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愛情遊戲
고언이 말했다:
"내가 네게 준 건 최고급 물건이야. 이 등 뒤에 메는 행낭은 내가 외출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보물이니 얕보지 마라. 보기 드문 오두천산갑(烏頭穿山甲)의 단단한 가죽을 담금질해서 만든 거라고. 안에는 내가기공을 무력화 시키는 '등남화(登南花)' 솜이 들어 있어서 네 등을 보호할 수 있다."
유유는 지금 노궁(弩弓) 하나를 손이 닿을 수 있는 말 옆구리에 걸고, 스물네 개의 화살은 천 주머니에 담아 다른 쪽에 가지런히 정렬시키며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이 자식 정말 친구답구나."
고언은 직접 그의 등에 행낭을 메어 주며 말했다:
"네가 칼을 뽑을 때는 약간의 요령 있게 힘을 좀 써야 해. 삭구(索鉤)는 네 오른쪽에, 미무탄(迷霧彈)은 왼쪽에 있다는 걸 기억해라. 너 한번 해봐."
유유는 손을 뒤로 뻗어 행낭 옆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서 탄황(彈簧)으로 발사할 수 있는 삭구의 철통을 찾아내며 무심코 물었다:
"삭(索)의 길이는 얼마나 되냐?"
고언이 기뻐하며 말했다:
"말해도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보물은 북방의 장인이 정교하게 만든 건데 삼중의 잠금장치로 나뉘어 있고 각각 두 장, 세 장, 넉 장 길이의 삭구를 발사할 수 있고, 수발(收發)이 자유로워. 내가 거금을 주고 사왔는데 여러 번 죽을 고비에서 날 구해주었지. 삭이 그저 면실처럼 가늘다고 무시하지 마라. 사실 튼튼한 천잠사(天蠶絲)로 짜서 보통 사람은 아무리 당겨도 절대 끊을 수 없다."
또 행낭을 두드리며 말했다:
"안에는 네가 요구한 물건 외에도 도상약(刀傷藥)을 넣어 놨지만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란다!"
유유가 막 말을 하려는데 소시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유유가 행장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유 노대 어디 가시려고요?"
유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서 남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십여 일은 걸려야 돌아올 수 있을 거요."
소시는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 노대 가시는 길이 순조롭길 빌겠습니다."
고언은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아 물었다:
"소시 아가씨는 화요가 무서운 거예요? 안심해요! 무서워해야 할 건 화요겠지요. 우리의 연 노대께서 가장 잘하시는 게 채화적(採花賊)을 잡는 거라고요."
유유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 이 자식 정말 과장하는 걸 좋아한다니까. 연비가 채화적을 몇이나 잡았다고 그래?"
소시도 그의 말에 '풋'하고 웃음이 터져 나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윤 낭자가 당신을 찾아왔어요……"
고언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윤청아! 이런! 그녀가 날 왜 찾아온 거지?"
고언이 유유의 어깨를 세게 치며 말했다:
"소시 아가씨의 말을 빌려서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롭길 빌고 꼭 살아서 우리를 보러 돌아오길 바랄께."
그리고는 소시에게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유유는 소시가 고개를 숙이고 침울해 있는 것을 보고 고언이 윤청아에 대해 기쁜 마음을 드러낸 것을 그녀가 알아차렸음을 눈치 챘다. 마음이 편치 않아 속으로 고언을 탓하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예전에 말씀하시길, 예전에 아버지와 동시에 어머니를 쫓아다니던 같은 마을의 남자가 있었데요. 그 남자는 말재주가 좋아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법을 알았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아버지에게 시집을 갔지요. 어머니가 원했던 건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지낼 낭군이었기 때문이에요."
소시의 얼굴이 빨개지며 약간 낭패한 듯 그를 쳐다보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말은 딸에게만 해야죠. 유 노대는 지금 절 놀리시는 거죠? 그 사람은 근본적으로…… 아! 말 안 할래요!"
유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이 아니에요. 진짜 상황은 우리 어머니의 외가에서 어머니가 그 입만 달콤한 남자와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억지로 어머니를 착실하고 근면한 아버지에게 시집보낸 거래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 남자와 집을 나가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결혼 후의 생활이 매우 행복하셨기 때문이었소. 이건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에요."
소시는 참지 못하고 교소를 터뜨렸다. 비록 여전히 약간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분명 기분이 훨씬 밝아진 것 같았다.
이때 연비, 기천천, 모용전, 방의, 방홍생이 함께 도착했는데 소시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소시가 기천천에게 말했다:
"알고 보니 유 노대도 허풍을 떨 줄 아네요. 헛소리도 하고요."
방의는 긴장하며 말했다:
"소시 아가씨에게 무슨 감언이설을 한 거야?"
