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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卷九 第六章 왕사여연(往事如煙)

by 少秋 2025. 5. 9.

 

第六章 往事如煙

 

 

연비는 칠팔 장 밖에서 한눈에 얼핏 보고는, 기천천이 왜 이 사람에게 깊은 정을 품게 되었는지 바로 이해했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상대방은 매력이 넘치는 남자였고 그의 매력은 전체적으로 깊이 숨겨져 있었다. 영준하고 위엄 있는 외모 아래에는 끝없는 내면이 숨겨져 있어 당신이 발굴하고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때 그의 두 눈은 어떤 사람이든 마음이 흔들리게 할 만한 우울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연비는 다른 상황에서 그의 눈빛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거의 저항할 수 없는 표현력을 상상하게 했다. 그의 심장과 폐를 꺼내 보여줄 것 같은 강렬한 감염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서도 그의 풍류와 자유분방함, 반항적인 성향과 사랑에 대해 두려움 없는 독특한 방랑자의 기질은 그의 등장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만, 그의 지극한 정과 감성적인 방종을 드러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 누구도 그가 마음속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대해 막을 수 없었다.

 

연비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만으로, 마음속의 깊은 감정을 이토록 풍부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침내 기천천이 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일찌감치 건강을 떠나려는 뜻이 있었던 기천천이 그날 그를 만났을 때 곧바로 솟구친 감정은 그를 따라 멀리 떠나 하늘 높이 날며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은 감동적인 느낌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남몰래 건강을 떠나려고 한 것은, 자신이 그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그를 낙담하게 했다. 기천천의 모든 '노력'이 더 이상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가 없게 된 것 같이 느껴졌다. 그는 심지어 기천천이 자신에게 보일 반응을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기천천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예상외로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거기 서 있어요. 움직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아요. 저는 먼저 우리 노대와 상의해 봐야겠어요."

 

그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분명히 온갖 추측을 다 해봤지만, 기천천이 이렇게 대응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함께 앉아 있던 방의와 소시 역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비는 참지 못하고 기천천을 쳐다보았고, 기천천은 매혹적인 미소로 그의 눈길을 맞이하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연 노대,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말 머리를 돌려 산처럼 쌓여 있는 목재 더미를 향해 천천히 말을 몰았다.

 

연비는 사방을 지키고 있던 북기련(北騎聯) 전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은 이제 돌아가도 됩니다!"

 

그리고 기천천의 말을 뒤따라갔다.

 

  ※※※

 

"쉭!"

 

유유는 나무줄기의 탄력을 이용해 몸을 솟구쳐 삼 장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가로 줄기로 몸을 날아갔다. 이는 유유가 자랑하는 독특한 기술로 단순히 밀림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경공신법이 그보다 뛰어난 사람도 그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임청제는 정신을 차리고 손발을 문어처럼 해서 그의 등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속셈을 품고 있을지라도,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운명을 함께 하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오자 유유는 속으로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한 발 앞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나무줄기의 탄력을 이용해 가속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벌써 손은에게 따라잡혔을 것이다.

 

이때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가로 줄기를 발로 차야 했는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밀려오며 내상이 발작했는데 과도하게 기를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기가 임청제로부터 등의 요혈로 주입되었다.

 

유유의 경력(勁力)은 즉시 회복되었고, 미묘한 발기술을 사용하여, 발끝으로 나무를 차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비스듬히 날아갔다.

 

"펑"!

 

가지가 부러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며, 손은은 마치 머리를 숙이고 먹이를 덮치는 매처럼 왼쪽 아래에서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하마터면 그들을 따라잡을 뻔했다. 만약 그들이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에게 따라잡혔을 것이다.

 

유유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임청제의 진기는 여전히 끊임없이 보내져, 그의 체내 진기의 흐름을 촉진시켰고, 그의 진기를 그녀의 체내로 이끌어 들였는데, 한 바퀴 돌 때마다, 두 사람의 상처가 조금씩 나아졌고, 그 신묘함이 극에 달했다.

 

유유가 다른 나무로 떨어졌을 때, 그는 이미 자신감이 충만했다. 날이 밝기 전에 손은을 떨쳐내지 못하면 반드시 독수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갑자기 발끝에 힘을 주어 탄력을 이용해 포탄처럼 빠르게 날아가 숲의 정상을 뚫고 나와 사 장에 가까운 긴 거리를 가로질러, 영수(穎水)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손은도 그를 따라 밀림 위로 올라오면, 그는 다시 어두운 밀림의 암흑공간 속으로 뛰어들어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는 묘기로 이 무서운 적을 따돌릴 것이다.

