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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진회지월(秦淮之月) 본문

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第十二章 진회지월(秦淮之月)

少秋 2024. 9. 16. 00:00

 

第十二章 秦淮之月

 

 

"아름다운 여인과 강산은 고요한 호수 위에 피어오르는 안개비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왕과 제후의 모든 야망과 업적은 모두 한판의 바둑판과 같구나."

 

송비풍(宋悲風)과 사안의 측근을 잘 아는 사람들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매번 사안이 진회루(秦淮樓) 안에서 가장 유명한 우평대(雨枰台)에 들어갈 때마다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이 대련(對聯)를 보며 감동하고 탄식했기 때문이다.

 

측근들 중에서 송비풍만이 사안을 이해했다. 그는 사안이 동산에 은거할 때부터 사안을 따르기 시작하여 사안의 심경 변화를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산수의 즐거움에 도취된 사안이 산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마음도 알고 있었다. 동산의 자연천지에서는 고요함과 소요, 고아한 심신의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 조정에서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과 매일 암암리에 생사를 건 싸움을 해야 하는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안은 이 대련을 보고 당연히 많은 감회가 일었던 것이다.

 

송비풍은 올해 마흔 다섯 살로 사부(謝府)의 방대한 가장단(家將團) 중 최고수였다. 그의 검법은 구품 고수의 아래가 아니었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구품 고수의 명단에 들지 못했다.

 

그와 같은 인재라면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즐길 수도 있었지만 사안이 그의 가문에 큰 은혜를 베풀었고 또 사안의 인품을 흠모하였기에 기꺼이 그의 호위 고수가 되었다.

 

여러 해 동안 각 파에서 자객을 보내 사안을 암살하려 했지만 결국 그의 관문을 넘지 못했으니, 송비풍 세 자는 건강(建康) 무림에서 매우 유명해 누구나 영웅호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비풍은 평생 검도에 뜻을 두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며 검소하고 고되게 생활하여 사안의 총애를 받았으며 아들이나 친구처럼 여겼다.

 

과연 사안은 가려다가 다시 멈추고 대련을 응시하며 소매를 떨치며 탄식했다:

"가을바람에 버들이 날리니 쇠락이 여기서 시작되는구나. 번화한 것도 결국에는 시들고, 집 안에는 가시나무가 자라는구나. 그 옛날 진시황과 한무제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황도(皇圖)와 패업(霸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송비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오늘 밤 걱정이 태산이신데 대전의 승패를 예측하지 못하셔서 그런 것입니까?"

 

사안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송비풍의 넓고 힘 있는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에 전에 없던 피로감을 드러내며 송비풍만이 들을 수 있는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방금 우리가 배를 타고 오면서 양쪽 기슭의 휘황찬란한 등불과 번화한 경치를 보았는데 그 뒤에 숨은 초췌함이 보여 비할 데 없는 고독함을 느꼈다. 비풍! 내가 늙은 것일까?"

 

송비풍은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영원히 늙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안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로환동(返老還童)하는 단약이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딩딩거리는 거문고 소리가 누대 위에서 전해져 왔다. 소리의 강약과 빠르기가 일정치 않고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천리 밖에서 배회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옷깃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변화무쌍하니 마치 진회하에 흐르는 강물과도 같았다.

 

사안은 잠시 조용히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착한 딸아이의 거문고 실력이 이미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된 경지에 이르렀으니 마치 조자룡이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듯 천군만마 가운데서 쉽게 적장을 잡는 것처럼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하는 구나. 만약 진회하 기슭에 기천천이 없다면 깊은 밤하늘에 밝은 달이 사라진 것처럼 천지에 다시는 색이 없을 것이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말을 마치고 앞장서서 누각으로 올라갔다.

 

  ※※※

 

성문이 열리고 환현의 말을 선두로 오백의 정예기병이 한바탕 바람처럼 달려 나와 강릉으로 가는 관도로 접어들었다.

 

일단 독한 결정을 내리자 환현의 이리 같은 야심은 산사태처럼 폭발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즉시 밤새워 강릉으로 달려갔다.

