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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武俠小說)/홍분간과(紅粉干戈) - 司馬翎

第五十九章 무공극한(武功極限)

 

第五十九章 武功極限

 

 

다음 날, 두 여인은 그에게 더욱 불만을 품은 듯했다. 그녀들은 당연히 여걸이 멀리 떠나고, 자신들만이 온전히 왕원도를 시중들기를 바랐다.

 

그리고 저녁에 한가한 시간이 되면, 그녀들은 왕원도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점차 여걸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되었고, 늘 그를 매우 냉담하고 무례하게 대했다.

 

예를 들어 그녀들이 바둑을 둘 때, 바둑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여걸 쪽으로 굴러갔다. 여걸이 그것을 주워 주면, 그녀들은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바둑돌을 그 자리에서 뜰 안으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여걸이 주워 주지 않으면, 그녀들은 차갑게 비꼬며 "남들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일찍 떠나는 것도 좋겠지요" 같은 말을 했다.

 

이것은 젊고 풍채가 좋은 여걸을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뜨렸다. 사실 그는 두 여인이 정말로 떠나 버릴까 봐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장교 진인에게 문책을 당할 뿐 아니라, 왕원도에게도 설명하기가 난처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두 여인은 각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없이 훌륭한 조력자였다.

 

그날은 그래도 가까스로 견뎌 냈지만, 셋째 날과 넷째 날에는 상황이 더욱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여걸은 함정에 빠진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왕원도가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눈치 채게 할 수도 없었다. 첫째는 왕원도가 무공을 수련할 때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왕원도가 두 여인과 관계를 완전히 끊도록 몰아가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원래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여걸이, 이제는 틈바구니에 끼어, 칼에 베이거나 검에 찔리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가장 맥 빠지게 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해 도무지 저항하거나 개선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이처럼 생기 넘치고 활기찬 젊은 협객을, 기운이 완전히 빠진 사람처럼 만들어 놓았으며, 또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처럼 만들어 놓아, 그는 번번이 아무 이유 없이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여걸에게 이것은 실로 인생 경험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여걸은 그녀들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속에서 시시각각 그녀들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지닌 모든 아름다운 점을 더욱 분명하고, 깊이 알아보게 되었다. 그는 비록 자신에게 연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억누르고 있었지만, 때때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나 자기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들이, 어째서 자신을 이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설마 나 여걸이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가 두 여인에게서 받은 분부를, 지금까지 감히 어긴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두 여인과 충돌을 일으켜, 그녀들이 화가 나서 떠나 버리게 될까 봐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습관이 자연스러워졌고, 두 여인이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킬 때면, 그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어떤 때는 그에게 먹을 것을 무엇인가 가져오라고 하고, 어떤 때는 뜰에 가서 꽃에 물을 주라고 하며, 어떤 때는 무엇인가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시켰다. 그런 일이 습관이 되고 나자, 여걸은 뜻밖에도 백요금과 갈취취의 곁에서 시중드는 하인처럼 되어,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저 미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뿐이라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갈취취는 종종 독교의 절묘한 비술을 발휘하여, 여걸에게 많은 고생을 안겨 주었다. 예를 들어 물건을 가지러 밖에 나갈 때, 한쪽 발이 문지방을 막 넘어서는 순간, 곧바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또는 꽃에 물을 주러 갈 때, 물뿌리개의 손잡이에 막 손을 대기만 하면, 즉시 온몸이 시큰거리면서 가려워져, 극도로 괴로웠다. 두 여인은 그가 근심으로 찡그린 얼굴을 보면서, 오히려 서로 뜻이 통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이날 저녁 식사 후, 왕원도와 여걸, 백요금과 갈취취, 이렇게 두 남자와 두 여인이 대청에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중에서 이 짧은 시간에만 여걸은 비로소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두 여인의 음모와 계략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고, 거리낌 없이 그녀들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말소리, 그리고 아름답고 고운 미소를 감상할 수도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무공을 수련한 상황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자, 왕원도는 눈썹 사이에 한 줄기 근심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순백업은 수십 년 동안 정성을 다해 수련하고 고된 훈련을 해 왔으니, 그의 공력 수준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무당산에서 그와 격투를 벌인 뒤, 그의 잠재력이 매우 강하며, 저보다 한 수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발법(鈸法)은 기묘하고 오묘하기가 비할 데 없습니다. 제가 고된 수련을 통해 크게 진전한다 하더라도, 막상 한판 겨루게 되면, 여전히 이길 가능성은 없고 패배할 형세가 될까 두렵습니다."