유유는 손을 뻗어 앞에 있는 방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착한 사람 억울하게 하지 마쇼. 난 소시 아가씨에게 남편을 고를 때 나처럼 감언이설을 할 줄 아는 놈은 절대 고르지 말고 당신 노대처럼 착실하고 근면한 사람을 고르라고 했소."
소시는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고 귓불까지 빨개졌다.
유유는 한 마디 더 보탰다:
"우리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거야."
말을 마치고 말에 올라탔다.
기천천은 소시를 보고 또 얼굴이 빨개진 방의를 보더니 교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유 노대도 감언이설을 할 줄 아는지 몰랐네요. 들어보게 몇 마디 더 해봐요."
유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왕담진을 잊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천천에 대한 애모를 우정으로 바꿔야 했다. 이 또한 인생의 낙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말 위에서 말했다:
"살아 돌아오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연비와 눈짓을 주고받은 후 모용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방홍생에게 말했다:
"방총께서 여러 영웅들을 이끌고 공을 세우시길 빌며 세상을 위해 해악을 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 옆구리를 차자 발굽을 쳐들더니 달려갔다.
※※※
고언은 백안(白雁) 윤청아의 아리따운 뒷모습을 쫓으면서도 함부로 망상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석양 아래에서 이 매혹적인 작은 요정이 흰옷을 흩날리며 끝없는 풍류와 아름다움을 자아냈고, 그녀의 모든 경쾌한 몸짓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녀가 한 발로 담을 넘어 첫 번째 뒷마당 담을 넘는 모습을 보며 발끝으로 가볍게 점을 찍더니 힘들이지 않고 공중을 날아 건너편 거리의 황폐한 정원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의 느낌은 실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고언도 그녀를 따라 담을 넘어갔고, 작은 미인은 이미 기와지붕 위에 앉아 있었는데 뒤쪽으로는 부채꼴로 퍼지는 저녁노을이 반사되어 고언은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져 아버지의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도 잠시 잊어버렸다.
그녀 옆에 앉자 윤청아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경공이 대단한데! 권각술은 어떤지 모르겠네? 나랑 한번 겨뤄 볼래요?"
고언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여유를 남겨 두었지만 자신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썼고, 따라가기도 상당히 힘들었다. 가장 곤란한 것은 자신의 장기인 경공도 이미 그녀에게 적어도 두 수는 밀려 있다는 것이었고, 자신의 약점인 권각술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행히도 그의 성격상 이런 일로 인해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 고언이 너와 함께 있으니 소청아 너는 외로움을 탈 일이 없을 거야."
윤청아는 '풋' 하고 웃으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그를 한번 흘겨보며 말했다:
"소청아? 그런 괴팍한 이름이 어딨어요? 사부님은 저를 아아(雅兒)라고 부르시고 학대가는 저를 소아(小雅)라고 부르세요. 헤헤! 소청아 정도면 그리 듣기 어려운 이름은 아니죠! 봐요!"
고언은 그녀의 친절한 말에 마음속에 숯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고, 그녀의 옥 같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말했다:
"뭐가 그리 예쁜데?"
윤청아는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얼마나 예쁜데요? 어젯밤에 제가 바로 여기서 여러분의 진지 동정을 살폈는데 천천 언니와 '변황제일검' 연비도 봤어요. 연비는 아주 잘 생겼던데, 듣자 하니 당신과 친한 친구 사이라던데 맞나요?"
고언은 즉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무슨 제일 검이니 제이 검이니 하는 거요? 연비는 그저 게으름뱅이에 술주정뱅이였을 뿐이오. 기천천 때문에 조금 분발한 것뿐이지. 헤헤! 소청아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야?"
그는 자신이 매우 교묘하게 말했다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윤청아의 연심 상대가 기천천임을 일깨워 주었다.
윤청아는 그의 말이 가리키는 바를 듣지 못한 것처럼 기천천, 연비 등이 유유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에 몽롱한 눈빛을 띠며 혼잣말로 말했다:
"아니! 학대가의 생각이 틀릴 리 없어. 그는 변황집에서 가장 흠모하는 사람은 연비 한 사람뿐이라고 했어. 네가 소개해 주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 그의 접련화가 어떤지 알아볼 거야. 비무는 정말 재미있어! 모두 목숨 걸고 싸울 필요도 없고."
고언은 마치 누군가가 등짝을 세게 후려친 것처럼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직접 그를 찾아가야 해."
윤청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삼십여 장 밖,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뒷마당에 있는 마구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타고 떠나는 유유를 바라보며 약간 화가 난 듯 말했다:
"제가 당신이 좋아서 찾는 게 뭐 잘못됐나요? 유 대가는 어디로 가는 거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태양은 서산 너머로 사라졌으며, 화요의 위협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밤의 변황집은 유난히 곳곳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고언은 윤청아에게 휘둘려 정신이 혼미해져, 놀라며 물었다:
"날 좋아한다고?"