 

어려서부터 그가 가장 숭배한 사람은 아버지 환온(桓溫)이었다. 더욱이 그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를 하여 사마씨(司馬氏)를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분하고 억울하게 여겼다.

 

환온은 키가 크고 위엄이 있었으며 문무를 겸비하고 풍채가 웅장했으며 담력과 식견이 비범하여 먼저 서주자사(徐州刺史)에 봉해졌다가 이어서 안서장군(安西將軍), 형주자사(荊州刺史)에 봉해지고 형량(荊梁) 등 사천(四川)지역의 군사를 감독하게 되었다. 곧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강릉에서 출발하여 강을 거슬러 삼협을 지나 성도를 압박하니 약한 군사로 강한 당시의 촉한 대군을 대파하고 촉경(蜀境)을 소탕하였다. 이 전쟁으로 환온은 천하에 위엄을 떨쳤으며 북벌(北伐)의 장거를 진행할 결심을 하였다.

 

영화 십년 이월, 환온은 군사 사만을 거느리고 강릉에서 출발하여 당시 세력이 가장 강성했던 진주(秦主) 부건(苻健)을 토벌하기 위해 관중(關中)으로 직진하였다. 부건은 부견의 숙부로 매우 유능하여 대진(大秦)을 세우고 자칭 천왕대선우(天王大單于)라 하였다.

 

환온의 군사적 위세는 막을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관문을 통과하고 장수를 베었으며 상락(上洛)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청니(青泥)까지 진격하여 맞서 싸우는 진군을 대파하고 패상(灞上)에 진을 쳤다. 부건은 할 수 없이 깊은 도랑을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장안(長安)을 굳게 지켰다. 그리고 환온은 진(晉) 황실의 고의적인 난관에 부딪혀 군량의 보급이 이어지지 않아 부득불 군사를 돌려 양양(襄陽)으로 회군하였으니 북벌의 큰 계획은 이로 인해 폐기되었다. 이후 두 차례 더 북벌을 감행하였으나 모두 성과 없이 돌아왔다.

 

영화 12년, 환온은 시중(侍中), 대사마(大司馬)의 지위에 이르러 중앙과 지방의 모든 군사를 총괄 감독하고 조정을 독단적으로 장악하였으며 진의 황제 사마혁(司馬奕)을 폐위시키고 사마욱(司馬昱)을 제위에 앉혔다.

 

영강(寧康) 원년, 환온은 상소를 올려 '구석(九錫)'이라는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청하였는데, 이는 역대 권신들이 황제의 자리를 잇기 전에 받는 영광스러운 전례였으나 사안과 왕탄지 등이 전력으로 지연시켰고 오래지 않아 환온이 병사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환온이 죽은 후에도 남은 세력이 쇠하지 않아 환씨 일족은 여전히 귀하고 성하여 비할 데 없이 형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환온은 생전에 환현을 가장 총애하며 아꼈고, 환현은 환온이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한 큰 뜻을 대신 완성하려는 원대한 뜻을 품게 되었다.

 

사마씨의 천하는 장차 환씨에게 넘어갈 것이고 중원의 통일은 그 환현의 손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 누구도 환현을 막을 수 없으며, 길을 막는 자는 누구든 죽을 것이다.

 

  ※※※

 

우평대(雨枰台) 위에서 사안은 창에 몸을 기대고 손을 뒤로 하고 서서 누각 아래로 흐르는 진회하를 바라보았다. 양쪽 기슭의 휘황찬란한 등불 아래 물결이 반짝였다.

 

기천천의 거문고 소리가 뒤편에서 들려 왔는데,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자유로움과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어 마치 진회를 뒤덮은 짙은 안개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황금빛 달빛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경쾌하고 즐거운 듯하면서도 웃음 속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사안은 물론 마음이 무거웠지만 기천천도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거문고 소리가 매우 깊고 투명하여 청허(清虛)하게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정이 깊게 배어 있는 듯 여유롭게 흘러나왔다. 마치 진회하 위의 밤하늘을 묘사하는 것 같았고 밝은 달빛 아래 양안의 번화함과 초췌함을 함께 비추는 것 같았다.