 

여걸은 가슴을 쭉 펴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 형님 말씀은 잘못되었습니다. 형님께서 반드시 패배한다고 굳게 믿으신다면, 심리적으로만 해도 이미 상대에게 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리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두 여인은 모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왕원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 형의 뜻은, 제게 굴하지 않는 투지를 불러일으키라는 것이겠지요. 그 마음은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강인한 투지라도,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야, 비로소 훌륭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쪽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투지가 강한 쪽이 이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순백업은 다른 적수들과는 다릅니다. 그의 투지는 결코 누구보다 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면에서 그를 이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두 여인은 또다시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왕원도가 또 말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상대방의 공력이 얼마나 강하고 약한지 살펴보는 것도 그저 자신과 적을 알려는 뜻일 뿐이지, 결코 기가 꺾이거나,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왕원도가 여전히 깊이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백요금이 말했다:

"맞아요. 전장에 나가 맞붙어 싸우려면 당연히 자신과 적을 알아야지요. 여걸의 견해는, 그저 필부의 만용에 불과할 뿐이어서, 사람들을 매우 우습게 여기게 합니다."

 

여걸은 당연히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내가 왕 형님을 격려하는 말을 했을 때는, 당신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지 않았던가?’

 

왕원도는 잠시 생각한 뒤, 또 말했다:

"사실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 만약 제게 3년의 시간을 준다면, 순백업은 틀림없이 더 이상 저를 이길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여걸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왕 형님께서 단지 상대와 생사를 건 한판 승부를 벌일 기회만 얻으려 하신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된 수련을 해야 합니까?"

 

왕원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 년 정도는 필요합니다."

 

여걸이 말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사실 금방 지나갑니다. 왕 형님께서는 어찌 방법을 강구하여 승부를 일 년 뒤로 미룬 다음, 그때 순백업과 마음껏 한판 겨루지 않으십니까?"

 

갈취취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순백업이 바보도 아닌데, 원도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어요? 그러니 그자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문제를 일으킨다면 틀림없이 앞으로 서너 달에서 다섯 달 사이일 거예요."

 

여걸이 말했다:

"왕 형님께서는 몸을 숨기실 수 있으니, 지금처럼 이곳에 숨어서 무공을 수련하시다가, 일 년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백요금은 갑자기 여걸에게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혼례는 팔 월 초하루에 거행하기로 되어 있는데, 설마 그날 신랑 노릇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녀들은 혼례를 떠올리자,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고, 여린 마음이 끊어질 듯했다. 이 때문에 여걸이 그녀들로 하여금 그 일을 생각하고 입에 올리도록 몰아간 것은, 실로 그녀들을 고통스럽고 분하게 만들었다.

 

여걸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확실히 두 여인을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들이 그 분노를 자기에게 돌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괜히 문제를 일으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의 대화는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날 백요금과 갈취취 두 여인은 여걸에게 유난히 원한을 품고, 온갖 궁리를 다해 그를 괴롭혔다. 그 때문에 여걸은 속으로 연달아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피할 곳조차 없었다.

 

알고 보면 백요금과 갈취취 두 여인은 여걸이 자신들의 울분을 풀어낼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뒤, 그가 오랫동안 멀리 떠나 주겠다고 하지 않는 한, 오히려 줄곧 그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날 밤, 여걸은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밖에 나가 잠시 한 바퀴 돌아본 뒤, 대청으로 돌아왔다. 보니 백요금과 갈취취 두 여인은 마침 바둑돌을 늘어놓고 바둑을 두려던 참이었다.

 

그는 다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낭자들은, 바둑은 두지 마십시오!"

이것은 여러 날 동안, 그가 처음으로 보여 준 대담한 태도였다.

 

백요금과 갈취취 두 여인은 모두 크게 놀라, 고개를 들어 키가 크고 옥처럼 반듯하게 서 있는 이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여걸이 말했다:

"제가 방금 소식을 입수했는데, 밖에서 도관 안으로 전해진 소식입니다. 일원교가 이미 대규모 수색을 시작했고, 이 지역 가까이까지 다가왔다고 합니다."

