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武俠小說
第六章 도산검림(刀山劍林) 본문
第六章 刀山劍林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가을볕이 사나워 보는 사람도 두려울 정도다.
오후 세 시 무렵 제림고도(濟臨古道)에 이십여 필의 말이 한 줄로 달려왔다. 바람처럼 빠르게 남쪽으로 달려 마치 하늘 높이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잊은 듯했다.
그들은 육검평 일행으로 경성을 떠난 후 정해(靜海), 창주(滄州), 오교(吳橋)를 거쳐 산동성에 진입했다.
정오 무렵 일행은 역성(歷城)에서 점심을 먹다가 사마능공이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나서 육검평에게 허락을 받고 일행과 헤어져 먼저 출발하였다. 사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서둘러 남쪽으로 향하니 해가 지는 황혼 무렵에는 이미 등현(滕縣)에 이르러 백복객잔(百福客棧)에 투숙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육검평은 갑자기 공동산의 약속이 떠올랐는데 날짜가 이미 임박하였다. 강호에서 언약을 가장 중시하는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에 어찌 남에게 신용을 잃을 수 있겠는가?
급히 대략의 뜻을 여러 사람에게 말하고 이 일이 본문의 피바다 같은 깊은 원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결단해야 했으므로 상의한 결과 마지막으로 왜방삭 동초가 동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온주(溫州)까지 달려가 귀운장 총단의 중지를 함께 지키기로 하였다.
다음날 새벽 그들은 등현(滕縣)에서 출발하여 서, 남 두 길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
한편 육검평 등 두 사람은 지름길을 따라 서쪽으로 빠르게 달려 미산호(微山湖)를 건너고 밤새도록 급히 달려 어대(魚臺), 언사(偃師), 화음(華陰)을 지나 장안현성(長安縣城)에 이르렀다.
장안은 고대의 수도로 인구가 조밀하고 상인이 북적였으며 밤이 되어도 생황과 노래가 그치지 않아 매우 떠들썩하였다.
두 사람은 사흘 밤낮을 계속해서 달려 사람은 비록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지만 타고 있는 말이 견딜 수 없어 성 안에서 잠시 머물며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출발하기로 하고 열래대객잔(悅來大客棧)을 찾아 투숙하였다.
간단히 정리한 뒤 근처 취선주루(醉仙酒樓)로 가 밥을 먹었다.
그들은 누상의 길가 창문에 자리를 잡으니 종업원이 네 가지 냉채와 술 한 병을 가져왔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술을 마시며 강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계단 입구에서 한바탕 급한 소리가 들리더니 아래층에서 생김새가 완전히 똑같은 두 노인이 올라왔다.
그들 두 사람은 모두 칠십이 넘었으며 용모가 청수하고 두 눈이 형형한 것이 한눈에 내공이 매우 깊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고 활보하며 누상을 힐끗 쳐다보고는 중앙의 탁자 앞에 앉았는데 태도가 매우 거만하였다. 뒤에는 마흔 살쯤 된 중년인이 등에 장검을 메고 두 노인에게 매우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왜방삭 동초는 한눈에 이 두 노인의 모습을 알아보고 마음속으로 몰래 콧방귀를 뀌며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손으로 술에 적셔 글을 썼다:
"저 세 사람의 대화에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가롭게 술과 안주를 먹는데 태도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육검평은 그들 세 사람을 보자마자 평범한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금방 왜방삭 동초가 일깨워주자 특별히 주의하기 시작했고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사실 이미 운공하여 경청하고 있었다.
그의 이때 공력은 이미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이르러 평소에도 십장 이내의 낙엽이나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매우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운공하여 경청하자 온 누각의 파리가 날고 모기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모두 그의 청각 범위 내에 들어왔다.
잠시 후 상석에 앉은 노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둘째야, 이번에 우리가 연수 합작한 거래에서 뭐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좀 있나?"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대답했다:
"바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입니다. 성일운(成逸雲)이 평소 노회하고 심계가 깊어 일을 처리할 때 절대 그렇게 조급해 하고 당황할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쌍방이 아직 대면하지도 않았는데 이처럼 다급하게 구는 것은 모두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니 혹시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석에 앉은 노인이 살짝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들이 감히 우리 두 사람에게 무슨 꿍꿍이를 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네."
