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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卷七 第三章 대적당두(大敵當頭)

by 少秋 2025. 2. 19.

 

第三章 大敵當頭

 

 

연비와 호뢰방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동대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고요하고 인적이 드물었고, 밤거리의 불빛에서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여전히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운 고수들이었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호뢰방은 두어 마디 예의 바른 말을 건넨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축 노대께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연비는 남이 아니니 무슨 일이든 앉아서 해결할 수 있고, 모두가 화합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이오. 변황집은 막 큰 재난을 겪어 원기가 회복되지 않았고, 게다가 대적(大敵)들이 밖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우리는 단결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우리끼리 싸워서 모두가 다치는 것은 다른 방파에도 좋은 일이 아니오. 저와 모용전은 연 형이 내린 전서(戰書)를 보고서야 임요가 이미 변황집 안에 잠입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사람의 출현은 모든 사람에게 경보를 울리는 것과 같소."

 

연비가 웃으며 말했다:

"호뢰 노대는 아주 훌륭한 중재자로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니 당연히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다만 노대께서 말씀하신 외적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호뢰방이 뒷짐을 지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무례하지만 한 가지 여쭙겠소. 연 형은 지금 사안과 사현의 사람입니까?"

 

연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대께서는 말씀을 직설적으로 하시니 저도 돌려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늘에 대고 맹세하는데, 저 연비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속해 있는데, 바로 저 자신입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사씨 집안은 저에게 은혜와 의리가 있으니 저도 그들에게 보답할 기회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황집을 팔아넘기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집을 팔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호뢰방은 기뻐하며 말했다:

"안심해도 되겠군요! 변황집 사람들은 누구나 연비가 한 말은 꼭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연 형은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임요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오?"

 

연비가 말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 편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거든요."

 

호뢰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부견의 화(苻堅之禍) 이전에는 그 누구도 변황집의 안전이 이렇게 취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소. 아! 이제 저는 더 큰 화가 닥쳐올 것 같은 느낌이 드오. 제 정보에 따르면 모용수는 각지에서 정예병을 차출하여 변황집을 점령하고 변황집을 그의 거점 중 하나로 삼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고 있다고 하오. 누가 지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소. 저는 모용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소.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달성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위협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소."

 

연비도 이미 고언으로부터 이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모용수가 고수 몇 명을 보내 변황집을 장악하려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호뢰방의 말을 듣고 보니 모용수가 파견한 것이 군대이며 압도적인 태세로 변황집을 단번에 장악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변황집의 모든 방회가 일치단결한다 해도 천여 명에 불과했고, 황인들은 각자 사리사욕에 빠져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황집은 정말 큰 화가 눈앞에 닥쳤는데 자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호뢰방이 말했다:

"이 소식은 이미 각 북방 방회 사이에 비밀리에 전해지고 있었는데, 방금 저희 쪽에서 축 노대께 알려드렸더니 그는 말을 듣더니 얼굴이 창백해졌소. 모용수의 악랄한 성격에 부하들에게 한방 사람들을 모두 죽일 것이라고 할 것이오."

 

연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변황집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고, 누가 한방을 대신해 남북 무역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겠소?"

 

호뢰방이 말했다:

"양호방을 신한방(新漢幫)으로 만들면 어떻겠소? 양호방은 이미 대하(大河)를 호령하는 황하방(黃河幫)과 암중에 동맹을 맺고 변황집의 이익을 나눠 가질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황하방의 '황룡(黃龍)' 철사심(鐵士心)이 바로 모용수의 의형제라는 사실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으시오?"

 

연비는 마음이 철렁하며 속으로 설마 임요도 이 일과 관련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호뢰 노대의 소식은 매우 유용했습니다. 축 노대께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야기하시면 반드시 함께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정리한 후에 호뢰 노대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부탁드립니다!"

 

호뢰방은 걸음을 멈추고 점점 멀어져 가는 연비를 향해 소리쳤다:

"내일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연 형, 안녕히 주무시오!"

 

사경(四更) 전의 어둠 속에서 야영지는 고요했고 주마등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하늘 가득한 별들만 남아 있었다.

 

유유와 방금 돌아온 연비는 쌓아놓은 상자 꼭대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방의와 고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유유처럼 임요를 부상 입힐 수 있는 고수가 경계를 서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안심하고 곯아떨어졌다.