 

두 여인은 갑자기, 이 젊은 검객이 외모도 준수하고, 풍채와 태도도 훌륭하며, 말솜씨까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인상이 갑자기 완전히 바뀌었다.

 

두 여인은 모두 눈을 고정한 채 이 젊은 검객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정말 모르겠네. 요 며칠 동안 줄곧 이 사람이 몹시 밉고 싫어서, 언제라도 발로 차서 쫓아 버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사실 그는 꽤 잘생겼고, 제법 멋있고 영리하기도 한데, 어찌 밉고 싫은 사람이겠는가?’

 

이때 여걸은, 두 여인의 시선이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압박하며, 줄곧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내려 피해 버릴 수도 없었다.

 

일이 긴급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는 일부러 눈썹을 한 번 찌푸린 다음 말했다:

"두 분 낭자들께서는 제 말을 들으셨습니까?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릴까요?"

 

갈취취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들었어요. 우리가 귀머거리도 아닌데요. 참 이상하네요, 요금, 내가 한 가지 이야기해 줄게요."

 

그녀는 백요금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갑자기 여걸이 밉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했다.

 

백요금도 매우 놀라며 외쳤다:

"정말 너무 이상하네요. 저도 똑같이 느끼고 있어요! 저는 지금 그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참이에요."

 

갈취취가 말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요. 지금은 적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의논하는 편이 좋겠어요."

 

여걸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의문이 가득했다. 두 여인이 무슨 일 때문에 이토록 호들갑을 떠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갈취취가 또 말했다:

"만약 적이 이곳까지 수색해 온다면, 십중팔구 당신들 무당파의 배신자가 이 비밀 근거지를 알려 준 것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일단 힘껏 막아 내는 수밖에 없어요. 왕원도가 그날의 수련을 마치기만 하면, 그도 나서서 적과 맞설 수 있으니, 그다지 두려워할 일도 아니에요."

 

백요금이 말했다:

"하지만 적이 침입할 때 마침 왕원도가 가장 중요한 고비에 처해 있다면, 우리가 적을 막아 내지 못할 경우 정말 무서운 일이 되지 않겠어요?"

 

갈취취가 말했다: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걸에게 있는 것이지요."

 

여걸은 몹시 이상하게 여겨 말했다:

"어째서 그 책임이 제게 있다는 말씀입니까?"

 

갈취취가 말했다:

"이곳은 귀파의 중요한 비밀 거점 가운데 하나이니, 당연히 경계를 엄중히 하고, 적절한 배치를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적이 침입하기 전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일찍 알기만 한다면, 적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저는 그들을 반나절 이상 막아 낼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이 갑자기 이곳에 이미 침입해 버린다면, 저는 미처 방비를 갖출 시간이 없으므로 당연히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당신이 적의 종적을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하여, 우리가 방비를 마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이러니 그 책임이 당신 한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걸은 할 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적의 종적을 살피고,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경보를 울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는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온 힘을 다해 정찰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 낭자 곁에 늘 함께 있을 수는 없게 됩니다."

 

백요금은 성격이 비교적 솔직했으므로, 서둘러 말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우리가 어찌 당신에게 늘 우리 곁에 있으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갈취취는 잠시 생각하더니, 냉소하며 말했다:

"요금아, 이 녀석은 십중팔구 못된 꾀를 부리고 있는 거야. 틀림없이 우리에게 시달려 더는 도망칠 곳도 없게 되자, 우리에게서 벗어나려고, 이런 계책을 생각해 낸 거야."

 

백요금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설마 그럴까요? 이 녀석은 아주 성실해서, 이런 거짓 정보를 꾸며 우리를 속일 배짱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갈취취가 말했다:

"이걸 궁지에 몰린 개가 담장을 뛰어넘는다고 하는 거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야. 내가 방법을 찾아 조사해 봐야겠어. 이 녀석이 나를 속였다면, 반드시 그를 석 달 넘게 침상에 누워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벌을 줄 거야. 내가 그를 석 달 동안 꼼짝 못 하게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독주라고 불리지 않겠어."