둘째라고 불리는 노인이 말했다:
"그때 가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본 후에 다시 손을 쓰는 것이 비교적 온당할 것 같습니다."
옆에 앉은 중년 남자가 급히 웃으며 포권을 하고 말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가사께서 이번에 두 분을 모시고 연수 합작하신 것은 완전히 저희 사형 정홍(鄭虹)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동문이 손가락을 잘리는 부상을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함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가사께서는 약속 날짜가 촉박하여 일시적으로 형세가 떨어질까 두려워 한밤중에 특별히 제자를 보내 두 분 선배님을 초청한 것이니, 이는 전적으로 일편단심의 성의에서 나온 것으로 잘 살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상석에 앉은 노인이 말했다:
"그 물건이 확실히 상대방 몸에 있기는 한가?"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는 천번 만번 확실한 일로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까지 말하고 일부러 말을 끊었다.
다른 노인이 급히 물었다:
"다만 어떻다는 건가?"
중년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침묵하다가 처량하게 말했다:
"다만 듣자 하니 상대방의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공력이 놀랍다고 합니다. 최근에 서방맹인에게 장상(掌傷)을 입히고 힘으로 파금대불을 패퇴시켰으며 황성을 피로 물들이고 천하를 위압하였으니 아마도 지금 무림에서는 진정한 적수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석에 앉은 노인은 성정이 비교적 조급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 어린놈 하나가 태어나면서부터 수련을 시작했다고 해도 기껏해야 이삼십 년의 수련에 불과할 터, 서방맹수 같은 자들이 필시 일시적으로 방심하거나 아니면 함께 음모를 꾸민 것일 게야. 만약 노부와 부딪친다면 절대 삼 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둘째야, 오늘 밤 달이 씻은 듯 밝은데 놈을 한번 쫓아 가보세!"
말을 마치고 세 사람은 함께 일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나섰다.
알고 보니 중년 사내는 두 노인의 오만함이 특히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격장지계를 써서 그들을 격동시켜 진노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밤을 새워 길을 나서게 되었다.
왜방삭 동초는 그들이 떠난 후 육검평에게 눈짓을 보내고 일어나 술값을 계산한 뒤 오던 길을 따라 열래객잔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 왜방삭 동초가 조용히 말했다:
"조금 전 주루에 있던 그 두 노인은 삼십 년 전 흑백 양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효산 쌍괴로 쌍둥이 형제이며 무공이 기오막측(奇奧莫測)하고 그들의 스승과 문파를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온몸에 독이 서린 '고목장공(枯木掌功)'에 한 번 맞으면 온몸이 검게 말라 죽어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으며 극도로 탐욕스러운 성격으로 평생 일을 처리함에 선악의 구분이 없으며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성정이 극히 오만하여 평소 자부심이 특히 높고 무림에서 아직 큰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으나 처사가 상반된 방향으로 치우쳐 있어 쌍괴(雙怪)라는 이름을 얻었고 첫째는 성정이 조급하기 그지없고 둘째는 비교적 침착하지만 첫째의 맹렬한 성격을 거스르지 못하고 어디에서나 첫째의 뜻을 따릅니다."
왜방삭 동초는 말을 마치고 잠시 멈추었다가 또 말했다:
"그들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동괴객(崆峒怪客) 성일운(成逸雲)이 큰 이익을 내세워 그들을 끌어들여 도움을 청한 것 같은데 분명히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하러 온 것 같습니다! 이로 보건대 이번에 공동괴객 성일운은 이 생사를 건 대결에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암암리에 얼마나 더 무서운 마두를 초청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때가 되면 반드시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년 비천신룡 사조께서 포위되어 중상을 입었던 전철을 다시 밟게 될 것입니다!"
육검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맞습니다. 하지만 검평은 이미 본방에 몸을 의탁하였으니 이번에 사문의 묵은 원한을 씻고 무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일신에 배운 것으로 적과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설령 도산검림(刀山劍林)에 화해유확(火海油鑊)이라 할지라도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소리가 매우 진지하고 격앙되었다.