윤청아는 그를 향해 예쁜 얼굴을 돌리고 코를 찡그리며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 안 돼요? 빨리 제 질문에 대답해요. 학대가가 저보고 소식을 알아 오라고 했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분명 날 호되게 꾸짖을 거예요. 아이참! 어제 당신들과 놀았다고 이미 그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고요. 이번엔 당신이 꼭 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고언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대답했다:
"유유는 남쪽으로 돌아갈 거야."
윤청아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착하기도 하셔라! 그런데 남쪽은 이렇게 넓은데 광릉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아니면 건강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맞추면 상을 드릴게요."
고언이 아직은 겨우 정신을 유지한 채 물었다:
"무슨 상인데?"
윤청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짧은 노래 한 곡 들어보실래요? 사부님은 제가 노래 부르는 걸 가장 좋아하시는데, 물론 천천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고언은 마지막 남은 영명함마저 사라져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당연히 광릉으로 돌아가겠지, 설마 건강으로 가서 사마도자에게 구원을 청하겠소? 하하! 노래나 불러보시오!"
윤청아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소식 하나 가지고 제가 학대가에게 보고하기엔 부족하지 않나요? 전 여러분이 어떻게 화요를 상대할지도 알고 싶은데, 학대가도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 하거든요."
고언은 결국 노강호답게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그저 소식을 캐내기 위해서였구나. 이게 바로 네가 말한 '좋아서 나를 찾는다.'는 거였어?"
윤청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전 이미 학대가에게 제가 이런 쪽으로는 잘 못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 고언과는 그래도 조금의 친분이 있어서 억지로 승낙한 거라고요. 알고 보니 당신은 전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군요. 내가 당신을 해칠까 봐 두려운가요? 됐어요!"
고언의 방어선은 즉시 무너졌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당연히 우린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지. 아! 너는 그 수염 난 놈 봤어? 그자가 바로 북방에서 유명한 '양험신포(羊臉神捕)' 방홍도(方鴻圖)야. 화요를 체포하는 일은 그가 주관할 거야. 이 방면의 일은 홍자춘에게 직접 물어봐. 그자와 너희들 사이에 특별한 친분이 있지 않나?"
윤청아가 가볍게 말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의 친구 연비가 화요를 상대할 때 어떤 특별한 법보를 사용하느냐는 거예요. 보아하니 당신은 잘 모르는 것 같군요?"
고언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어! 너는 지금 학대가를 도와 화요를 잡아서 천천에게 현상금을 타낼 생각이구나!"
윤청아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
"끝났네! 당신한테 들킨 거야? 당신은 참 영리한 사람이지만, 난 속일 수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은 좀 더 멍청한 척해야겠어요."
이번에는 고언이 속으로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녀를 상대할 때 평소의 절반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와 함께 있을수록 그녀가 점점 더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작은 요정을 보는 것 같았고, 단순히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윤청아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처하게 하지 않을게요! 청아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들이 떠나려고 하나요? 당신은 아직 그들의 전별(餞別) 행사에 참여하러 안 돌아갈 거예요?"
그녀의 미소는 꿀처럼 달콤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사심 없는 천진난만함이 가득했지만 고언은 그녀가 뼛속까지 교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먼저 한 수를 내어주면서 자신이 어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와서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먼 곳에서 방의와 모용전이 희별(姬別)이 선물로 준 두 필의 흉노 말을 마구간에서 끌고 나왔다. 연비는 그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고, 소시는 그들이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고언은 이를 악물고 일부러 그녀를 마음에 두지 않는 척하며 웃으며 말했다:
"소청아도 조심해야 해, 화요가 이 귀여운 백안을 물어가지 않게!"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야영지로 돌아갔다.
※※※
한방 총단, 충의당 안, 방주 축 노대는 당 안에 홀로 앉아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잔뜩 찌푸린 미간을 보니 걱정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사(軍師)' 호패(胡沛)가 충의당 안으로 들어와 그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대선(大仙)이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경비를 강화했으니, 만약 도봉삼이 감히 공격해온다면 우리는 그가 데리고 오는 만큼 죽일 것이며, 왔다가는 절대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축 노대가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천 명의 정예 형주 병사들이 몰려온다면, 그래도 자신이 있겠느냐?"
호패가 당황하며 어색하게 말했다:
"도봉삼이 그렇게 멋대로 굴지는 않겠죠?"