 

백요금은 문득 그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여걸이 설령 정보를 꾸며 냈다 하더라도, 그 사정은 딱하니, 굳이 석 달이나 큰 병을 앓게 할 필요는 없어.' 백요금은 일부러 몹시 찬성하는 듯한 모습을 꾸몄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이 속임수를 썼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 일은 중대해요. 왕원도의 생사와 안위가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 그러니 동생은 언니에게 당분간 여걸의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만일에 대비해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갈취취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기고, 곧바로 여러 가지 독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독교에 비전으로 전해지는 절기를 펼쳐, 누구든 관문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백요금은 잠시 기다렸다가, 갈취취가 바쁘게 일하는 틈을 타서, 말했다:

"취 언니, 조심해서 준비하세요. 동생은 몰래 나가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 여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볼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조용히 사방을 살펴보았다.

 

문득 한 뜰에서, 여걸이 구석의 태사의자에 아주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손에는 향긋한 차 한 잔을 들고, 여유롭게 음미하고 있었다.

 

백요금은 차갑게 웃으며 가볍게 몸을 날려 땅에 내려선 뒤, 발소리를 죽이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 이르자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주 편안하시네요!"

 

여걸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올랐고, 찻물이 온몸에 쏟아져, 몹시 낭패스러운 꼴이 되었다. 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저는…… 저는……"

 

문득 백요금이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서야, 여걸은 조금 마음을 진정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갈 낭자는 어디 있습니까?"

 

백요금은 웃음을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여걸은 또 크게 놀라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절대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백요금이 말했다:

"아, 그렇다면 적이 와서 '우리가 왔다'고 알려 주기를 기다렸다가, 그다음 당신이 우리에게 와서, 알려 주려는 거군요. 맞죠?"

 

여걸은 그녀의 비아냥거림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생긴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가 했다.

 

백요금은 얼굴을 굳히고, 목소리를 차갑게 바꾸어, 말했다:

"나와 함께 취 언니를 만나러 가요. 언니는 당신이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 우리를 속인 것이라고 단정하고, 반드시 당신에게 한 번 벌을 주겠다고 이미 맹세했어요. 언니가 당신을 어떻게 손볼 생각인지 짐작이나 하겠어요?"

 

여걸은 놀라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갈 낭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는 죽어도 짐작할 수 없습니다. 백 낭자께서 제발 선처하시어, 제게 알려 주십시오!"

 

백요금이 말했다:

"알려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쨌든 그녀는 독교의 고수이고, 지금까지 한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요. 당신이 하늘 끝이나 바다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결국 그녀에게 붙잡힐 거예요. 그녀는 당신이 석 달 동안 큰 병을 앓으며, 침상에서 몸부림치고 신음하게 만들겠다고 했어요."

물론 이 말에는 과장이 조금 보태져 있었고, 과연 여걸은 너무 놀라 멍하니 굳어 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요금은 속으로 몹시 안쓰러워하며, 곧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요? 무슨 묘책이라도 없나요?"

 

여걸은 멍하니 고개를 젓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게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백요금이 말했다:

"정말 두렵다면, 그럴듯하게 일이 있는 척해야 해요. 그녀가 허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세요. 만약 그녀에게 들통나면, 저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여걸은 자기 귀를 믿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다시 멍해졌다.

 

백요금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처럼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빨리 준비하지 그래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나와서 살펴볼 때는, 이미 늦을 거예요."

 

여걸은 그녀를 무한한 감사의 눈길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떠났다. 그런데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요금은 그의 눈에 감사와 연모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고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천천히 돌아갔다.

 

그녀가 두 개의 뜰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사람 그림자 하나를 보았는데, 마침 담 모퉁이로 꺾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얼핏 보고서도, 그 사람이 도관 안에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고 단정했다. 곧 두 발로 땅을 가볍게 딛고, 옆 건물 쪽으로 날아오르듯 뛰어가, 대청 안으로 달려 들어가, 구석에 있는 비단 끈 하나를 잡아당겼다.

 

각 뜰과 대청에는, 모두 이런 경보 장치가 있었는데, 비단 끈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갈취취가 있는 쪽의 경종이 즉시 울렸다. 갈취취는 경종 소리를 듣고 속으로 외쳤다:

'정말 대단한 적이로구나. 부디 순백업만은 아니기를!'

생각을 굴리는 사이, 그녀는 이미 달려 나가 가장 강력한 진세를 펼쳐 놓았다.