 

사안은 마음을 열고 절세 미녀의 거문고 소리가 부드럽게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도록 하니 생각이 일렁이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산에서 다시 나온 후 누군가 그를 "은둔해 있을 때는 원지(遠志)가 되고, 나오면 작은 풀과 같다"고 비꼬았던 것을 기억했다. 이 비유는 일종의 약초에 비유한 것으로 땅 속에 있는 부분은 '원지'이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 '소초(小草)'라는 뜻으로 이를 통해 사안이 은거할 때는 뜻이 고원하였으나 조정에 나와서는 그저 평범한 소초에 불과한데 무슨 업적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고 풍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안은 당연히 웃어넘기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오늘 밤에는 이 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가 소초인지 원지인지를 증명해야 할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이번 전쟁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호언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음속에 천 근이 넘는 짐을 숨기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은 사석(謝石)과 사현(謝玄)이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는 전쟁의 최고 책임자이자 최후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계속해서 안정시키는 전략을 시행하고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마치 모든 것이 계산된 것처럼 사현, 사석은 물론 진나라 조정과 건강성의 군민들에게까지 이렇게 여기도록 감염시켜야 했다.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홍안의 지기이자 그가 수양딸로 삼은 기천천뿐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 밤 거문고 소리에 이제껏 없던 정회(情懷)를 담아내어 그를 깊이 감동시켰다.

 

"쟁! 쟁! 쟁! 쟁!"

 

거문고 소리가 갑자기 바뀌며 힘이 넘치고 웅장하며 비장한 분위기로 바뀌어 마치 천군만마가 전쟁터를 겹겹이 에워싸고 공격의 북을 울리는 듯 했고 기천천이 노래를 했다.

"변방 지역에는 위급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오랑캐 기병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네.

북쪽에서 급한 보고가 날아오고, 말에 채찍질을 하여 성벽에 오르네.

멀리 흉노족을 향해 진군하고, 왼쪽을 돌아보며 선비를 능멸하네.

몸을 칼날 끝에 내맡기니, 목숨을 어찌 품을 수 있으랴?

부모도 돌아보지 않거늘, 어찌 자식과 아내를 말하랴?

이름은 병사의 명부에 올랐으니, 사사로운 정을 돌보지 않으리.

몸을 던져 국난에 뛰어드니, 죽음을 가벼이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겠노라!"

 

몇 번 더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중현음(重弦音)을 타다가 거문고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지만 여운이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부른 것은 삼국시대 조식(曹植)의 명시인 《백마편(白馬篇)》으로 무예가 뛰어나고 열정적인 유협(遊俠) 소년을 짙은 묵중한 색채로 그려내 이수의 비가를 연상케 하는 비장한 여운이 남아 있으며 병사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호방한 기개를 가득 담고 있다. 기천천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열정적으로 노래하니 선명한 광경 속에서도 곳곳에 격정의 복선이 숨어 있어 슬프지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리고 장렬한 정경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하니 유난히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과 진해서 녹지 않는 것이 있어 가벼운 것을 무겁게 다루는 정회가 있었다.

 

사안은 감동하여 몸을 돌려 말했다:

"잘 불렀다!"

 

우아하게 꾸며진 넓은 방 안에서 기천천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앉아 있었고 가냘프고 아름다운 옥수(玉手)는 여전히 거문고 줄을 누르고 있었고 밝고 아름다우면서도 야성미가 있는 한 쌍의 눈동자는 마치 깊고 검은 바다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그를 향해 반짝이며 끝없이 흐느끼는 듯 방금 전 거문고 연주에 깊이 빠져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우시네요! 왜 우시는 거예요?"

 

사안은 매번 진회 제일의 재녀로 불리는 이 여인을 만날 때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의 경탄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이는 남녀의 사사로운 욕망과는 무관하며 명산승경(名山勝景)을 진심으로 감상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타고난 절세미모와 수려한 용모 외에도 기천천의 영특하고 재기 넘치는 성격은 사람을 더욱 빠져들게 했다. 그녀는 결코 남자의 보호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며 사실 그녀는 대다수의 수염 난 남자들보다 더 강인했고 천성적으로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고집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거문고는 물론 강좌(江左)에 이름을 떨쳤고 그녀의 검(劍) 또한 매우 유명했다. 건강 도성의 권귀들은 그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했지만 그 아가씨의 기분을 봐야만 했다.

