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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三章 공휴일궤(功虧一簣)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第十三章 공휴일궤(功虧一簣)

少秋 2024. 9. 18. 00:00

 

第十三章 功虧一簣

 

 

연비와 유유는 언덕 위의 돌무더기 안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둘 다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채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변황집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높이가 삼 장에 달하는 목채(木寨)이 가로놓여 있었고 좌우로 뻗어가며 한쪽은 영수 서안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목채 밖은 반 리에 달하는 광대한 공터로 모든 나무가 베어져 있었는데 이는 목책을 짓는 자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이 몰래 다가와도 멍하니 모르고 있지 않도록 하는 청야(淸野)의 방어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목책의 견고한 외곽에는 3장마다 망루와 화살을 쏘는 전탑(箭塔)이 설치되어 있었고 위에는 진나라 병사들이 높은 곳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망루는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거의 백 개에 달했다. 가장 큰 두 개는 영수를 끼고 세워져 있어 목보(木堡)라 부를 만했고 두 보루 사이에는 승강이 가능한 나무로 된 하천 장애물인 대목책갑(大木柵閘)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영수 동쪽 기슭에도 형태가 같은 목채(木寨)가 있었다.

 

목책 바깥쪽 난간 위에는 풍등(風燈)이 가득 걸려 있어 목책 밖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있어 죽으려하는 사람만이 나무 난간을 타고 들어오려 할 것이었다. 영수 근처에는 열 마리의 말이 함께 지나갈 수 있는 큰 문이 열려 있었는데 문을 지키는 자는 백여 명에 달했고 경비가 삼엄했다. 이때 삼백 명에 달하는 부진의 기병대가 활짝 열린 대문을 나와 영수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는데 야간 순찰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강의 수로를 이용한 교통과 강변의 관도는 모두 철저히 차단되었다.

 

두 사람은 머리가 멍해져 한동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고 앞서 계획했던 잠입 작전은 완전히 쓸모없게 되었다.

 

연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와 탁발규가 암호로 정한 그 측백나무는 이미 목책의 한 기둥으로 변해버렸겠군."

 

유유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백만대군의 위력이로군. 우리라면 전군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한다 해도 열흘이상 걸려도 십여 리에 걸쳐 있는 목책의 방어선을 완성할 수는 없을 거요."

 

연비의 마음속으로 뭔가 느껴졌는지 물었다:

"내가 변황집을 떠난 지 겨우 3,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때 부견의 선봉군이 막 도착했었소. 백만 명의 대군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행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을까요?"

 

유유는 이마를 한 번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십오 일에서 이십 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식량과 군수품 등 여러 방면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을 테니 이삼십만 명 정도가 변황집 안으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상당히 빠른 편이오. 게다가 모든 인원을 공사 건설에 투입해야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규모의 목책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오. 만약 지금 내 수중에 수만 마리의 군마가 있다면 화전(火箭)으로 목책을 불태우고 상대방이 지칠 때를 틈타 기습을 가할 수 있으니 분명히 멋진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오."

 

연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융(苻融)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유유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눈에서 신광을 번득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목책 바깥쪽의 여러 산꼭대기 고지에 소규모 목책을 추가로 건설한다면 변황집의 방어력을 몇 배나 끌어올릴 수 있고 주채(主寨)를 금성탕지(金城湯池)처럼 공수에 유리하도록 만들어 변황집을 변황 내의 중요 거점으로 만들 수 있고 영수(穎水)를 통제하여 식량 보급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소. 만약 전방에서 패한다면 이곳으로 퇴각할 수도 있고 진군이 수양(壽陽)을 빼앗는다면 두 지역이 서로 호응할 수도 있으니 전략적으로 매우 고명한 한 수가 될 것이오."

 

연비는 문득 깨달았다. 백만 대군은 마치 자신도 수족을 지휘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과 같았지만 변황의 핵심에 거점을 설치하면 식량과 군수품을 저장하는 후방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방의 전투 상황을 보고 지원하거나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유는 갑자기 자신감에 넘쳐 말했다:

"만약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진나라 사람들은 현재 남쪽을 방어하는 목책 외곽과 하천을 막는 목책만 건설했을 뿐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토목공사를 크게 벌이고 있을 것이오. 우리가 앞쪽의 목책을 우회하기만 하면 다른 쪽으로 잠입할 수 있을 것이오."

