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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武俠小說)/변황전설(邊荒傳說) - 黃易

卷六 第五章 변황지야(邊荒之夜)

by 少秋 2025. 1. 2.

 

第五章 邊荒之夜

 

 

유유는 겹쳐서 높이 쌓은 상자에 기대앉아 기천천이 방의 등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그녀와 소시의 이불과 수놓은 침대 덮개를 정리하느라 바쁜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천천은 문득 방의를 끌고 제일루로 가서 무언가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새로운 제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천천은 확실히 거절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유유 자신도 할 수 없고 연비도 할 수 없고, 고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유유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며 자신의 두 눈이 계속 기천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온 정신을 집중해 그녀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고 그저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이성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이때 그는 그녀가 없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지만, 분명 많은 삶의 재미를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았다.

 

기천천이 말을 마치고 다시 침구를 정리하러 돌아갔다. 그녀의 활기차고 귀여운 모습을 보니 그녀가 한방이나 호방을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황집에서의 매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비록 흩어졌지만 여전히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천천을 보러 온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변황집에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 천하다는 규칙을 잘 알고 있어서 멀리서 힐끗힐끗 볼 뿐이었다.

 

방의가 그의 옆에 와 앉아서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유유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천천이 또 무슨 괴상한 생각을 한 겁니까?"

 

방의가 꿈을 꾸듯 말했다:

"그녀는 개인용 탁자를 원하는데, 주귀(酒鬼) 연비의 개인용 탁자 옆에 놓아달라고 하는군요. 변황 제일 고수의 보호를 받는 편안한 마음으로 매일 동쪽대로의 활기찬 생활을 감상하고 싶다더군요."

 

유유가 탄식하며 말했다: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앞으로 변황집을 통치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천이 될 것입니다. 부견처럼 백만대군이 남하하지 않는 한 무력으로 변황집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몇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그래서 저는 천천이 그녀의 미모와 개성, 뛰어난 지혜와 고귀한 마음씨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패업(霸業)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방의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호적(胡賊)이 여인에게 이렇게 공손하고 예의 바른 것을 본 적이 없소. 오로지 명령에 따르는 듯한 고분고분한 태도였소. 천천의 매력은 정말 놀랍소. 그녀에게 모질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사람이 아닐 것이오. 남녀 모두 마찬가지요."

 

유유가 말했다:

"조금 전에 겁나지 않았습니까?"

 

방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겁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천천이 말을 시작하자 저는 그녀의 표정과 미소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잊어버렸어요. 겁이 난 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유유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마음이 흔들리신 겁니까?"

 

방의가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더 대단할 거요.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분명히 아니까 분수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않지요. 사실 천천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고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귀한 기품이 있어서 감히 망념을 품을 수 없게 만드니, 그건은 일종의 모독이 될 것이오."

 

유유가 말했다:

"소시(小詩)도 괜찮지요!"

 

방의는 생전 처음으로 얼굴을 붉혔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유유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이 소시에 대해 특별히 세심하게 보살피는 것을 보고 그냥 해본 소리요! 하하!"

 

방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말해도 소용없군. 만약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나는 당신과 목숨 걸고 싸울 거요."

 

이어서 또 말했다:

"내일 만약 축 노대가 순순히 목재를 돌려준다면, 나는 먼저 천천에게 의자와 책상을 만들어주어 제일루의 재건 공사를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 할 거요."

 

유유가 막 말을 하려는데, 기천천이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왔고, 순식간에 천개지변(天改地變)하여 폐허는 생기와 색채가 가득한 아름다운 인간선계로 변했다.

 

기천천은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유유를 가리키며 불평을 해댔다:

"당신 지금 게으름 피우고 있죠."

 

유유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달콤한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그녀의 건강하고 풋풋한 향기를 맡으며 손을 벌렸다:

"게으름을 피우다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기천천이 흔쾌히 말했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방 주인님이 저와 소시에게 천막 네 개를 주신다고 하셨어요. 두 개는 잠자고 휴식하는 데 쓰고, 하나는 씻고 목욕하는 데 쓰고, 하나는 손님을 맞이하는 데 쓰라고 하셨어요……"

 

방의가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데 써야지요."

 

유유는 즉시 호랑이 눈을 번뜩였다.

 

기천천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방의를 흘겨보자 혼비백산한 방의는 마치 급한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황급히 말했다:

"준비해야 할 물건이 아주 많아요! 다행히 변황집에 야시장이 열리니 천천 소저는 큰 욕조와 큰 솥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

이어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용품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열거했다.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네 개의 야영 천막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유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몸을 나눌 수 있겠소? 당신을 보호하는 건 연 노대가 내린 중요한 임무입니다."

 

기천천은 교활하면서도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소시가 여러분과 함께 가면 되잖아요?"

 

유유와 방의는 문득 깨달았다. 기천천은 빙빙 돌려 말했지만 결국 야시장에 가고 싶어서였고 혼자 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나귀 발굽이 땅을 밟고 수레바퀴가 땅을 가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자 세 사람은 그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고, 세 마리의 나귀가 끄는 수레가 동쪽대로에서 골목길로 들어왔다.