 

이 두려움을 모르는 미녀는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까마귀 깃털처럼 검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깊고 길며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옥 같은 피부는 눈보다 희고 걸음마다 자태가 다양하여 열정적이고 활기찰 수도 있고 얼음처럼 차가울 수도 있었다. 사안은 은근히 그녀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진회 제일의 명기로서 예술을 팔지 몸을 팔지 않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어떤 놀라운 인물이나 사건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방에는 그들 둘 뿐이었고 흐르는 강물 소리를 부드럽게 들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천천은 자신의 경국지색의 자태를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귀족적인 곧은 콧날은 어떤 남자라도 부끄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었으며 적당히 풍만하고 붉은 입술은 흠모하는 사람의 넋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그녀가 경쾌하고 힘 있는 걸음걸이로 걸을 때면 그녀의 늘씬한 몸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자유로운 필치를 느끼게 하였고 그녀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오른쪽 여밈의 넓은 소매 옷에 살구색 긴 치마를 입고 허리에는 흰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높은 쪽을 맸으며 분을 바르거나 장식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타고난 미태는 이미 많은 미녀들을 오시(傲視)하며 속세를 초월한 듯한 기품을 풍겼다.

 

사안은 그녀의 거문고가 놓인 자리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앉았고 그녀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태평성대의 음악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정사가 조화롭고; 난세의 음악은 원망과 분노가 가득하니 정사가 어그러지고; 망국의 음악은 슬프고 생각에 잠기게 하니 백성이 곤궁하다. 이러한 말들은 그저 고루한 유생의 편협한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곡조와 음악은 그저 감정이 움직여 나오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너 천천(千千)의 거문고 소리와 노래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품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밝은 달이 비추는 진회하처럼 거문고 소리와 노래 소리가 이끌어낸 벅찬 감정은 강물처럼 부드러운 가운데 격렬함을 숨기고 있어 번화한 양쪽 기슭을 때리는 파도처럼 그 여운은 강물 위에 비친 달빛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기천천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일어나 사안에게 술잔을 건네며 먹구름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햇살처럼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말했다:

"(의붓)아버님 말씀은 정말 듣기 좋네요. 우리 세상의 모든 번뇌를 잊어요. 천천이 아버님께 한잔 올릴게요."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 함께 술을 마셨다.

 

사안은 하하 웃으며 잔을 내려놓고 흔쾌히 말했다:

"나는 늘 천하에 내 착한 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궁금했단다."

 

기천천이 사안을 흘겨보며 투정을 부렸다.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에 사안의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적어도 아버님은 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잖아요! 천천을 그렇게 오르기 힘든 사람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사안은 아연실소(啞然失笑)하며 말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이 아비가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천천의 붉은 치마 아래에서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맛을 놓치지 않았을 게다. 건강성 안에서 천천에게 미쳐 날뛰는 많은 공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천천의 눈에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듣자 하니 사마원현(司馬元顯)이라는 놈이 어제 저자거리에서 천천에게 치근덕거리다 결국 망신을 당하고 건강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하더구나."

 

사마원현은 사마도자(司馬道子)의 장자로 사마도자의 진전을 얻어 자신의 검술에 자부하며 가세가 훌륭하였고 건강에서 도당을 결성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횡포를 부려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기천천은 예쁜 얼굴에 경멸하는 빛을 띠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버님께서 천천을 관심 있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이 사람의 이름이 우리의 오늘 밤 흥을 깨지 않도록 해주세요."

 

사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사람을 시켜 사마도자에게 전갈을 보내 아들을 단속하여 나 사안의 착한 딸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해야겠구나."

 

기천천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사안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천천아, 무슨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는 게냐?"

 

기천천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천천은 걱정하고 있어요! 아버님께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천천의 일에 개입하신 적이 없어서 여식은 일이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어요."