왜방삭 동초 역시 크게 감동하여 정색을 하고 말했다:
"방주께서는 협간의담(俠肝義膽)으로 무림 창생을 행복하게 하고 본 방을 위해 백 년의 기초를 세우셨으니 본문의 사조께서 아신다면 필시 구천에서 미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자고로 큰 나무는 바람을 부르고 지위가 높으면 비방이 생기는 법이니 강호에는 궤사(詭詐)가 백출하여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으니 매사에 조급함을 부리지 말고 본방의 업무를 중히 여겨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 본방의 아래 위가 떠받드는 마음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육검평은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고 여겨 공손히 대답했다:
"검평은 선배님의 가르침을 공경히 받들 것이며, 평생토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왜방삭 동초는 황급히 말을 받았다:
"방주께서는 이 늙은이를 너무 추켜세우지 마시오!"
말을 마치고 하하 하고 웃자 육검평도 따라 웃었다.
※※※
다음날 아침 햇살이 비치자 두 사람은 행장을 꾸리고 말에 올라 계속해서 서북쪽으로 달려갔다.
이틀째 되는 날 황혼 무렵 두 사람은 이미 장무(長武)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더 가면 감숙(甘肅)의 경계였다.
강호 경험이 풍부한 왜방삭 동초는 공동파의 세력 범위에 거의 도달했음을 알고 의외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며 원기를 충분히 회복한 뒤에 가자고 제안했다. 육검평도 이의가 없어 객사를 찾아 묵었다.
해시(亥時) 무렵 두 사람이 방에서 운기조식하며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붕 위에서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멀리서 점점 다가왔다.
육검평이 정신을 집중해 들어보니 모두 네 사람이었는데 공력은 모두 평범했다.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즉시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운용하여 왜방삭 동초와 조금 상의한 후 몸을 날려 침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갑자기 천정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는데 아마도 작은 돌멩이가 지면의 돌덩어리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분명히 야행인이 속을 떠보는 소리였다. 이어서 '슉슉'하며 두 개의 그림자가 지붕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발끝으로 살짝 바닥을 찍으며 빠르게 창가의 어두운 그늘 속으로 숨었다. 침입자가 창살에 붙어 잠시 엿듣는데 방 안과 마당은 쥐 죽은 듯 조용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듣자 하니 상대방의 공력이 매우 높아 십장 이내의 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던데 어찌 이렇게 방심하여 조금의 기척도 없는가! 설마 그들이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두 사람은 또 잠시 기다렸다가 서로 손짓을 하고 손에 든 칼을 들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딱'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창살이 이미 한 자 정도 열려 있었다.
흑영이 번쩍이더니 민첩하게 한 사람에게 뛰어들었는데 몸놀림이 제법 날렵했다.
잠시 후 창가에서 지원하던 사람은 아무런 기척도 없자 마음속으로 불안해져 감히 소리 내어 묻지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발을 딛고 잇달아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방 안으로 막 뛰어들려는 순간 원래 지붕 위에서 망을 보던 두 명의 흑의인은 갑자기 허리께가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펑펑'하는 소리와 함께 기와에서 굴러 떨어졌고, 땅바닥에서 계속해서 하하 하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육검평에게 소요혈(笑腰穴)을 점혈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객잔의 회계원과 여러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몰려들었다.
육검평은 몸을 흔들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이 밝아지는 틈을 타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 명의 흑의경장 사내가 눈앞에 죽은 뱀처럼 땅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왜방삭 동초에게 '혼혈(昏穴)'을 집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중 한 사람의 혈도를 치자 흑의인은 갑자기 두 눈을 뜨고 일어나더니 사방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육검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당신들과 일면식도 없고 원한도 없는데 어찌하여 한밤중에 칼을 들고 방으로 침입했느냐. 무슨 일인지 사실대로 말하면 절대 너희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
흑의 사내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혈도를 맞고 깨어나자 완전히 얼떨떨해 하며 상대방의 공력이 너무 높아 도망갈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묵묵부답이었다.
왜방삭 동초가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너희들은 관을 보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구나. 먼저 수음역맥법(搜陰逆脈法)의 맛을 한번 보거라!"
말을 마치고 육검평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육검평은 오른손을 들어 상대방의 상반신에 있는 십이혈에 지풍을 날려 연달아 찍고 마지막으로 단전을 한 번 쳤다.