 

그녀가 설치해 놓은 여러 독물 가운데, 상당수는 시간에 따라 효력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너무 일찍 설치해 두면, 약물이 바람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독성이 점차 사라지므로, 당연히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녀가 여걸에게 좀 더 일찍 알려 달라고 한 이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뜰 문 밖에 생김새가 몹시 추한 노인이 나타나, 머리를 내밀었다 들이밀었다 하며 뜰 안을 살펴보았다.

 

갈취취는 숨은 곳에서 엿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노인의 추한 몰골을 보자마자,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 노인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두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상하군? 여기에 분명 독교 사람이 있을 텐데. 이봐! 누가 여기다 온갖 독을 설치해 놓았느냐? 어서 기어 나와라. 이 늙은이가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

 

갈취취는 아직 처녀의 몸이었으니, 상대의 이런 모욕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녀는 분노하여 이를 연거푸 악물고, 희고 고운 두 손바닥을 재빨리 몇 차례 비볐다. 그러자 즉시 기이한 향기가 한바탕 퍼져 나왔다.

 

이 기이한 향기는 순식간에 넓은 범위로 퍼져 나갔다. 추한 노인은 힘껏 몇 차례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아! 향기가 참 좋구나. 다른 재주도 있으면, 전부 꺼내서 보여 주겠느냐?"

 

갈취취는 이 독향으로도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경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이 늙은 마두의 공력이 지극히 깊고도 높구나. 그래도 순백업은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 순 씨가 왔다면, 아마 강제로 안으로 쳐들어왔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순간, 그 추한 노인은 아마도 아무도 나와 응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쪽 발을 들어 올려, 넘어 들어오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한 걸음 넘어 들어오기만 하면, 즉시 온갖 기이한 독 속에 빠지게 된다. 순백업 같은 당대의 고수라 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무사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이었다.

 

그런데 그 추한 노인은 일부러 괴상한 짓을 했다. 한쪽 발을 내디딜 듯 말 듯 하여, 갈취취는 공연히 긴장되어 이를 갈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침착함을 유지하며 기다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추한 노인은 한동안 장난스럽게 수작을 부리다가, 그제야 정말로 걸음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곧장 뜰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심지어 뜰 안에 독물을 매복시켜 놓은 곳을, 몇 차례나 오갔다.

 

이어서 그는 눈길을 돌려 갈취취가 숨어 있는 기둥 뒤를 바라보았다. 얼굴빛이 차갑게 가라앉은 채, 냉랭하게 말했다:

"이 늙은이는 평생 다른 취미는 없고, 오직 여색을 좋아하는 이 버릇만은 도무지 고치지 못한다. 기둥 뒤에 있는 자가, 남자라면, 반드시 한 손바닥에 때려죽이겠다. 여자라 해도, 나이가 많고 못생긴 자라면, 예외 없이 때려죽일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어서 기어 나와라!"

 

갈취취는 어찌 된 일인지, 뜻밖에도 그의 말이 한 자 한 자 모두 진실하고, 조금도 거짓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순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멍하니 있는 사이, 그 추한 노인은 다시 냉랭하게 말했다:

"이 늙은이는 마교 장로의 신분을 지닌 사람으로, 언제나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네가 젊고 아름답게 생겼다면, 얌전히 내 말을 따르며, 나를 기쁘게 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네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왕원도의 하찮은 목숨도 구할 수 있다."

 

갈취취는 마지막 말을 듣자, 갑자기 용기가 솟아나, 가느다란 몸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걸어 나가, 말했다:

"내가 나왔어요. 이제 마음대로 해 보세요!"

 

추한 노인은 두 눈을 가늘게 떴는데, 이미 부어 있던 두 눈이, 더욱 퉁퉁 부어 보기 흉해졌다. 그는 갈취취를 한동안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안 되겠다. 너무 어려. 이 늙은이는 원래 이렇게 풋풋하고 어린 계집애는 좋아하지 않는다."