 

연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자 유유는 깜짝 놀라 그를 따라 뒤쪽을 바라보았다. 언덕 아래 남쪽으로 뻗어있는 밀림이 달빛 아래에서 가지와 잎이 흔들리며 바람에 나부껴 소리를 내고 있을 뿐 별다른 상황은 없었다.

 

연비는 유유가 묻는 듯한 눈빛을 받자 말했다:

"아아 제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소. 누군가가 습격하는 줄 알았소."

 

유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쩌면 노순(盧循)이나 안옥청(安玉晴)일지도 모르오."

 

연비는 하늘을 살펴보았지만 걸복국인의 천안은 보이지 않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날이 밝겠소!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소. 형제여! 갑시다!"

 

  ※※※

 

사마원현은 사마도자의 크고 건장한 체형을 물려받아 용모가 영준했고 스무 살 가량의 나이로 젊고 유능한 인물의 표본이었고, 몸에 딱 맞게 재단된 화려한 무사복을 입고 있어 어떤 소녀라도 꿈에 그릴 만한 정인의 모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눈빛이 음침하고 거만해 보여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그의 발아래 짓밟혀야 한다는 태도로 호감을 갖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용맹하기만 하고 지략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도 뱃속 가득히 음흉한 심술을 품고 있었고 아버지처럼 야심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들을 발아래 짓밟으려 했으며 따르는 자들도 많았다. 이른바 '건강칠공자(建康七公子)' 라고 불렀다. 그는 그 칠공자의 우두머리로서 무리를 모아 당을 결성하고 강좌(江左)에서 횡포를 부렸다.

 

이때 그는 진회루의 주당(主堂) 안에 앉아 있었고 뒤에는 일곱, 여덟 명의 측근이 서 있었지만 표정은 무덤덤했고 진회루의 주인인 심 영감이 앞에 공손히 서서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아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방 안의 다른 손님들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고 즉시 자리를 뜨거나 다른 내원 상방(廂房)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송비풍이 주당으로 들어서자 사마원현과 그의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측근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고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송비풍은 표정이 평온했고 곧장 사마원현 앞으로 걸어가 예를 올린 후 담담하게 말했다:

"안공(安公)께서 비풍을 보내 천천 소저 대신 원현 공자의 선물을 받으라 하십니다."

 

사마원현은 두 눈에 노기를 띠었지만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현이 어찌 감히 안공을 폐를 끼치겠소만 원현이 직접 천천 소저에게 사죄하고 싶어 그러니 안공께서 편의를 봐주시어 천천 소저를 잠시 만나 뵐 수 있게 해 주시오."

 

송비풍은 겉으로는 전혀 마음속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사마도자가 사안을 만나도 감히 사안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사마원현은 신분과 지위가 훨씬 낮으면서도 사안에게 이렇듯 오만방자하게 구니 평소 모든 일에 담담하게 대처하던 사안이 진노할 만도 했다.

 

송비풍은 체면은 남이 세워주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즉시 표정의 동요 없이 말했다:

"안공께서는 선물을 비풍에게 건네 천천 소저에게 보내지 않겠다면 원현 공자께서는 사람과 선물을 모두 가지고 진회루를 떠나시라 하셨습니다."

 

사마원현은 얼굴색이 변했다. 평소 온화하고 점잖았던 사안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아직 발작을 일으킬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는데 뒤에 있던 측근 두 명이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며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라고 크게 소리치고는 검을 휘둘러 송비풍의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 옆에 서 있던 심 영감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사마원현이 아무리 아비의 위세를 믿고 있었어도 사안의 측근에게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말리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송비풍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이 칼집에서 번개처럼 뽑혀 나왔고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이 극도로 치솟아 사마원현의 눈앞에는 온통 차가운 검기가 가득했고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사마원현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모든 검기가 집중 공격하는 표적이 될 것임을 느꼈다.

 

이러한 검법은 실로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비록 송비풍과 그의 검에 대해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그가 출수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그의 실력을 알게 되었다.

 

참혹한 비명소리가 울리며 공격했던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고 두 자루의 장검은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는데 검은 여전히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손은 이미 손목에서 잘려나가 주인과 분리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했으며 피바다 속에 검을 쥐고 있는 두 개의 잘린 손은 보는 이들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챙!"

 

송비풍은 칼집에 검을 넣고 표정의 변화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사마원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안공의 명을 받은 일이니 비풍이 목숨을 잃는다 해도 반드시 최선을 다해 처리할 것이오."