 

밤하늘의 남은 별들이 떨어지려 하고, 밝은 달은 서산 아래로 내려갔다. 임청제는 깃털처럼 가벼워져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았다.

 

유유가 고개를 돌려 힐끗 보니, 손은이 육 장 떨어진 뒤쪽에서 큰 새처럼 숲 꼭대기로 솟구쳐 올랐다.

 

유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천사(天師)는 배웅할 필요 없소!"

 

천근추(千斤墜)를 사용하여 아래로 내리꽂아 숲속으로 사라졌다.

 

  ※※※

 

기천천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 뒤, 뒤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연 노대, 무슨 지시할 거라도 있나요?"

 

연비는 크게 놀랐다. 매번 기천천이 이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헤어지기 아쉽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는데, 이 사람이 건강에서 이곳까지 곧장 쫓아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그녀가 너무 태연한 것이 믿기 어려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연비는 그녀 옆에 멈춰 서서 그녀의 꽃 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숨기는 기색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지시를 할 수 있겠소?"

 

기천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은 노대잖아요! 아랫사람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신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하는 거 아닌가요?"

 

연비의 가슴이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의 마음을 여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깊이 생각한 끝에 말했다:

"당신은 내가 어떤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길 바라는 거요. 내가 공적인 것을 가장하여 사적인 것을 도모할까 두렵지 않소?"

 

기천천이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바로 당신이 공적인 것을 가장하여 사적인 것을 도모하는지 보려는 거예요. 나의 연 노대, 당신 자신이 천천을 가장 매료시키는 부분이 뭔지 아세요? 당신은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으신가요?"

 

연비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기천천은 확실히 정취를 가장 잘 아는 미인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덕분에 자신의 마음이 크게 안정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기분 좋게 말했다:

"본인은 귀를 씻고 공손히 들을 테니, 나 자신의 강점을 좀 더 많이 알려주면 좋겠소."

 

기천천이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가리고 웃었다:

"강점이요? 그런 표현은 그다지 과하지 않네요. 알려드릴게요! 제가 당신을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당신이 끊임없이 저에게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선사한다는 거예요.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 예를 들어 갑자기 화요에게 초식을 전개할 때, 저는 전혀 미리 알아차릴 수 없었어요. 이건 그저 하나의 예일 뿐이에요. 아시겠어요! 저는 정말 당신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 당신이 하는 말은 독특하고 식견이 있으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처럼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지도 않고, 이랬다저랬다 하지도 않으니까요."

 

연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점점 더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소!"

 

기천천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떻게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고 하시나요? 전 당신의 충고를 듣고 싶은 거예요! 말해주세요! 만약 그가 서도복이라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을 신경 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연비가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입장이 다르면 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법이오. 당신이 듣고 싶은 것이 연비의 관점이오, 아니면 연 노대의 관점이오?"

 

기천천은 조금도 정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마치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흥겹게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곡을 들을 때는 전곡을 들어야 흥을 다할 수 있으니, 어서 천천에게 하나하나 말해주세요."

 

연비는 기천천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천 마디 말로 그녀와 상대방과의 현재 관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연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선택을 하라고 알려줄 것이오. 정치든 감정이든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누굴 사랑하든 사랑하면 되는 거고, 당신이 좋으면 그걸로 된 거요. 소제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기천천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연 노대의 입장은 또 어때요?"

 

연비는 생전 처음으로 교활하고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연 노대는 당연히 또 다른 문제지요. 거리낄 것 없이 솔직하게 말해줄게요. 만약 그 사람이 정말 서도복이라면, 우리 천천 미녀는 절대로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요. 그는 이성을 사냥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파렴치한일 뿐만 아니라, 당신을 남방 본토 세족과 교우 세족의 싸움에 휘말리게 할 테니까요. 그리고 천사도의 종교적 색채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겁니다. 연 노대 입장에서 보면, 천사도는 백성들을 속이고 부려먹는 사악한 종교집단일 뿐이고, 본토인들의 외지인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사건을 일으키려는 야심가에 불과합니다. 손은, 노순, 서도복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천천은 한숨을 내쉬며 말 등에 앉은 채로 아름다운 눈을 감고 천천히 말했다:

"연 노대의 말이 바로 제가 듣고 싶었던 충고예요. 전 종교에 대해 비록 알고 싶은 흥미는 있지만 그것을 공경하면서도 멀리 해요. 어떤 종교의 교리가 사상의 족쇄나 정신적 속박이 되는 건 원치 않아요."