 

연비는 유유가 자신이 떠난 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다 듣고 나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유는 그가 고언을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야. 만약 지금 고언이 잠꼬대를 하고 있다면 분명 '내 작은 흰 기러기'라고 부를 거야. 아까 윤청아를 봤을 때 그는 마치 급소를 맞은 것처럼 완전히 정신이 나갔더라고."

 

연비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쉽게 흥분하고 더 쉽게 좌절하는데 이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학장형의 수완이 정말 대단한데, 위기를 가볍게 해소하면서 홍자춘의 체면을 살려준 것을 보면 과연 다방면에 능통한 인재답네."

 

유유는 그의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가 고언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군. 나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고언이 우리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연비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언은 너와 내 말을 듣지 않겠지만 천천의 말은 분명히 귀담아 들을 거야. 이 일은 우리가 조용히 지켜보면서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임요야. 넌 그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어."

 

유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난 이해가 안 돼!"

 

연비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와 겨뤄본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속임수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속임수가 매우 고명해서 난 이에 따라 큰 피해를 보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강방의 노대 호뢰방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양호방과 황하방이 이미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고, 황하방의 용두노대인 '황룡' 철사심이 모용수의 의형제라 하더군. 세 세력이 손을 잡고 뇌정만균의 기세로 단번에 변황집을 점령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거야. 만약 임요가 이 일에 참여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해 봐."

 

유유가 얼굴이 창백해지며 말했다:

"당장 현 장군에게 알려야겠어."

 

연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모용수의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계략을 생각해 볼 때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면서 북부병의 위협을 계산에 넣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약 현 장군이 군대를 파견한다면 모용수의 계략에 걸려들지도 몰라. 게다가 현 장군과 조정의 관계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으니 정식으로 조정에 명령을 요청해도 분명히 허락받지 못할 것이고, 사사로이 군대를 동원하면 상황이 악화하여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비수대전의 승리는 깡그리 잃게 될 거야. 현 장군이 변황집을 우리에게 맡겼으니 우리가 해결해야 해."

 

유유는 그 말을 듣고 풀이 죽어 할 말을 잃었다.

 

모용수는 현재 북방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남쪽 전체와 충분히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공정한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북부병과 형주군의 힘을 합쳐도 여전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지금 모용수가 황하, 양호 두 개의 대방파와 손을 맞잡고 쳐들어오니 변황집 사람들의 저항은 두 팔을 들어 수레를 막으려는 당랑과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런 싸움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유유는 당연히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지만 당장은 대책이 없었다.

 

모용수가 두 대방파와 연합한 전략은 부견의 백만 대군보다 더 대처하기 어려웠고 일이 터지면 도망가려 해도 도망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언이 윤청아에게 빠져든다면 그 결과는 더욱 끔찍할 것이다.

 

연비가 말했다:

"임요가 음모를 애용하는 성격으로 볼 때 변황집에는 분명히 그의 첩자가 있을 것이고, 변황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전서(戰書)를 내자마자 그가 먼저 야영지로 와서 시비를 걸 수는 없지."

 

유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말은......."

 

연비가 말했다:

"내 말은 그가 내가 없는 상황을 분명히 알면서도 일부러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는 거야. 그의 깊고 악랄한 성격으로 보아 화를 참을 리가 없으니, 일부러 화난 척하다가 실수한 게 분명해. 내가 다른 사람의 기를 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출신입화의 검술로 볼 때 나와 자네가 아무리 정진했다 해도 몇 번 겨루는 사이에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그리고 그의 심성으로 보아 천천이 어떻게 그를 막을 수 있겠어?"

 

유유가 동요하며 말했다:

"자네 생각에 일리가 있어. 그때 나도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데, 자네가 생각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유유가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그는 분명히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치욕스러운 일을 용인할 수 있을까?"

 

연비가 말했다:

"당연히 더 큰 이익을 위해서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을 거야. 하물며 자신의 행적이 드러난 걸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계략이야. 그는 이를 핑계로 나와의 결전을 피할 수 있고,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반대로 자네는 하룻밤 사이에 변황집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면 축 노대는 더욱 견딜 수 없을 거야. 아! 나는 탁광생이 그의 사람일까 봐 정말 걱정돼. 탁광생이 내가 임청제를 쫓지 못하게 막은 것도 우연치고는 너무 걱정스러워."

 

유유는 탄식하며 말했다:

"이렇게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은 처음이야. 홍자춘(紅子春)은 황하방이나 모용수의 사람일 가능성이 있고, 그럼 종루의회 의석 여덟 자리 중 두 자리는 적이라는 뜻이니 변황집이 단결하기가 더 어려워지겠군."

