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武俠小說
第八章 쌍룡탐주(雙龍探珠) 본문
第八章 雙龍探珠
법료선사는 소림사 출신으로 공력이 심후해 사람들 앞에서 뽐내고 싶어 했고 공동괴객을 대신해 체면을 세우고자 했으나 여전히 상대방의 기오막측(奇奧莫測)한 공력에 밀려 점점 뒤처지게 되었다. 무림에서의 명성과 지위를 생각하면 어찌 이런 꼴을 당하고 있을 수 있겠나마는 기술이 못하니 공연히 발작도 일으키지 못하고 속으로 이를 갈 뿐이었다.
법료선사가 막 자리에 앉자마자 왜방삭 동초가 공동괴객 성일운에게 두 손을 맞잡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성 노주인께서는 이십 년 전에 회룡비급을 빼앗기 위해 강호의 도의를 저버리고 우리 파의 전임 장문인을 연합 공격하여 대파산에서 비참하게 죽게 만들었고 우리 파는 이로 인해 일궐부진(一蹶不振)하여 강호에 숨어살면서 치욕을 참고 원한을 품은 지 벌써 이십 년이 되었습니다. 이치를 따지자면 귀파와 우리 두 파는 원래 서로 침범하지 않는 사이였고 아무런 갈등도 없었는데 성 노주인께서는 뜻밖에도 이익을 위해 의리를 잊고 갑자기 악랄한 수단을 썼으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참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노부가 우리 방주와 함께 약속을 지켜 장원을 방문했으니 성노주인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공정한 도리를 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공동괴객 성일운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 당시 노부 등 여섯 사람이 대파산을 지나다가 귀 파의 장문인 검금령(劍金鈴) 선배를 만났는데 회룡비급의 옛 절학을 흠모하여 한번 빌려 읽어보려다가 장문인 검금령 선배의 엄한 질책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 되었소. 이 늙은이는 그저 강요에 못 이겨 함께 출수했던 것인데 이 일은 이미 이십 년이나 지났으니 양측의 어떤 깊은 원한과 묵은 감정도 모두 사라지고 없을 것이오. 연전에 노부의 수제자 벽산객(劈山客) 정홍(鄭虹)이 동문 사제 지천민(池天民)의 혼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귀 방의 검에 귀운장에서 참변을 당했고 조금 후에 운남 대리의 싸움에서는 본문의 명성을 떨치게 해 준 삼재검(三才劍)도 귀 방의 악랄한 수법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두 명이 부상을 입는 결과를 초래했소. 육방주, 옛말에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다'고 했소. 귀 방은 전임 장문인의 원한을 갚기 위해 나선 것이니 당연히 이 늙은이가 책임져야겠지만 어찌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갑자기 본 파의 문하 제자들에게 손을 쓴단 말이오. 육방주께서는 설마 강호의 동도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두렵지 않단 말이오?"
육검평은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파산 전투에서 성노주인은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고 핑계를 대는데 당시 당신들 여섯 명이 회룡비급을 탐내지 않았다면 굳이 끝까지 쫓아다니며 연합 공격을 할 필요가 있었겠소이까? 오늘은 당신이 능청스럽게 떠벌려도 육검평이 재주가 없지만 일신에 배운 것으로 전대 장문인의 당년 살신지한(殺身之恨)을 갚고자 합니다."
"벽산객 정홍은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지천민과 함께 귀운장을 차지하고 아녀자를 협박했으며,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중 앞에서 저의 사매를 희롱하였으므로 손을 써서 징계하여 무림의 쓰레기를 제거한 것이었소. 삼재검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암중으로 저를 포위하여 싸운 것이니, 이는 자업자득이라 할 수밖에 없소이다."
공동괴객 성일운은 육검평의 이처럼 이치에 맞고 기세등등한 질책을 받자 노회하고 교활한 그도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난감하기 그지없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효산쌍괴 중 둘째가 흐흐 하고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 노주인이 굳이 그들과 같은 식견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자고로 원수는 풀어야지 맺어서는 안 되는 법. 당신들 두 집안이 원수를 맺은 경과를 보면 모두 회룡비급 때문인데, 이 늙은이 생각에 이런 불길한 물건은 남겨 두면 끝없는 화근이 될 것이니, 차라리 이 늙은 형제 둘이 대신 보관하고 쌍방이 악수하고 화해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좋은 방법일 것 같소."