 

갈취취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이미 꽃다운 나이에 이른 사람인데, 어찌 어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추한 노인이 말했다:

"꽃다운 나이라고? 그렇다면 스물네 살이라는 말이냐? 아니야! 아니야! 너는 많아 봐야 스물한 살을 넘지 않겠구나. 하지만 설령 스물네 살이라 해도, 여전히 너무 어려. 이 늙은이가 보기에는, 마흔 살쯤 되어야 비로소 젊은 사람이고, 스무 살 남짓한 사람은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네가 아직 처녀라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이 늙은이가 감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

 

갈취취는 불복하여 맞받아 말했다:

"웃기는 소리! 여자가 마흔 살이 되면, 이미 시든 꽃이나 다름없어요. 더구나 노정(爐鼎)으로 쓰이는 사람은, 언제나 동남동녀라야 적합한 법인데, 당신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요."

 

추한 노인은 입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군? 네가 정말 이 늙은이를 모시고 싶은 것이냐? 네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나도 억지로 한 번 받아 주도록 하지."

 

갈취취는 화를 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독주 갈취취처럼 뛰어난 인물을 두고도 억지로 받아 준다고 하는 건가요?"

 

추한 노인은 눈꺼풀을 치켜뜨고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두 눈에서 흉악한 살기를 뿜어내며, 냉랭하게 말했다:

"노부는 애초에 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흐흐! 먼저 왕원도를 죽여 놓고, 그다음에 이 건방진 계집애를 천천히 손봐주겠다."

 

그가 몸을 한 번 흔들자, 어느새 계단 위에 도달해 있었다. 정말로 두 무릎을 굽히지도 않고, 발에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았으며, 그 속도는 번개보다 빨랐다.

 

이처럼 극히 고차원적인 위치 이동의 무공을 보고, 갈취취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본랜는 아직 만분의 일이라도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단지 기이한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어, 온갖 독에 견딜 수 있는 것뿐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절정의 무공을 드러냈으니, 그야말로 금강불괴의 몸을 이미 수련해 냈음이 분명했다. 정말로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추한 노인은 갑자기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네 지원군이 서둘러 오고 있구나. 하지만 네가 독물과 매복을 거두고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때쯤이면, 그들은 왕원도의 시신을 거두러 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인영이 번쩍하더니, 벌써 방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문을 누르자, 이미 빗장이 걸려 있던 방문이 손길에 따라 열렸는데, 놀랍게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역시 신화와도 같은 절세의 기공이었다. 알고 보니 이 노인의 장력은, 칼이나 검처럼 날카롭고 예리한 경지에 이른 듯했다. 그러므로 손바닥을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장력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소리도 없이 빗장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공력의 경지는, 당연히 순백업이나 왕원도 같은 사람들을 훨씬 능가했다. 갈취취 자신은 왕원도에게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이 노인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노인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눈길을 돌려 보니, 그 추한 노인은 이미 침상 앞에 서서, 막 선정에 들어간 왕원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취취는 마음을 굳게 먹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잠시 손을 쓰지 마세요. 제가 재주 하나를 보여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추한 노인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거 좋지. 무슨 재주를 보여 주려느냐?"

 

갈취취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마교의 장로이시니, 제가 술법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주문을 외운 뒤, 땅에 눕기만 하면, 어르신도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저를 따라 눕게 됩니다."

 

추한 노인은 크게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그건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술법이구나. 그런데 내가 쓰러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갈취취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저를 따라 눕지 않으신다면, 결과는 간단합니다. 저는 영영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못하게 될 뿐이지요."

이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술법이 통하지 않으면 그녀가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추한 노인이 말했다:

"알겠다. 내가 눕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너를 따라 눕는다면 네가 하루 동안 일어나지 않는 한, 나도 하루 동안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로구나. 맞느냐?"

 

갈취취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추한 노인은 혼잣말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네가 계속 죽은 척하며 일어나려 하지 않기만 하면, 왕원도는 목숨을 잃을 염려가 없겠구나. 흐흐흐! 이 계집애는 꽤 영리하군. 이런 절묘한 수를 생각해 내다니."

 

그는 비록 혼잣말을 하고 있었지만, 두 눈에서는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고, 칼처럼 날카로웠으며,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상대를 줄곧 응시했다.

 

그러나 갈취취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추한 노인은 난처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네게 정말 그런 재주가 있다면, 왜 지금 이 기회에 펼치지 않는 것이냐?"

 

갈취취가 막 대답하려는 순간, 뜰 문 밖에서 여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 낭자, 어디 계십니까?"