흑의사내는 온몸이 뻐근하고 아파 견딜 수 없었으며 혈기가 역류하고 골수가 개미에게 물린 것처럼 가려워 콩알만 한 땀방울을 비 오듯 흘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후 고통에 목도 쉬고 힘도 다 빠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걸이시여…… 손에 사정을…… 제가 말하겠습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육검평이 손을 들어 한 번 치자 혈도가 즉시 풀렸고 흑의 사내는 온몸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졌다.
흑의 사내는 처연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희 네 사람은 조사이신 공동괴객(崆峒怪客)의 명을 받들어 두 분의 행적을 염탐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두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고 흑의사내는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다른 한 명도 두 발을 뻗더니 혼이 이별의 한을 품고 하늘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육검평 등 두 사람의 공력이 아무리 높아도 손을 써 구할 수 없었다.
육검평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구르며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독한 놈들 같으니라고. 자신의 수하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고 살인멸구하다니 소야(少爺)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뒤쫓으려는데 왜방삭 동초가 한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않는 법이니 지금은는 이미 멀리 도망갔을 것이고 쫓아봐야 무익하니 일에 보탬이 되지 않소. 차라리 객점 주인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래 객잔의 일꾼들은 강호에서 원수를 찾아 보복하는 것을 늘 보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람처럼 손을 써 네 사람을 연달아 죽이고도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의 솜씨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시비를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때 육검평 등이 사정을 설명하자 일이 대충 수습되었고 횡사한 네 사람은 가족이 없어 추궁할 사람도 없으니 흐지부지되었다.
육검평은 흑의사내의 온몸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등 쪽의 '지당혈(志堂穴)'에 녹두만 한 흑점이 하나 있었고, 그 주위의 피부가 약간 부어오르며 실낱같은 흑수가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방삭 동초는 강호 경험이 풍부하여 각 문파의 전문 기술과 절독 암기를 대부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설마 그 사람인가?"
육검평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물었다:
"또 지독한 마두입니까?"
왜방삭 동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십 년 전 무림에 무공이 뛰어난 일대 괴걸이 한 사람 나타났는데 성격이 오만하여 흑백양도와 전혀 왕래하지 않았고, 오랜 세월 백의 한 벌만 입고 청해 해심산(海心山) 위쪽에 살았는데 아무도 그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어 모두들 그를 백의괴인이라 불렀지요. 나중에 무림의 보물을 쟁탈하기 위해 악독한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각 파의 공분을 사서 여러 차례 포위 공격을 당했지만 모두 그는 뛰어난 무예로 탈출했고 각 파에서도 많은 고수들이 죽거나 다치는 바람에 원한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나중에 점창산(點蒼山)에서 백여 명의 각파 고수들이 막고서 연합 공격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괴인이 있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중과부적이라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극독하기 비할 데 없는 '보리사(菩提沙)'를 발사해 각 파 고수들이 죽거나 다쳐 아수라장이 되었고 괴인도 중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탈출했고 그 후 강호에서 다시는 괴인의 행적을 볼 수 없었지요."
"듣기로는 이 '보리사(菩提沙)'는 천축(天竺)에서 나왔는데 정철(精鐵)로 만들어졌고 금석(金石)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며 독특한 배합으로 만든 독약을 스며들게 하여 소리 없이 발사되는데 맞으면 약으로도 고칠 수 없고 암습한 사람이 삼 장 거리에서 혈도를 이렇게 정확하게 공격했으니 공력 또한 매우 놀랍지만 다행히 살 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아마 괴인 본인은 아닐 겁니다!"
말을 마치고 또 한숨을 쉬었는데 마음속에 걱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육검평은 천성이 오만하여 쉽게 남에게 굴복하지 않았는데 이 말을 듣고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암습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지만 수단은 아직 고명하지 못하니 검평은 오히려 고인과 한 번 겨뤄보고 싶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공력이 범인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왜방삭 동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느끼고 있었기에 일부러 말을 걸어 자극한 것이다. 과연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나더니 바람에 실려 한 장의 백지가 떨어졌다.
육검평이 손을 뻗어 받아보니 꽤 무거웠고 속으로 상대방의 공력이 웅후함을 깊이 느꼈다. 펼쳐보니 검은 먹으로 대충 '다시 보자(前途再見)'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래쪽에는 다만 '학(鶴)'이라는 글자 하나만 쓰여 있었다.