왜방삭 동초는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오. 하지만 회룡비급은 본문의 역대 신물로 나쁜 놈들이 탐내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소이다. 오늘은 사문의 묵은 원한을 갚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이 황엽산장(黃葉山莊)에 온 것이니 살아서 나갈 마음은 애당초 없었소이다. 두 분께선 엉뚱한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대괴 희광은 두 눈썹을 찌푸리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께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니 기왕에 이 늙은이의 권고가 쓸모가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수중의 무공으로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는 수밖에!"
왜방삭 동초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두 사람의 뜻이오! 귀장이 연합 공격을 한다 해도 우리는 절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공동괴객 성일운은 효산쌍괴가 이미 진노한 것을 보고 내심 흐뭇해하다가 왜방삭 동초의 이 말에 말문이 막히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약 손을 써서 초식을 겨루게 된다면 당신들 두 사람만으로는 수많은 호한들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우리도 절대 다수로 우세를 점하지는 않을 테니 어떻게 겨루면 좋을지 이 늙은이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소."
육검평은 두 눈썹을 찌푸리며 분연히 말했다:
"손님은 주인을 따르는 법, 우리 모두 접수하겠소이다."
오랫동안 말이 없던 도화수사 운학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육방주님의 호기가 하늘을 찌르니 참으로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게 공평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육방주님께서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공동괴객 성일운 등에게 귓속말을 했다.
육검평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자세히 말씀해 보시오."
도화수사는 또다시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의견으로는 우리는 다섯 번의 비무로 제한하고 어떤 무공이든 제한을 두지 않으며 출전하는 사람이 스스로 정하도록 하여 양측이 세 번 이기면 승리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육검평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요행히 먼저 승리한다면?"
공동괴객 성일운이 호통을 치며 말했다:
"황엽산장은 모두 두 분의 처치에 맡기겠소!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육검평은 두 눈을 부릅뜨고 단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육양괴수에게 사죄하겠소!"
"군자의 한 마디 말은."
"사두마차로도 따라잡을 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간이 많지 않으니 여러분께서는 이 늙은이를 따라오시오!"
중인들도 쭉 이어서 여러 겹의 뜰을 지나 뒤쪽 연무장에 도착했다.
연무장은 가로가 삼십 장, 세로가 약 이십 장으로 남향으로 앉았고 양쪽에는 각종 병기 걸이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더 나아가 동서 양쪽에는 각각 길이 삼 장, 너비 일 장여의 화단이 있었다.
동쪽 화단 앞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앞쪽에는 붉은색 큰 쟁반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각 쟁반에는 해라한 상품 단향 열여섯 묶음이 놓여 있어 총 육십사 묶음으로 향의 길이는 삼척 육촌이며, 각 묶음은 찻잔 입구 굵기이고 모두 붉은 실끈으로 묶여 있었다.
모래밭 가운데에는 팔괘 방위에 따라 찻잔 입구 굵기의 작은 구멍 64개가 파여 있었는데, 각 구멍 사이는 모두 한 걸음씩 떨어져 있어 종횡으로 움직여도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서쪽 화단 안에는 거대한 밧줄로 수박만 한 크기의 철구 네 개를 묶어 놓았는데, 윗면에는 철비와 나선형 덮개가 있고 가운데에는 쇳가루가 들어 있어 무게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으며, 철구 바깥쪽에는 길이 삼 촌 크기의 날카로운 칼날 아홉 개가 달려 있었다.
철구는 세동사(細銅絲)를 머리카락과 함께 꼬아 만든 굵은 밧줄로 묶여 있었는데, 밧줄에는 백여 개의 작은 동령(銅鈴)이 달려 있어 철구가 움직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포삼(鐵布衫) 횡련(橫練)의 무공이 있다 해도 이 철구을 건드렸다가는 몸에 칼자국이 나는 것은 고사하고 온몸이 일 장 넘게 튕겨 나갈 정도로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왜방삭 동초는 견문이 넓고 식견이 높아 한눈에 이 두 가지 진식이 소림사의 독문절기인 나한속향장(羅漢束香樁)과 소문으로만 듣고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구망혼원구(九芒渾元球)임을 알아보았다. 이는 비도환장(飛刀換掌)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그 뒤쪽에는 온갖 시련의 청죽진(青竹陣)이 있었다.
일행은 남쪽 회랑에 멈춰 섰다.