축 노대는 번득이는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 밤 이 시각에 와서야 나는 갑자기 내가 고립무원이라는 것을 느꼈다. 강 노대조차도 내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고, 만약 그가 문청을 제때 파견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호패는 몸을 바로 세우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도봉삼의 등장으로 우리의 전열이 흐트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동안 승부가 갈린 것은 아니니 누가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축 노대가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대전을 왔다 갔다 하다가 한참 후 호패 옆에 멈춰 서서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우리 한방이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먼저 연비의 검에 좌절당하고, 종루의회에서 고립되어 제일루의 재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데 이어 도봉삼에게 공공연히 도전을 받았으니 내가 당연히 가장 큰 책임을 져야겠지만, 더 큰 잘못은 내가 너의 제안을 믿고 비수지전(淝水之戰) 이후 맹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대중의 분노를 산 것이니, 너는 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호패는 의외로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세상의 일은 참으로 기이하여 종종 사람의 예상을 벗어나 예측하기 어려우니, 노대께서 저를 탓하신다면 저 호패는 당연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축 노대는 벌컥 화를 내며 호패를 향해 몸을 돌려 두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한 마디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로 얼버무릴 셈이냐? 그날 내가 난강(攔江)에 철삭(鐵索)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크게 망설였을 때도 너는 강력하게 부추기며 위세를 떨치자고 말하더니, 결국 우리 방이 기호난하(騎虎難下)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교묘한 명목의 토지세도 너의 생각이었다. 그로인해 연비로 하여금 우리를 거듭 공격하게 하였으니, 네가 무슨 군사란 말이냐?"
호패는 고개를 들어 태연하게 말했다:
"노대께서 저를 믿지 않으시니, 제가 이 군사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노대께서 분풀이로 저를 죽이려 하신다면 호패는 결코 반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축 노대는 온몸을 떨며 두 눈에서 불을 내뿜을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격동된 감정을 누르고 몸을 돌려 호패를 등지고 말했다:
"당장 꺼져라, 이후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변황집에는 네가 몸을 의탁할 곳이 없다."
호패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 축 노대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패는 노대께서 베풀어주신 다년간의 보살핌과 사랑을 영원히 마음속에 새길 것이며, 변황집을 떠나기 전에 아직 노대께 보고드릴 매우 중요한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축노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라!"
호패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했다:
"이 비밀은 '대활미륵(大活彌勒)' 축법경(竺法慶)과 관련이 있습니다."
축노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축법경?"
호패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축법경의 부인 니혜휘(尼惠暉)는 저의 사모(師母)입니다."
축 노대는 온몸을 심하게 떨며, 즉시 내공을 운용하여 앞으로 돌진했다가 다시 손을 뒤집어 반격하는 임기응변 초식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언제나 계략이 많지만 무공이 뛰어나지 않았던 호패는 열 손가락으로 마치 폭우처럼 축 노대 등 뒤에 있는 스무 곳이 넘는 혈도를 찔렀다.
호패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고의로 말을 돌렸다. 이로 인해 그는 저도 모르게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말을 음미하게 되어 한 발 늦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도 어제 아침 연비와의 대결로 인한 내상을 입고 있었고, 게다가 호패가 출수하기 전에 아무런 전조도 없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다.
축 노대의 눈, 귀, 입, 코에서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지만 앞으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는 호패의 쌍장에서 흡입력이 생겨 그를 여전히 직립불도(直立不倒)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구원을 요청하려 했으나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미약한 신음소리로 변했다.
호패가 그의 귓가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
"노대는 기분이 어떠십니까? 지난 팔년간 나는 이미 당신의 무공을 철저하게 파악했으니 당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축 노대는 두 눈에서 원한의 화염을 내뿜으며 체내로 침입한 십여 줄기의 기운이 경락에서 들끓고 싸우며 일으키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신음했다:
"너는 도망갈 수 없다."
호패가 실소하며 말했다:
"내가 왜 도망가야 합니까? 수년간 당신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무공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퇴보했지만, 나는 오히려 부지런히 무공을 연마하며 당신을 위해 방의 일을 처리하고 끊임없이 내 사람들을 방 내부의 중요한 자리에 앉혔습니다. 다만 착수할 좋은 시기를 찾지 못했을 뿐, 이제 기회가 마침내 왔습니다."
축 노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두 눈을 힘없이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문청을 속일 수 없다."
호패는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그녀를 속일 수 없겠습니까? 당신은 먼저 연비에게 부상을 입었지만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에 서둘러 내공을 수련하며 회복하려다 내기를 잘못 이끌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고, 화타(華佗)가 다시 살아나도 다른 사람이 손을 쓴 것을 절대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방금 일격에 적중한 수법은 비록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지만 내가 수년간 고련한 성취입니다."
호패는 마음을 터놓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멍청하겠습니까? 공연히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 필요가 있을까요? 하물며 도봉삼이 죽이려는 사람이 이제껏 제대로 수명을 다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도 이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잘 준비하려면 아직 며칠 시간이 더 필요하니 우리의 도선(賭仙)에게 잠시 당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할 것입니다. 노대 당신은 알겠습니까?"
갑자기 두 손이 축 노대의 등에서 떨어졌다.
축 노대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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