곧이어 백요금의 목소리가 들렸다:

"취 언니, 방 안에 계세요? 저희가 뜰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갈취취는 그 추한 노인의 눈에 살기가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댐으로써, 그녀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을 보였다. 갈취취는 만약 그의 명령을 어기고 소리를 냈다가는, 그가 손을 돌려 한 손바닥으로 왕원도를 쳐 죽일까 봐 정말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여걸과 백요금 두 사람은 틀림없이 안으로 뛰어들어 올 것이었다. 지금은 매복시킨 독물들을 아직 거두지 않았고, 독성도 한창 강할 때였다. 그들이 억지로 돌진해 들어온다면, 독에 중독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들의 무공이 정묘하고 저항력이 특별히 강하다 해도, 기껏해야 당장 죽지만 않을 뿐이었다. 여전히 서둘러 구해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때문에, 갈취취는 도무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마치 거대한 강철판 두 장에 눌려 납작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한동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백요금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치 독충에게 쏘인 것 같았다. 이어서 여걸도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 소리만 듣고도, 백요금이 먼저 매복에 걸렸고, 여걸이 급히 구하려다가, 역시 영향을 받아 화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사람의 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갈취취는 분노하여 이를 거의 부러뜨릴 정도로 악물었고, 두 눈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그들은 모두 끝장이 났군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려 하시는 겁니까?"

 

추한 노인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부는 평생 선행만 빼고는 무슨 일이든 다 해 왔다. 어린 두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슨 대수겠느냐? 자, 이제 내게 재주를 보여 줄 것이냐, 아니냐?"

 

갈취취는 마음속의 격한 동요를 애써 억눌렀고,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냉정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만, 온 힘을 다해, 이 악마에게 맞설 수 있어. 적과 함께 죽는 이 절기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왕원도의 생사와 화복에 대해서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이 생각이 마음속에서 몇 차례 맴돌자, 그녀는 태어난 이래 가장 강한 투지를 갑자기 불태우게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만두죠! 그만둬요! 어차피 저도 본래 좋은 사람은 아니니, 사람 목숨 두 개쯤이야, 또 무슨 대수겠어요? 하지만 침상에 있는 왕원도는, 저와 관계가 특별하니, 그래도 저는 힘을 다해 그의 목숨을 구해야겠어요."

 

추한 노인이 말했다:

"네 술법이 효과만 있다면, 노부는 땅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게 될 테니, 그저 눈을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당연히 그를 죽일 수도 없을 것이다."

 

갈취취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주문을 외워 술법을 펼친 뒤, 어르신께서는 그저 움직이지 않고 서 계시면서, 제가 어르신의 얼굴에 진기를 한 번 불어넣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술법이 효과가 있는지는 즉시 알 수 있을 거예요."

 

추한 노인이 말했다:

"만약 네 진기에, 지극히 강한 독이 들어 있다면, 노부가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갈취취는 속으로 몹시 다급했지만, 얼굴에는 오히려 웃음을 띠며 말했다:

"농담하지 마세요. 술법 말고, 이 세상에 무엇이 있어서, 어르신처럼 금강불괴의 몸을 지닌 인물을 쓰러뜨릴 수 있겠어요?"

 

추한 노인이 말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노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늙은이도 암습을 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상대의 안색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자,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빨리 손가락을 뻗어 멀리서 한 번 점했다. 쉭 하는 소리가 나자, 갈취취는 이미 나무 인형처럼 뻣뻣하게 서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갈취취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으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추한 노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네 계략과 음모가 어찌 노부를 속일 수 있겠느냐? 듣자 하니 독교의 고수들은, 대부분 적과 함께 죽는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구나. 아마 벽혈전(碧血箭)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노부가 짐작하기로는, 틀림없이 혀를 깨물어 부수고, 온몸의 공력을 끌어모은 뒤, 한 입에 뿜어내는 것일 테지. 이런 무공은 자신의 생명을 바탕으로 발동하는 것이니, 피로 된 화살 같은 것을 한 번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 안에 기이한 독까지 들어 있다면 어떻겠느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상대가 묵인하는 듯한 눈빛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노부는 온몸의 무공이 비록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이런 절세의 독공은, 별개의 문제다. 이 천지 사이에서는, 아마도 이런 독공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다시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갈취취는 마음속에 원한이 가득했지만, 지금 그녀는 이미 칼과 도마 위의 생선과 같은 처지였다. 아직 선정에 들어 있는 왕원도와 마찬가지로, 그저 도살당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어떤 사람이든, 지금 당장 이곳에 나타난다 해도, 이 추한 노인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크게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원교가 이 사람의 도움만 받는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기에 충분하겠구나. 왕원도가 열 명 있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아!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로구나.'