법료선사는 조금 전 육검평의 손에 꺾였기 때문에 얼굴에 약간의 미련이 남아 소림사의 비전지비인 나한속향장으로 상황을 만회하고자 미소를 지으며 육검평에게 말했다:
"첫 번째 대결에서는 이 보잘것없는 나한속향장으로 시주께 절학 몇 수를 배워볼까 합니다."
왜방삭 동초는 이에 대해 그래도 제법 아는 편이었는데 그는 오늘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육검평의 진력을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하하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런 소림사의 비전 기공은 무림을 위압하는 것으로 이 늙은이가 오늘 고인을 만나 안목을 넓히게 되었으니 목숨을 걸고라도 몇 수 배워야겠소. 대사께서는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주시오!"
이때 공동괴객 성일운은 이미 경험 많은 제자에게 명하여 나한향을 한 묶음씩 모래 구멍에 넣고 잘 꽂도록 하고는 뒷걸음질로 장외에 섰다.
이런 나한향은 아무리 비싸고 귀하다 해도 이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향이었으며, 게다가 모래밭의 얕은 구멍에 떠받쳐 세워져 있었으므로 그 위에서 권을 휘두르고 장을 교환한다는 것은 초절정의 공력이 없는 한 누구도 감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본래 죽도환장(竹刀換掌)만으로도 무림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죽도는 땅에 묻혀 있었고 나한속향장은 모래밭의 얕은 구멍에 떠 있었으므로 조금만 힘을 주어도 향줄기가 부러지거나 넘어뜨릴 수 있었다.
왜방삭 동초가 도전을 외치자 법료선사는 짙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노 시주께서 뜻밖에도 이 나한속향장에서 가르침을 주시겠다니 노납이 바라던 바입니다. 시주께서 먼저 시작하시지요."
왜방삭 동초도 한마디 대답했다: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두 사람의 말소리가 떨어지고 각자 몸을 날려 뛰어올랐다.
소림승 법료선사는 일부러 한 수를 자랑한 것이었는데 그는 정남쪽 가운데에 서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서북쪽 모서리를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나가더니 가장자리에 발을 디디고 발끝으로 속향장을 찍으면서 몸을 돌려 그 위에서 맴돌며 왼발을 '금계독립(金雞獨立)' 자세를 취하고 양손을 합장하여 '동자배불(童子拜佛)' 자세로 바꾸었다.
신법이 가볍고 미묘하여 공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왜방삭 동초는 몸을 날리면서 이미 법료가 달려가는 방향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찌 남에게 약하게 보일 수 있겠는가 싶어 급히 내공을 운용하여 발밑을 살짝 찍고는 상체를 흔들지 않고 두 손을 감아쥔 채 두 팔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몸을 허공으로 곧게 솟구쳤다.
이른바 내삼합(內三合)은 정(精), 기(氣), 신(神)을 합하는 것이고 외삼합(外三合)은 수(手), 안(眼), 신(身)을 합하는 것으로, 이 육합이 하나로 합쳐지면 사지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때 그의 몸이 한 바퀴 돌아 소림승 법료선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소림승 법료선사는 왜방삭 동초의 예사롭지 않은 솜씨를 보고 속으로 은근히 놀라며 급히 허리를 숙이고 왼발을 왼쪽으로 뻗어 옆에 있는 속향장을 가볍게 찍고는 몸을 반쯤 돌려 합장했던 두 손을 벌렸다. 왼손은 가슴 높이로 가로지르고 얼굴을 비스듬히 한 채 여전히 왜방삭 동초를 주시하며 소림의 필법에 따라 문호를 세우고 발밑의 보폭을 바꾸며 왼쪽으로 맴돌았다.
왜방삭 동초는 여전히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며 나한속향장의 입구에서 가볍게 움직이고 교묘하게 찍으며 몸을 바람에 흔들리는 남은 연잎처럼 천천히 움직이면서도 빠르게, 교묘하면서도 가볍게 오른쪽으로 맴돌았다.
두 사람은 등을 지고 달렸다.
한 사람은 동북쪽 모서리에서 동쪽 면의 향장(香樁)을 따라 남쪽으로 돌고, 다른 한 사람은 서남쪽 모서리에서 서쪽 면의 향장을 따라 북쪽으로 돌아 각자 한 바퀴씩 맴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왜방삭 동초는 정서(正西)쪽에 도착했고 소림승 법료선사는 정동(正東)쪽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중궁을 밟고 홍문을 걸으며 모두 직진을 취하였고 보폭도 선후가 다르지 않았다.