 

사마원현은 수하들이 부상자 두 명을 위해 황급히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소리를 들으며 당장이라도 눈앞의 무서운 검수를 베어 육장(肉醬)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설령 무리를 지어 포위 공격한다 해도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아버지가 직접 나선다 해도 단신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보장이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분노에 차 소리쳤다:

"쓸모없는 것들! 가자!"

 

큰 걸음으로 걸어 나가다 갑자기 몸을 돌려 송비풍을 가리키며 말했다:

"송비풍! 기억해 둬라! 이 빚은 반드시 수백 수천 배로 갚아줄 것이다."

 

송비풍은 하하 웃으며 전혀 개의치 않고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사마원현과 수하들을 남겨두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

 

유유의 예상대로 변황집의 북쪽은 여전히 벌목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서쪽 외곽 목책은 반도 완성되지 않았다. 만약 공사가 완료되면 변황집을 포함한 대규모 목책은 영수 양안의 광대한 지역을 계획에 포함시킬 것이고 영수는 목책을 뚫고 남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변황집의 서남쪽, 영수의 동쪽 기슭에는 군영이 바다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상류에서 배들이 끊임없이 내려왔으며 변황집의 부두에는 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곳곳에 풍등과 횃불이 켜져 있어 변황집 안팎이 대낮처럼 밝았다.

 

수만 명의 황인(荒人)과 진병(秦兵)들이 부지런히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있었는데, 황인이란 원래 변황집 각 호방(胡幫)에 속했던 무리들을 가리켰다. 만약 그들이 밤낮으로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인들처럼 대거 도망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각 방회의 황인들은 당연히 평상시 입는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진병들도 갑옷을 벗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베어낸 목재를 동쪽에 한 더미, 서쪽에 한 더미씩 쌓아놓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해 설령 누군가가 그들 앞을 지나간다 해도 분명 신경 쓸 여유나 정신이 없었다.

 

유유와 연비는 근처 산비탈의 풀숲 안에 엎드려 상황을 살폈다.

 

벌목 현장은 비록 혼란스러웠지만 변황집의 동, 북장벽 바깥쪽은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고 장벽 꼭대기에는 모두 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영수 양안의 수비는 더욱 긴장감이 감돌았고 경비초소가 곳곳에 있었다.

 

유유가 골치 아파하며 말했다:

"큰 비가 내리면 좋을 텐데!"

 

연비가 말했다:

"유일한 방법은 영수 북쪽에서 잠수해 들어와 고언이 말한 비밀 도랑을 통해 변황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유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양안의 경비초소는 길이가 이 리나 되는 물길 양쪽에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가 물속에서 그렇게 오래 숨을 참을 수는 없소. 반 리 물길을 견딜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요."

 

연비가 말했다:

"유형은 수영을 잘 하시오?"

 

유유가 대답했다:

"조금 배워 보긴 했는데 연형은 죽관(竹管)으로 숨을 쉬는 수중 잠수를 생각해 보셨소? 제 등에 있는 봇짐 안에 동관(銅管) 두 개가 준비되어 있는데 너무 위험해서 말을 못했소."

 

연비가 놀라며 말했다:

"왜 두 개씩이나 준비하신 거요?"

 

유유가 말했다:

"제가 신중한 성격이라 다른 하나는 고언을 위해 준비한 것이오. 그리고 진병의 군복 두 벌도 준비해 적의 군영에 잠입하기 편하게 해 놓았고 방수포로 잘 싸서 물에 젖을 염려도 없소."

 

연비가 말했다:

"당신은 신중한 게 아니라 사려가 깊고 주도면밀한 거요. 보시요! 처리가 끝난 목재를 강기슭으로 운반하기 시작했소. 망루를 짓는 데 사용하려는 것 같은데 그중 하나의 목재 운반을 우리가 운반하는 건 어떻겠소? 어쩌면 강을 헤엄쳐 건너는 위험을 피하고 바로 비밀 도랑 입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오."

 

유유가 흔쾌히 말했다:

"우리도 좀 더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겠소. 그렇지 않으면 며칠 동안 밤낮으로 일했는데도 여전히 우리처럼 정신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벌목장으로 숨어들었다.