 

그때 추한 노인은 몸을 돌려 침상 곁으로 걸어갔다. 왕원도와의 거리는 겨우 두세 자에 불과해,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손을 쓰지 않았다. 아마 먼저 관찰하고, 확실히 살펴본 뒤에야 독수를 쓰려는 듯했다.

 

잠시 후, 그 추한 노인은 갑자기 손을 뻗어, 왕원도의 가슴을 내리쳤다. 왕원도는 악 소리를 내며, 온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하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갈취취는 순간 가슴이 산산이 부서지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당장 달려가 이 추한 노인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문 밖 멀지 않은 곳에서, 병든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였다.

 

갈취취는 듣자마자 그 소리가 여걸과 백요금의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벌써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신음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갈취취는 가슴이 찢어지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와중에도, 몹시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있었다.

 

그 추한 노인이 몸을 돌려 문가로 걸어가자, 갈취취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내어, 여걸과 백요금 두 사람에게 어서 도망치라고 알려 주려 했다. 이 악마의 손에 죽는 일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깥 뜰에 있는 여걸이, 뜻밖에도 환호성을 질렀다는 점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향노백 어르신, 언제 오셨습니까? 악!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갈취취는 물론 향노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막 생각을 돌리는 순간, 그 추한 노인이 말했다:

"너희가 그저 머리만 아픈 정도라면, 조상님들의 덕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치대로라면, 너희는 벌써 여기저기 썩어 문드러진 두 구의 시체가 되었어야 한다."

 

여걸은 신음 소리를 한 번 내고, 다시 말했다:

"백 낭자는 저보다 훨씬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 낭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향노백이 말했다:

"그녀는 방 안에 있다. 네가 들어와 그녀를 잘 타일러야, 내가 그녀를 풀어 줄 수 있다."

 

여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힘을 끌어모아, 온몸에 힘이 빠진 백요금을 부축하고, 계단을 올라, 간신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을 한 번 바라보자, 안색이 저도 모르게 조금 변하며, 말했다:

"향노백 어르신, 왕 형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향노백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헛되이 힘만 쓰고, 얻는 것은 매우 적었다. 그래서 내가 손을 써서 잠시 수련을 멈추게 하고, 푹 한잠 자게 한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여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향노백 어르신께서 서둘러 오셔서 왕 형님을 도와주신다면, 형님께서 성공하실 가망이 분명히 있겠습니다. 악, 머리가 너무 아파 죽겠습니다!"

그의 품에 기대어 있는 백요금은, 줄곧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분명히 여걸보다 고통이 더 심한 듯했다.

 

향노백이 말했다:

"이 늙은이가 독을 제거하는 무공을 펼쳐, 삼매진화로 발바닥을 뚫고 나오게 하여, 독성의 대부분을 없애지 않았더라면, 너희 둘은 벌써 저승으로 갔을 것이다!"

 

그는 눈길을 돌려 갈취취를 바라보며, 미소를 띠고, 다시 말했다:

"어린 아가씨, 네가 벽혈전의 무공을 펼치지 않겠다면 내가 너를 풀어 주마!"

 

갈취취는 아무런 의사도 표시할 수 없었다. 향노백은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혈도를 풀어 준 뒤, 다시 말했다:

"아가씨, 원망하지 말거라. 이 늙은이가 너에게 장난을 좀 치기는 했지만, 너에게 분명 어느 정도 이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왕원도라는 이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든 그는 모두 명령을 따라야 한다."

 

갈취취는 당연히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속으로 이 말은 적어도 십중팔구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아첨하기에도 바쁠 판인데, 어찌 감히 원망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해독법을 펼쳤고, 순식간에 여걸과 백요금 두 사람은 모두 평소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백요금은 여걸이 정성스럽게 안부를 묻는 데 전혀 대꾸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마음 깊이 품은 감사의 정이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