법료선사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보폭을 바꾸어 몸을 낮추고 쌍장을 여전히 합장한 채 밖으로 갑자기 한 손을 거두며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배산운장(排山運掌)' 식을 펼치며 왜방삭 동초를 향해 정면으로 후려쳤다.
장에는 한 줄기 경풍이 실려 있어 그 힘이 매우 놀라웠다.
왜방삭 동초도 몸을 낮추며 걸음을 옮겨 불과 일장(一樁) 거리를 두고 그는 피하지도 않고 쌍장에 충분한 힘을 실어 맹렬한 기세로 밖으로 떨쳐냈다.
두 사람의 장풍이 맞닿자 두 사람의 몸이 모두 한차례 흔들렸는데 그들이 이렇게 한차례만 흔들린 것 같지만 평지에서 맞붙었다면 적어도 몇 걸음씩은 물러났을 것이다.
왜방삭 동초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놀라며 이 소림승 법료선사는 과연 초절정의 무공을 지니고 있으니 자신이 만약 한 갑자의 정순한 조예를 지니지 않았다면 이 일장에 장(樁)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라며 마음속으로 더욱 방비를 강화했다.
그는 왼쪽으로 한 걸음 올라 앞으로 몸을 낮추며 이때 비스듬히 소림승 법료선사의 오른쪽에 도달하여 몸을 비스듬히 하고 옆으로 걷는 식으로 쌍장을 나누어 오른쪽 장으로 '금붕전시(金鵬展翅)'로 비스듬히 법료선사의 오른쪽 어깨를 쪼개 갔다.
법료선사도 왼쪽으로 한 걸음 올라 몸을 반쯤 돌리며 왼손을 위로 찌르고 오른쪽 발끝으로 속향장을 찍으면서 왼발을 위로 들어 올리고 오른쪽 주먹을 가로로 내리쳤다.
이러한 등산과호(登山跨虎)식은 원래 걷는 자세였지만 두 사람 모두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으므로 손을 움직여 초식을 펼칠 때 결코 진짜로 맞붙지 않았고 누구도 초식을 끝까지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일단 장을 발출하면 상대방이 파해 초식을 펼치는 즉시 몸을 빼며 초식을 바꾸었고 한 번 접촉하면 바로 물러났다.
법료선사는 과호등산식에서 밖으로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며 왼발을 내려 자신의 몸 뒤쪽에 있는 속향장을 찍고는 밖으로 몸을 숙이는 기세를 따라 몸이 장을 따라 움직이며 바람처럼 맴돌다가 왼쪽에서 뒤로 돌아 쌍장을 가로로 왼쪽으로 밀었는데 이 한 수는 소림장법의 솔비수(摔碑手)였다.
이런 장력은 매우 무거워 장으로 팔을 베는 힘이 있었다. 그가 바람처럼 신속하게 왜방삭 동초의 왼쪽 늑골을 향해 쳐냈다.
왜방삭 동초는 이때 상대방이 암암리에 독수를 쓴다는 것을 알고 단전의 기를 끌어올려 배를 들이마시며 앞으로 뛰어가며 가볍게 몸을 날려 피했다.
법료선사가 장력을 발출하자 왜방삭 동초는 이미 몸을 피해버렸고 힘이 헛되이 발출되어 그 자신도 몸을 움직여 걸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어 신형을 따라 밖으로 연속 세 걸음을 내달아 마치 왜방삭 동초의 뒤를 바짝 쫓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쫓지 않을 수 없었고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방삭 동초의 몸이 빠져나가고 등 뒤의 법료선사가 도착했다. 왜방삭은 등을 돌린 채 갑자기 왼발로 속향장을 찍고는 암암리에 약간의 힘을 쓰자 전신의 기가 이미 끌어올려 장풍이 멈추자 몸이 마치 날리는 눈송이가 꽃잎처럼 왼쪽에서 돌아왔고 오른발로 또 다른 속향장을 찍으면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몸을 돌려 법료선사의 왼쪽에 도달했다.
그는 삼십육로금나수(三十六路擒拿手)의 '금봉희예(金蜂戲蕊)' 초식을 사용하여 식지와 중지를 함께 사용하여 법료선사의 '외양혈(外陽穴)'을 바로 찍었는데 초식이 가볍고 영묘했다.