 

이어서 눈을 뜨고 깜빡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가 서도복이 아니라면 또 어떻게 될까요?"

 

연비는 기천천이 방금 왜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마침내 깨달았다. 연비가 목소리를 듣고 그가 서도복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되면 눈앞의 유희(遊戲)는 진행할 수 없게 된다. 마음속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밀려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간단해요. 그에게 왜 신분을 속였는지 물어보고, 그걸 핑계 삼아 그에게 꺼지라고 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돼요. 이게 연 노대와 연비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기천천은 '풋' 하고 교소를 터뜨리며, 그를 곁눈질로 흘겨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말을 채찍질하여 야영지로 달려갔다.

 

  ※※※

 

유유는 임청제의 뒤를 쫓아 영수 서쪽 기슭의 듬성듬성한 숲을 지나 전속력으로 영수를 향해 달려갔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지만 손은의 위협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임청제의 도생지법(逃生之法)이 그저 헤엄쳐 맞은편 기슭으로 가는 것뿐이라면, 그들의 앞날은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내기(內氣)는 이미 기름이 바닥나 등잔불이 꺼져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임청제는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니 영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남편을 잃은 사갈(蛇蠍) 같은 미녀는 강기슭의 풀숲이 무성한 곳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췄다.

 

유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이미 손은의 파공성이 십여 장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상대방이 온 힘을 다해 쫓아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그는 풀숲을 헤치고 나가자, 약 이 장정도 되는 길이의 작은 돛단배가 조용히 강기슭에 정박해 있었다. 임청제는 이미 배를 묶어둔 밧줄을 끊어버리고, 노를 들어 강기슭의 바위에 세게 밀었다.

 

돛단배는 강 가운데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임청제가 날카롭게 소리쳐 말했다:

"빨리 배에 타요!"

 

그녀가 시키기도 전에, 기쁨에 찬 유유는 몸을 솟구쳐 갑판으로 뛰어들었다.

 

임청제는 배 뒤쪽으로 달려가 노를 저어 물보라를 일으키며, 돛단배가 동력을 얻어 물살을 따라 남쪽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 쿵 ' 하는 소리와 함께 임청제는 노를 든 채 주저앉았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말할 기력조차 잃었다.

 

유유는 오히려 돛을 올리느라 바빠, 그녀를 돌볼 틈이 없었다.

 

간담이 서늘케 하는 손은의 키 큰 체형이 강기슭에 나타났지만, 돛단배는 이미 물살을 따라 이십여 장을 미끄러져 나가 순식간에 쌍방의 거리를 벌려놓았다.

 

"펑"!

 

돛이 가득 펼쳐지며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유유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손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오늘은 너희 목숨이 끊기지 않은 걸로 치자.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 두 분 모두 복 많이 받고 명이 길기를 바란다."

 

  ※※※

 

기천천은 발을 툭 쳐서 말에서 내렸고, 방의가 그녀를 위해 말을 마구간으로 끌고 갔다. 방의는 연비에게 몰래 눈짓을 하며,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뜻을 내비쳤는데, 연비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연비는 말을 방의에게 건넨 후 기천천을 따라 탁자 옆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기천천이 손짓으로 그 사람의 발언을 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속으로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의 태도는 역시 매우 적절했다. 기천천에 대한 의심이나 연비에 대한 질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두 눈에서 자책하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전히 차분했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

 

만약 그가 정말 서도복(徐道覆)이라면, 그야말로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은 솜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소시(小詩)는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의 주인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기천천의 난처한 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기천천과 이 사람 사이의 과거 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천천은 연비가 당겨준 의자에 앉아 옛 정인을 응시하며 그윽한 눈길을 보냈다. 태도가 너무 평온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야영지의 북기련 전사들은 모두 철수했고, 동대가(東大街)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으며, 야와족(夜窩族)은 낮에 속하지 않는 세상이다. 정웅 등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고, 변황집(邊荒集)의 어느 날로 보나, 이런 시작은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연비는 기천천 옆에 편안히 앉아, 접련화를 탁자 위에 놓고, 그 사람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천천의 명령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속에는 풍류스럽고 소탈한 멋이 있었다.