 

  ※※※

 

반 시진쯤 지나자 날이 밝았고 사현은 유뢰지와 수백 명의 친위병을 거느리고 관도 위를 빠르게 말을 달렸다. 그들은 연새(燕璽)를 호송해 온 군대와 방금 마주쳤고 사현이 직접 진짜임을 확인하자 이번 행차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번 전투는 진나라 황실에게는 승리해야지 패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지만 특히 사씨 가문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씨 가문이 힘들게 쌓아온 수대에 걸친 명성과 권위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나라가 개국한 이래 사씨 가문은 대대로 관직에 올랐지만 당시 다른 유명 가문과 비교하면 사씨 가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가문의 선조들은 이미 한나라 때부터 공이 높고 지위가 높았지만 그들 사씨 가문은 조위(曹魏) 때에 이르러서야 관직에 오른 사람이 나왔는데 그것도 둔전을 주관하는 전농중랑장(典農中郎將)으로 그리 혁혁한 지위가 아니었다. 진나라 초기 사현의 증조부인 사형(謝衡)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석유(碩儒)'라는 명성으로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어 가문을 위한 지위를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사 가문의 풍조를 연 사람은 여전히 사현의 조부 사곤(謝鯤)으로 꼽히는데, 그는 비록 큰 공을 세우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현담(玄談)에 능해 사씨 가문의 명사적 풍조를 그가 열어젖혔다고 할 수 있다.

 

사현의 두 어깨 위에는 진나라의 존망과 가문의 영쇠뿐만 아니라 왕씨와 사씨 두 집안을 필두로 한 오의호문(烏衣豪門)의 흥망성쇠도 걸려 있었다.

 

사안의 '시주풍류(詩酒風流)의 삶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또다시 사현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

 

먹구름이 밝은 달을 가리고 머리와 옷이 더러워진 유유와 연비는 나무를 운반하는 대열에 섞여 팔뚝보다 조금 굵고 길이가 두 장에 달하는 껍질을 벗긴 나무 하나를 함께 들어 올리고는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그늘을 찾아 천천히 변황집의 부두가 있는 영수의 동쪽 기슭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갑자기 나무 더미 뒤에서 한 황인이 나타나 손을 뻗어 길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멈춰라!"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낮은 모자 아래 진흙 투성이의 얼굴에서 밝고 아름다운 두 눈이 가을의 맑은 물처럼 반짝이며 자신들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득의양양한 표정이 가득했다.

 

평소 침착하던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런 제기랄 하고 소리쳤다.

 

이 사람은 안옥청(安玉晴) 대요녀(大妖女) 말고 또 누구란 말인가.

 

안옥청은 앞에 있는 연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경고했다:

"나무를 내려놓지 마. 태평옥패(太平玉珮)는 누구 몸에 있는지 빨리 사실대로 말해. 그렇지 않으면 간세(奸細)가 있다고 소리칠 거야."

 

연비가 그녀의 밝고 큰 눈을 바라보며 마음속의 떨림을 누르고 말했다:

"우리가 간세인 건 당연한데 아가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해봤자 아가씨에게도 조금도 좋을 게 없어요."

 

안옥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기껏해야 뿔뿔이 흩어져서 누가 더 빨리 뛰나 보는 거겠죠. 하지만 당신들이 귀신분장을 한 계획은 분명 물거품이 될 거예요. 흥! 난 한가하게 당신들과 쓸데없는 소리나 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물건을 내놔요."

 

유유는 속으로 한숨지었다. 지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힘없이 말했다: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소!"

 

주위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오직 그들만이 한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옆에 나무 더미가 있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안옥청이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마지막 기회를 주지. 소리 지를 거야!"

 

연비가 급히 말했다:

"우리는 옥패를 봤기 때문에 옥에 새겨진 도형을 외워 그릴 수 있소. 그저 산수의 형세일 뿐이오!"

 

유유도 혀를 놀리며 말했다:

"소저께서 부디 길을 내주시기만 하면 결코 식언하지 않겠소."

 

안옥청이 막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세 사람은 놀라 위를 바라보았고 호두만 한 크기의 작은 원형 물체가 그들 위로 날아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작은 원형 물체는 폭발하여 원근을 비추는 무지개빛 광채로 변하며 세 사람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간세가 있다!"

소리만 듣고도 소리친 자가 노순(盧循)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사방에서 말발굽 소리가 크게 울리며 세 개 부대의 순찰하던 진군이 그들을 향해 마치 늑대처럼 질주해 오고 있었다.

 

  (卷一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