법료선사는 오른발을 앞으로 옮기며 빠르게 연달아 머리를 틀어 얼굴을 피하고 왼손을 따라 밖으로 뒤집으며 '금사도전완(金絲倒剪腕)'으로 왜방삭 동초의 오른손 맥문을 베었다.
왜방삭 동초는 두 손가락이 허공을 찍자 갑자기 몸을 뒤로 젖히고 왼발을 뒤쪽에서 빼내며 오른쪽 팔을 아래로 가라앉히고 왼쪽 팔을 이미 떨쳐내 봉황이 날개를 펴듯 왼쪽 팔뚝의 넓은 소매가 한줄기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소림승의 오른쪽 등 뒤로 휘감아 올라갔다.
법료선사가 재빨리 초식을 거두지 않았다면 거의 왜방삭 동초의 이 한 수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두 사람은 각자 떨어져 장(樁)을 맴돌며 빠르게 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십여 초를 주고받았다.
이 한 명의 중과 한 명의 속인이 이런 나한속향장 위에서 신형과 장식(掌式)에 모두 다르고 미묘한 차이가 있어 회랑에 있던 모든 군웅들은 이 놀라운 장면에 눈을 빼앗겼다.
법료선사는 왜방삭 동초가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지나치게 얽히다가는 조금이라도 부주의 하면 상대방의 장력에 부서질 것 같았다.
이때 왜방삭 동초는 이미 초절정의 경공 신법을 전개하여 걸음마다 장(樁)을 찍을 필요 없이 몸을 날려 종횡무진하며 진퇴를 자유롭게 하였고 연달아 네 개의 속향장을 뛰어넘어 동북쪽으로 달려왔고 법료선사도 마침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매섭게 손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왜방삭 동초의 신형이 덮쳐오는 것을 보고 오른손을 뻗어 십팔나한권(十八羅漢拳) 중 '안익서전(雁翼舒展)'을 사용하여 비스듬히 왜방삭 동초의 왼쪽 어깨를 쪼개 갔다.
왜방삭 동초는 오른쪽 어깨를 낮추며 발밑의 장(樁)을 옮기고 걸음을 바꾸어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돈 후 '도전매화(倒剪梅花)'를 펼치며 손을 휘둘러 법료선사의 등을 때렸다.
법료선사는 초식을 '홍운탁월(烘雲托月)'로 바꾸어 빠르게 왜방삭 동초의 팔목 혈을 빠르게 찾았다.
왜방삭 동초는 급히 걸음을 빼고 몸을 돌려 두 사람은 또다시 떨어졌다.
그는 속으로 놀라며 이 법료선사는 소림의 적통 출신으로 과연 명성이 헛되지 않아 확실히 초인적인 공력을 지니고 있으니 자신이 평생토록 보지 못한 고수로 정말 대단한 강적이라 만약 절예를 사용하여 그에 맞서지 않는다면 그의 손에 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이 정해지자 즉시 신형을 펼치며 발로 칠성보법(七星步法)을 두 번 밟아 나갔다.
그는 일 갑자를 연구하여 나왔지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용형팔장(龍形八掌)'으로 법료선사를 상대하려 했다.
이 용형팔장은 연환팔수(連環八手)로 마치 단숨에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뜻밖에도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오묘한 작용을 간직하고 있어 초식이 신기하여 일단 전개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막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이 용형팔장은 나한속향장 위에서 전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이 가볍고 민첩하여 한 번 닿으면 바로 내뱉고 한 번 닿으면 바로 가며 바람처럼 신속하게 움직여 예측할 수 없었다.
이 속향장 위에서 용형팔장을 운용하는 것은 실로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왜방삭 동초는 민첩한 신형으로 가볍게 밟고 교묘하게 발끝을 찍으며 놀란 기러기처럼 곧장 법료선사를 향해 나아갔다.
법료선사는 소림에서 손꼽히는 승려로 무공이 이미 극에 달하였으므로 기괴한 초식에 대해 한 번 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왜방삭 동초이 앞으로 나아가 몸을 숙이는 보법이 분명 칠성을 밟는 것인데 암암리에 '반룡요보(盤龍繞步)'임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고 아직 보지 못한 '용형팔장'이 아닌가. 동문사우(同門師友)의 말에 따르면 이 용형팔장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수와 비교하면 필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적전(嫡傳) 소림 비종권(秘宗拳)인 '통선팔법(痛禪八法)'만이 '용형팔장'과 우열을 다툴 수 있다고 했는데 그가 소림을 떠날 때 비로소 절반을 깨달았으니 오늘 생사와 영욕이 결정되는 순간, 그저 있는 힘을 다해 응수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때 두 사람은 또다시 속향장 진의 중앙에서 만나게 되었다.