 

연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사람이 '요후(妖侯)' 서도복일 확률이 최소 팔 할은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진정한 고수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눈앞의 이 사람은 분명 그중 하나였다. 혁련발발이나 도봉삼처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이런 고수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도대체 이 사람이 서도복이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아니기를 바라는 걸까?

 

만약 기천천이 그와 다시 예전처럼 지낸다면, 연비는 언제든지 빠져들 수 있는 애정의 바다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화를 입게 될까?

 

기천천을 잃는 것이 장안에서의 실연보다 더 엄중한 타격을 줄까?

 

연비는 그의 앞으로의 행복과 즐거움이 모두 눈앞의 일이 어떻게 벌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기천천의 목소리가 하늘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귓가 바로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기천천이 가볍고 부드럽게 물었다:

"당신이 서도복인가요? 그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연비, 소시, 그리고 그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연비와 소시는 기천천이 너무나 직설적이고 단호하게 질문을 던진 것에 놀랐고, 그 사람은 기천천이 그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기천천이 직접 자신의 진짜 신분을 폭로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누구라도 동정심을 느낄 만큼 쓸쓸하고,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체념의 미소를 짓고 손을 펼치며 말했다:

"내가 천천을 속인 것은 고충이 있어서였소. 내 꼭대기에 있는 머리는 건강 조정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물건 중 하나요. 사실 나는 이미 남녀 간의 사사로운 정에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라는 사명을 어겼소. 그렇지만 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소. 나 서도복은 오늘 여기에 천천을 내 곁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천천에게 해명하고 싶었을 뿐이오. 모든 일을 다시 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여전히 정체를 숨길 것이오. 왜냐하면 천천이 건강 고문의 나에 대한 이견에 영향을 받아 나를 단호히 거절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오. 그렇게 되면 내 삶은 이 아름다운 추억 없이 영원히 유감으로 남을 것이오. 오늘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요. 말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한결 편해졌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눈빛을 연비에게 던지며 기쁜 듯이 말했다:

"이 분이 연형이시겠군요. 천천을 돌봐주셔서 감사하오. 우리가 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재의 형세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운명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소."

 

잠시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시오! 천천을 데리고 떠나시오! 더 늦으면 떠날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오."

 

말을 마친 그는 기천천이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홀연히 떠나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아름다운 사람이 이곳에 없으니, 이 것을 취해 누구와 나누랴?

(佳人不在茲,取此欲誰與?)

둥지에 살면 바람과 추위를 알고, 굴속에 살면 그늘과 비를 알지만;

(巢居知風寒,穴處認陰雨;)

멀리 이별해 본 적 없다면 어찌 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겠는가?"

(不曾遠別離,安知慕儔侶?)

 

노래 소리가 쓸쓸하고 비장하게 울려 퍼지며, 마치 세상 끝까지 유랑하며 술에 취해 노래하는 처량한 분위기가 가득하여 매우 감동적이었다.

 

소시의 두 눈이 금방 빨개졌다.

 

연비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기천천이 왜 그에게 빠져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남다른 예리한 직감을 가지고 있어, 기천천이 그가 서도복이라는 이유로 축객령을 내릴 것을 한눈에 알아봤고, 이전의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고, 뜻밖에도 선수를 쳐 한바탕 연기를 펼친 뒤 홀연히 떠나 기천천으로 하여금 더욱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천천이 그를 바라보며 표정은 나무토막 같이 굳어 있었다. 서도복의 '애정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연비은 마음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변황집의 상대는 하나같이 강했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나날들이 과연 즐거움인지 고초인지 그는 정말 알 수 없었다.

 

기천천의 시선을 마주했다.

 

기천천의 아름다운 눈에 점차 생기가 돌더니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고 이내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나가며 "풋" 하고 교소를 터뜨리더니 부끄러운 듯 기쁨에 겨워 말했다:

"당신은 이제 제가 왜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아시겠죠!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과거가 되었어요. 제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아름다운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시선을 이미 영수에서 떠오른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로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양아버지를 암살하려다 오히려 당신들을 다치게 한 일에 대해 해명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아. 그건 내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출처 : 魏晉시대 張華의 《情詩五首·其五》

遊目四野外,逍遙獨延佇。

蘭蕙緣清渠,繁華蔭綠渚。

佳人不在茲,取此欲誰與?

巢居知風寒,穴處識陰雨。

不曾遠離別,安知慕儔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