두 사람은 한바탕 놀랬다. 한참이 지나도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니 매사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이미 오경(五更)이 다 되어 하늘빛이 잿빛으로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곳을 찾았고 모두 아침 일찍 길을 나서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검평과 왜방삭 동초도 세수를 마치고 행장을 꾸려 다시 서북쪽으로 출발했다.
점심때 경산(涇山) 꼭대기를 넘어 점점 산간 지대로 들어가니 행인은 드물고 말의 걸음도 느려졌다.
한 굽이를 돌아가니 산길은 더욱 험하고 걷기 어려워 보였다.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가 벽처럼 우뚝 솟아 있고 파도 같은 바람 소리 속에 야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섞여 있어 듣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담력과 식견이 초인적이었고 눈앞의 황량한 형세에 이미 익숙하여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여전히 고삐를 늦추고 가며 내내 담소를 즐겼다.
높은 봉우리 하나를 돌아 안개와 구름 사이를 헤치고 가니 두 사람의 장삼이 펄럭이며 더없이 소탈하고 멋스러웠다.
한 시진이 지나자 높은 봉우리는 이미 뒤로 멀어지고 눈앞에 하나의 골짜기가 나타났다. 거친 풀은 무릎까지 자라 있고 벌레 소리만 들릴 뿐 사람이 다닌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백 장을 채 가기도 전에 갑자기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두 필의 말이 바람처럼 전격적으로 뒤에서 달려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지나갔다.
그중 한 사람이 말을 살짝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육검평과 왜방삭 두 사람을 향해 음산하게 웃고는 다시 채찍을 휘두르며 내달렸다.
이런 산간의 황량한 땅과 험한 골짜기의 오솔길에서 그렇게 내달릴 수 있다니, 나타난 사람들의 기마술이 뛰어나고 솜씨 또한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왜방삭 동초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갑자기 고삐를 당겨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며 오던 길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주님, 이곳은 지세가 황량하고 사방에 길이 없으며 뒤쪽에는 높은 봉우리가 막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두 필의 말이 매우 눈에 띄었는데 혹시 상대의 우두머리가 보낸 매복들로 도중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 아닐까요?"
육검평이 냉소하며 대답했다:
"그들 호서검려(狐鼠黔驢) 같은 놈들의 재주가 뭐가 두렵겠습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그 소리와 함께 길 왼쪽 숲에서 한 무더기의 흑우(黑雨)가 폭사되어 나왔다.
공세가 심상치 않게 빠르고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와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육검평과 왜방삭 동초는 공세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 급히 네 주먹을 들어 올려 흑우를 향해 맹렬히 후려쳤다.
두 사람은 당대의 절정 고수였기에 이번에 손을 합치니 그 위력이 대단했다.
산처럼 거대한 네 줄기 장력이 마치 미친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나아가자 흑우는 가장자리에 닿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던 지름이 한 척이나 되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장력에 맞아 뿌리째 뽑혀 버렸다.
갑자기 숲 속에서 거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장력이 좋구나, 앞에서 보자."
고함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그림자가 숲 속에서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산벽을 따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산꼭대기로 사라졌다.
육검평 등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말을 채찍질하여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이 골짜기 안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위기가 사방에 깔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높은 무공과 대담함으로 그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도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왜방삭 동초가 육검평에게 살짝 귓속말을 하며 육검평의 뒤에 바짝 붙어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천천히 나아갔고 자신은 말 위에 거꾸로 앉아 오던 길을 바라보며 뒤쪽의 기습에 대비했다.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는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말발굽이 골짜기 바닥의 돌바닥을 밟는 소리뿐이었다.
한동안 공기가 긴장되어 숨이 막히는 듯했다.
대략 반 시진쯤 가자 골짜기 바닥은 더욱 좁아지고 양쪽의 절벽이 깎아지른 듯 서 있어 형세가 더욱 놀랍고 위험해 보였다.
두 사람은 공력이 깊고 귀와 눈이 예민했는데 갑자기 산봉우리 상공에서 매우 희미한 '쉭쉭' 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슬며시 경계심을 높였다.
갑자기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지나온 길 십여 장쯤에서 돌덩이가 비 오듯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뒷길을 막아 버렸다.
또다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리더니 마치 메뚜기 떼처럼 화살비가 뒤쪽에서 발사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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