 

연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여러 호족들이 뒤섞여 있고 한인들은 남북으로 나뉜 것뿐만 아니라 지방간의 다툼도 있어. 남방 교우세족(僑寓世族)과 토착 세족의 세력은 물과 불처럼 대립하고 있지. 게다가 방파가 대치하고 파벌이 즐비한 상황에서 그들이 단결하여 외적에 함께 맞서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아.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그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해."

 

유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우리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한발 먼저 학장형(郝長亨)을 무너뜨리면 모용수 대군의 침입을 늦출 수 있어."

 

연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칭찬하며 말했다:

"역시 자네는 방법이 있구나. 이렇게 간단한 일을 왜 나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비록 어려움이 겹겹이 쌓여 있고 학장형이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그래도 노력할 방향이 생겼군."

 

유유가 말했다:

"천천은 변황집의 여러 방파를 단결시키는 데 그녀의 마력을 발휘할 수 있어. 우리가 양호방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내고 섭천환이 북쪽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압박한다면, 모용수도 변황집을 얻더라도 한인과 협력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하면 적어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어. 아! 젠장! 우리가 이 점을 생각할 수 있다면 모용전과 호뢰방도 이 점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도우려 할까? 탁발족은 자네의 종족이니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연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하방을 함께 제거하는 수밖에 없군. 젠장, 이건 내정을 안정시키고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이제부터 고언의 문제가 골치 아파지겠군! 이 녀석은 남녀 문제에 있어서는 고집이 세서, 만약 우리가 학장형을 제거하기로 결정하면 윤청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잘못하면 우리의 무적조합이 먼저 끝장날 수도 있어."

 

유유는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하며 말했다:

"임요가 일부러 상처를 입은 것은 자네를 겨냥한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그가 여전히 자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결전 때 상처 때문에 생긴 듯한 허점을 고의로 드러내 너를 함정에 빠뜨리는 거지."

 

연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요는 아직 나를 죽일 수 없어. 적어도 나와 축 노대가 양패구상한 후에나 가능하지. 하지만 자네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게다가 축 노대에게 화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지. 알겠어?"

 

유유는 찬 기운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 계책은 과연 악랄하구나."

 

연비가 말했다:

"임요의 움직임은 곧 드러날 거야. 이번에 도박장에 가서 내가 비록 패배하고 돌아왔지만 두 가지 큰 수확이 있었어. 첫째는 필승의 도박술을 파악한 것이고, 둘째는 한방의 진짜 노대가 꼭 축천운(祝天雲)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어쩌면 정창고(程蒼古)일지도 몰라."

 

유유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견해는 신선하고 흥미롭군. 한방의 진짜 실권자가 정창고라니. 흠! 세상에 필승의 도박술이 정말 있다는 말인가? 자네가 실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

 

연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말로는 소용없어. 내일 밤에 내가 사실로 증명해 주지.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 우리는 푹 쉬자. 내일은 더 좋아지려나, 아니면 더 나빠지려나? 깨어나면 답이 있겠지."

 

  ※※※

 

연비는 거의 선정에 가까운 고요한 수양의 경지에서 깨어나 마음속에 염두에 둔 것은 떠들썩한 사람들의 소리와 수레 소리가 아니라 어젯밤 기천천이 그에게 "내일 일어났는데 바로 당신을 보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라고 애교스럽게 말했던 말이었다.

 

지금 그는 당연히 그녀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그녀는 어떻게 나올까? 그를 주먹으로 몇 대 때릴까? 아니면 씩씩거리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을까?

 

밖은 시끌벅적한데 상자를 쌓아둔 곳 안에는 그 혼자뿐이어서 기분이 꽤 이상했다.

 

목재를 내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고, 오늘이 좋을지 나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분명 활력이 넘치고 하루의 일이 시작되는 소리였다.

 

고언이 흥분하여 입구에서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연비 노대가 드디어 깨어나셨군!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이곳 변황집의 유명 인사들이 모두 왔다는 걸 알고나 있나?"

 

연비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장하지 마라."

 

고언은 화가 나서 말했다:

"넌 손발 다 있고 두 눈도 멀쩡하면서도 왜 네 새 대가리를 내밀어 확인해보지 않고 내가 허풍떤다고 의심 하냐?"

 

"고공자!"