왜방삭 동초는 왼발로 속향장을 찍으며 분명히 '선인지로(仙人指路)'였으나 암암리에 '운룡탐조(雲龍探爪)'의 중수법으로 법료선사의 '화개혈'을 때렸는데 이런 장력이 발출되면 공격과 방어 없이 오직 한 번만 사용되지만 만약 상대방이 막으려 한다면 상대방의 공력에 따라 열 번을 사용할 수 있게 바뀌게 된다.
법료선사는 이런 장법의 위력을 알아보고 왼발에 살짝 힘을 주며 몸을 왼쪽으로 피하고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차내며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여 정면을 피하고 왜방삭 동초의 장력 여세를 굳이 정면으로 받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교활한 점으로 오히려 왼손을 밖으로 뻗어 왜방삭 동초의 오른쪽 팔에 빈곳을 찔러 공격했다.
이런 소림 명가의 장법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이 '통선팔법(痛禪八法)'은 실로 소림사의 절학으로 일초 일식이 무궁무진한 변화가 있어 장력을 빠르게 발출하고 빠르게 거둘 수 있었다. 그가 왜방삭 동초의 오른쪽 어깨를 손가락으로 찍은 것은 허실을 병용한 것으로 갑자기 왼손을 뒤로 거두고 상반신을 왼쪽으로 기울이며 오른손을 번쩍 들어 '도점금등(倒點金燈)'과 '반비장(反臂掌)'으로 왜방삭 동초의 오른쪽 늑골을 때렸다.
경풍이 실린 장법은 매우 신속했다.
왜방삭 동초는 법료선사의 이 초식을 보자마자 그가 '통선팔법(痛禪八法)'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 절기를 상대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일초가 빗나가는 것을 보고 오른발로 등 뒤 왼쪽에 있는 속향장을 거꾸로 찍고는 기를 단전에 운행하여 공력을 양팔에 모으며 몸을 낙엽이 바람에 날리듯 속향장 위에서 한 바퀴 돈 뒤 장을 거두고 몸을 빼며 넓은 소매를 떨쳐내 마치 풍차처럼 법료선사의 오른쪽을 향해 역습했다. 초식을 피하고 반격하는 것이 마치 단숨에 이루어진 것처럼 더 이상 빠를 수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
법료선사는 상대방의 초식이 너무 빠르고 거세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원래 오른발이 왼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감히 위험한 초식을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왼발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내공만으로 단전의 기를 끌어올려 오른발을 억지로 뒤로 당기며 살짝 몸을 기울여 스스로 몸을 비틀어 뒤로 돌고 갑자기 앞으로 숙이며 마치 평지에서 발을 헛디딘 것처럼 오른발로 지면 앞 두 번째 속향장을 찍고는 왼발을 거두어들이고 쌍장을 나누어 오른쪽 주먹을 비스듬히 뒤로 때렸다.
왜방삭 동초는 여전히 반룡요보를 사용하여 연환의 초식을 거두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은 공격을 하여 각자 피하고 등을 진 채 한 사람은 동쪽으로 한 사람은 서쪽으로 맴돌며 내려왔다.
법료선사가 방금 동쪽으로 돌아왔을 때 왜방삭 동초는 몸을 한 바퀴 돌려 나는 듯이 달려가 다섯 개의 속향장을 연달아 뛰어넘고는 법료선사의 등 뒤로 쫓아와 오른손의 식지와 중지를 나란히 하여 '쌍룡탐주(雙龍探珠)'로 법료선사의 '옥침혈(玉枕穴)'을 찔러갔다.
법료선사는 등을 지고 발은 이미 가장자리 속향장에 닿았으며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등 뒤의 바람소리가 이미 다가오자 '옥망번신(玉蟒翻身)'으로 왼쪽에서 뒤로 한 바퀴 돌며 머리를 흔들어 왜방삭 동초의 장풍이 그의 왼쪽 귀밑을 스쳐지나가게 하였고 갑자기 왼손을 뒤집어 '금차수(金叉手)'로 왜방삭 동초의 단전을 때려갔다.
이 한 수는 변화가 빠르고 힘이 대단하여 누구라도 왜방삭 동초가 이번에 법료선사의 장에 다칠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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