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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열강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구실 본문

강호야사(江湖野史)

외국 열강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구실

少秋 2019. 1. 2. 09:24

외국 열강이 제2차 아편전쟁第二次 鴉片戰爭을 일으킨 구실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구실은 ‘아라호사건亞羅號事件’ 과 ‘마신보사건馬神甫事件’ 이지만 당연하게도 전쟁을 일으킨 까닭은 오로지 그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만청정부滿清政府에 요구했던 계약이 단호하게 거절되었기 때문에 침략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 사건 그림


‘아라호사건’과 관련해 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1856년 10월 8일이었다. 당시의 광주廣州 수사水師는 군대를 이끌고 황포항구黃埔港口의 밀수선 ‘아라호‘에서 중국해적과 혐의가 있는 선원을 체포하였다. 당시 이 배의 선장은 영국인으로 홍콩 당국에 기록되어 있었다. 붙잡혔을 때는 사증簽證의 기간이 지나 영국의 국기가 배에 걸려있지 않았다. 당시의 수사水師는 사람을 잡았을 때 중국 내정의 방식으로 처리해 영국 측 의견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제2차 아편전쟁의 구실로 삼기 위해, 영국 측은 억지를 쓰며 ‘아라호’는 영국의 배인데 수사는 아무런 허락도 없이 배에 올라 사람을 잡아 영국 영사領事의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말했으며 심지어는 광주 수사가 배에서 영국 국기를 내리게 한 것은 영국에 대한 모욕이라 날조하며 중국 측에 사과를 요구하였고 물론 그들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마침내 10월 23일 영국해군은 이런 구실로 중국 광주에 침입을 했고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하였다.


영국은 ‘아라호사건’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의 구실은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에 있었던 바로 ‘마신부사건馬神甫事件‘이었다. 당시의 프랑스 천주교 신부는 중국 내지에 불법으로 잠입하여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대청법률大清法律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벌이다 청조清朝의 광서지방관(廣西地方官: 張鳴鳳)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프랑스는 중국 침략 전쟁을 기도企圖하고 전쟁 전에 영국 측과 연락을 취했다. 결국 두 나라는 손을 잡고 중국에 대해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아편전쟁 노선 소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중국에 대한 전쟁 개시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제2차 아편전쟁의 노선은 먼저 광조우 그리고는 텐진 마지막으로 수도 베이징이었다.


제2차 아편전쟁 노선도


제2차 아편전쟁의 제1단계에서는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아라호’사건을 만들어냄으로써 중국 광조우를 무장 침공하였다. 이후 청군清軍은 엽명침葉名琛의 인솔 아래 강력 저항하였으나 무기와 장비의 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광조우가 함락되어 쌍방은 《텐진조약天津條約》을 체결하였다.


제2단계에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먼저 텐진의 대고구大沽口에서 전쟁을 일으켜 이후 텐진 전역에 한동안 전쟁이 만연했고 텐진이 함락된 뒤 그들은 계속 북침北侵하여 성공적으로 베이징을 점령하고 원명원圓明園에 불을 질렀다. 함풍황제는 도망을 가게 되고 중국은 《베이징조약北京條約》체결을 강요받게 되어 제2차 아편전쟁이 정말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