 

고언은 난처한 듯 안으로 들어왔고, 그 뒤로는 예쁜 얼굴의 소시가 나타났다. 소시는 물이 담긴 쟁반과 빗과 씻을 수건 등을 받쳐 들고 고언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고 공자는 어찌 이른 아침부터 상스러운 말을 하시는 거죠?"

 

소시가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며 연비에게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소시에게 연비 노대의 세수를 시켜드리고 머리를 빗겨 드리라고 분부하셨어요."

 

고언은 황급히 물이 가득 담긴 나무 쟁반을 그녀 대신 받아들고 일부러 연비의 눈앞까지 들어 올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비 어르신, 머리를 빗으시고 나가셔서 손님을 맞이하셔야죠!"

 

연비는 기천천이 왜 들어와서 따지지 않는지 생각하며 다소 실망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지 않아 말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되잖아?"

그리고는 소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시, 고마워요. 난 우물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물을 떠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는 게 습관이 되었으니 소시는 빨리 돌아가 아가씨를 돌봐 드려요. 난 바로 나갈게요."

 

소시는 기꺼이 물러났다.

 

연비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웅얼거리며 물었다:

"네가 말한 그 소백안(小白雁)은 왔냐?"

 

고언은 쪼그리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

"너 이 자식 소식 한번 빠르네. 귀여운 백안은 오지 않았고, 그녀의 영위(英偉)한 학 대가가 왔다. 지금 천천에게 공세를 펼치고 있으니 네가 나가서 맞서지 않으면 분명 손해를 볼 거야."

 

연비는 움찔하며 고언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학장형이 감히 대놓고 나타났단 말이냐?"

 

고언이 말했다:

"그가 못할 게 뭐 있겠어? 홍자춘이 그를 데리고 왔는데, 그 양호방의 꽃봉오리는 더욱 쟁쟁한데 홍자춘과 양호방에 대해 적이 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누가 감히 그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연비는 고언이 건네준 수건을 받아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니 학장형은 한 수 한 수가 깔끔하고 예상 밖이어서 분명히 상대하기 어려운 적수였다. 호뢰방처럼 학장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황하방과 동맹을 맺고 모용수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설령 학장형이 갑자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감히 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사람들 중 첫 번째였다. 오히려 연비가 앞장서서 학장형과 싸워준다면 호뢰방은 훨씬 수월하게 자신을 보호할 계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미련하게 선봉에 나서겠는가?

 

고언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

 

연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언제부터 그렇게 호기심이 많아졌지? 남들이 생각하는 일까지 일일이 캐묻고 말이야?"

 

고언은 급히 말했다:

"난 너를 걱정하고 있는 거야. 질투심에 미칠까 봐. 야! 내가 네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연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학장형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너와 아름다운 요정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을지 상의하라는 거지? 안 그래!"

 

고언은 다리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연비 너는 정말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군. 하하! 그녀는 정말 사람을 홀리는 요정이지. 그래서 난 그런 요정이 너무 좋아."

 

연비는 한참 동안 그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가 어쩌면 말 그대로 요괴일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니? 널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게 만들 수도 있어."

 

고언은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패를 떠나서 난 그녀를 차지할 거야. 내가 너한테 어렸을 때부터 세웠던 원대한 소원을 얘기했던 거 기억나? 이제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난 어젯밤 그녀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여자에게 느껴본 적이 없어. 직감적으로 그녀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연비는 유유가 왜 골치 아파했는지 마침내 깨닫고 일어나면서 그를 따라 일어난 고언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축 노대가 아니라 학장형이야. 네가 윤청아를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이 아닐까?"

 

고언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고, 맹세라도 하듯 말했다:

"진정한 남녀 간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법이지. 쉽게 얻을 수 있는 여자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겠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고, 결코 결합할 수 없는 미인을 반려자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성취지. 연비 네가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옆에서 나를 도와주라. 정말 네게 감사할 거야."

 

연비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데리고 출구 쪽으로 걸어가며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

"사랑의 늪에 빠진 가련한 녀석 같으니라고. 휴! 네 말이 맞아.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해. 꿈이 없는 날들은 정말 견디기 힘들지."

 

고언이 말했다:

"꿈을 보고도 말머리를 돌리지 않고 가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워. 유유와 방의 두 놈은 내 마음을 몰라. 다행히 네가 좀 낫긴 하네."

 

연비가 대답을 하려던 참에 상자를 쌓아둔 곳을 돌아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그는 즉시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