 

사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법이다. 수년 동안 이 의부는 황제와 노자의 도를 신봉하며 조용히 살면서 겸손하게 스스로를 지켜왔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지금은 군정 대권을 한 손에 쥐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번성하면 쇠퇴하기 마련이라 이제는 빛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직 능력이 있을 때 천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자 할 뿐이다!"

 

기천천은 교구(嬌軀)를 살짝 떨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께서 여식에게 암시를 주시는 건가요?"

 

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 패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이 끝이지만 만약 요행히 승리한다면 건강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될 것이다. 나에게나 너에게나 마찬가지지. 지난날 이 아비가 동산(東山)을 떠나 조정에 출사하면서 예속의 구애를 받지 않던 산림의 생활을 버린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권좌의 정점에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구나. 가문의 영고성쇠를 위해서 말이다."

 

기천천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숭모(崇慕)의 빛을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시니 비범한 지혜를 가지고 계시겠죠. 천천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절대 흘려듣지 않겠습니다."

 

사안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감히 우리 사씨 집안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사현이 살아있는 한 누가 대담하게 우리 사씨 집안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아비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너 착한 딸이다."

 

기천천은 두 눈이 약간 붉어지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버님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버님께서 건강을 떠나시는 날이 바로 여식이 길을 떠나는 때이니 아버님이 안 계시면 건강에는 더 이상 여식이 미련을 둘 곳이 없습니다."

 

사안의 말투는 마치 유언을 하는 듯하여 그녀의 마음을 약간 떨리게 하고 매우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대진(大晉)이 남천(南遷)한 후 왕도(王導)와 사안이라는 두 명의 현신(賢臣)이 서로 번갈아가며 빛을 발하며 대진을 잠시나마 안정된 국면으로 이끌었지만 그 사이 왕돈(王敦)의 난과 소준(蘇峻)의 난이 일어나 건강을 함락시키는 등 큰 재난을 초래하였고 난은 비록 평정되었지만 진 황실은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다. 사안이 은둔 생활을 포기하고 조정에 나와 정치를 주도함으로써 진나라가 전례 없이 상하가 한마음으로 단결하는 국면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흥왕한 상황은 부견의 대군이 남하하면서 진 황실이 권신과 대장군을 의심하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사안은 최근 수백 년 동안 보기 드물게 멀리 내다보는 명재상으로 부견의 군대가 남하할 것을 예견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승패에 따른 형세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여 기대도 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기천천은 그의 마음속 고민을 사현(謝玄)이나 사석(謝石)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가 대진(大晉)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과 비애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께서 동산에서 다시 나오신 일에 대해 후회하시나요?"

 

사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 말을 감히 내게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구나. 내가 후회하느냐고?"

 

그는 두 눈에 망연자실하고 약간 실망한 듯한 기색을 띠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말없이 전해졌다.

 

사안이 말했듯이 그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당시 그의 당형제인 사상(謝尚)과 사혁(謝奕)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친동생 사만(謝萬)은 전쟁에서 패하여 서인(庶人)으로 폐해졌으며 사석(謝石)의 권위는 여전히 낮았고 게다가 그의 재능으로는 큰 업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기에, 만약 그가 사씨 집안을 대표하여 출사(出仕)하지 않는다면 사씨 가문은 후계자가 없어 쇠문(衰門)으로 전락할 것이었고 사씨 가문의 영욕과 성쇠를 위해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천천은 가볍게 말했다:

"여식이 한 곡 연주하여 아버님의 답답함을 풀어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사안이 좋다고 말하려던 참이었고 술도 더 마시고 싶었는데 송비풍의 목소리가 문 입구에서 들려왔다:

"대인께 아룁니다. 사마원현(司馬元顯)이 천천 아가씨 뵙기를 청합니다."

 

기천천은 눈썹을 찡그렸고 사안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그자는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모르는가?"

 

송비풍이 말했다:

"심(沈) 대인께서 이미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원현 공자께서는 여전히 선물을 직접 천천 아가씨에게 드리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십니다. 사죄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자가 사죄의 선물을 두고 가지 않겠다면 사람과 선물을 모두 함께 쫓아내라고 하게. 비풍 자네는 내 말을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그대로 전하고 그 외의 일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되 그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되네."

 

송비풍은 말없이 명령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