럼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열기는 계속해서 더해지는 것 같았고, 항아리 안에서는 마치 어떤 힘이 생겨나 마개를 튕겨내려는 것 같아서 괴이함이 극에 달했다.

 

고찰의 세 사람이 비록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의 귀에는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온 마음을 다해 동호 안의 '단겁'을 빼내기 위해 두 손가락의 힘으로 뚜껑을 뽑는 데 전력을 다했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마개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코끝을 스치더니 이내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한 줄기의 열기가 얼굴을 덮쳐왔다.

 

연비는 사실 기름이 다해 등잔이 꺼진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망설이겠는가.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남은 힘을 다해 동호 안의 '단겁'을 입에 부어넣었다.

 

"땅!"

 

항아리가 먼저 그의 가슴 위로 굴러 떨어지더니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구리와 돌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강릉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알고 보니 임 교주가 친히 납시었구나. 어쩐지 너희 둘이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았구나! 강모가 함께 할 틈이 없어 미안하구나!"

 

연비는 오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단환이 입에 들어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저 수천 가닥의 작열하는 불기둥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처럼 한 줄기의 뜨거운 열기가 입 안으로 쏟아질 뿐이었다. 온몸에서 한기와 열기가 부딪치며 느껴지는 고통에 비하면 아까의 고통은 정말이지 극도로 경미한 것이었다.

 

"쾅!"

 

한기와 열기가 격렬하게 움직하며 그의 몸 안에서는 화산 폭발과 눈사태로 얼음이 깨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았고, 눈에서는 별이 보였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냉기와 열기의 흐름이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광풍을 내뿜었고, 초목이 뿌리째 뽑혔으며, 작은 구리 항아리와 마개도 멀리 휩쓸려 날아갔다.

 

갑자기 온몸이 춥다가 더워지고, 얼었다가 타는 것 같더니, 당장에 그를 찢어발길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다음 순간 연비는 자신이 지상에서 튕겨 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의 몸은 더 이상 의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무작정 내달렸다.

 

순식간에 멀어져 사라져 갔는데, 달리는 말보다 더욱 빠른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