 

유유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세 대의 나귀가 끄는 수레는 분명히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었지만, 수레를 모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황민일 뿐 한방의 살수나 자객 같지는 않았다. 만약 나귀 수레로 한방의 전사를 운반하려 한다면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고,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방의 역시 어리둥절해하며 소리쳐 말했다:

"너희들 뭐 하려고 여기 온 거야!"

 

소시와 정웅 등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서둘러 구경하러 왔다.

 

첫 번째 나귀 수레를 모는 나이 어린 젊은이가 말했다:

"스스로 변황공자라고 부르는 잘생긴 녀석이 일용품을 대량으로 구매하였는데…… 아! 이런, 알고 보니 천천 아가씨가 정말 변황집에 오셨군요. 그가 허풍을 떤 게 아니었군요."

 

유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물건들이 설마 그 뭐 변황공자라 부르는 녀석이 천천 소저에게 보내라고 지정한 것이란 말인가?"

 

나이 어린 젊은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기천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상황으로 봐서는 벌써 부모님도 잊어버린 듯 유유의 질문에 대답할 줄 몰랐다.

 

세 대의 나귀 수레가 세 사람 옆에 천천히 멈춰 서자 방의가 소리쳐 말했다:

"형제들 올라가 보세, 과연 한 수레 가득 찬 자객인지, 아니면 선물로 가득 찼는지 보세."

 

기천천은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방 주인님 기분이 엄청 좋으신가 봐요. 이렇게 재미있게 말씀하시다니. 천천은 변황집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매 순간마다 변화가 있으니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요. 지금처럼 갑자기 변황공자라는 잘생긴 녀석이 나타나 눈앞에 세 대의 선물 수레를 보내오는 것처럼 말이죠."

 

수레를 몰고 온 세 젊은이는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또 그녀가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짓자 마치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정웅 등은 일제히 달려들어 신이 나서 화물을 덮고 있는 천막을 들춰보았다. 그리고는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마치 신기한 놀이를 하는 것처럼 위험 따위는 이미 멀리 떨어진 것처럼 행동했다.

 

기천천이 변황집을 정복할 수 있을지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녀를 본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그녀의 절세적인 미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든 적이든 마찬가지다.

 

기천천은 발끝을 세우고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아름다운 눈망울을 반짝이며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분이야말로 세상에서 여자에게 가장 잘 시중드는 남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세 대의 수레에는 각종 여성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화장대, 동경, 크고 작은 욕조부터 빗까지 모든 종류가 빠짐없이 다 갖춰져 있었다.

 

유유와 방의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변황공자가 분명 여성의 생활에 대한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훤히 꿰뚫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심하고 주도면밀한 모습은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멋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여성을 잘 아는 인물이 정말 있을까?

 

소시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져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물건들은 우리가 일이 년은 충분히 쓸 수 있겠어요! 정말 대단해요! 모두 남방에서는 살 수 없는 북방의 상등품이에요."

 

기천천은 기쁜에 겨운 모양으로 유유와 방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약간 부탁하는 어조로 물었다:

"이것은 제가 받아본 것 중 가장 정성이 담긴 선물인데, 천천이 받지 않으면 인정이 없는 거겠죠. 천천이 선물을 받아도 될까요?"

 

방의 역시 기천천의 약간은 야성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후한 선물은 연비를 포함해서 우리가 모두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해 낼 수 없을뿐더러 생각해 낸다 해도 이렇게 딱 들어맞게 준비하기는 어려울 거요. 하지만 천천 소저는 생각해 본 적이 있소? 눈앞의 이 큰 선물은 그 뭐냐 변황공자가 소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데, 천천 소저가 받은 후 그가 귀찮게 할까 봐 걱정됩니다."

 

기천천은 입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를 만나보지 않고는 천천도 그냥 달갑지 않아요."

 

유유는 연비가 있어도 기천천이 이미 내린 결정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변황집은 천하 고수들이 모이는 곳으로 고수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는 곳을 말하는데, 지금 변황공자가 천천에게 발초(發招)를 하였으니 우리의 미인 천천 소저가 어찌 공격을 받고 역공을 가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면 우리 제일루의 위명이 약해질 것이오."

 

기천천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유 노대는 정말 대단한 영웅입니다. 좋아요! 모두들 좀 도와주세요. 화물을 내린 다음 어디에 둘지 생각해 봐요.“

 

  ※※※

 

야와자 거리는 떠들썩하고 혼란스러웠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술꾼들이 여기저기에 앉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길바닥에 누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떠들썩하게 흥청거리는 무리가 떼를 지어 환호성을 지르며 지나가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하늘을 찌르며 모든 걱정을 던져버리고 마음껏 인생을 즐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고언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대가(東大街)를 통해 야와자로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야와자의 동대가 구간에는 변황루(邊荒樓)와 황월루(荒月樓)라는 두 개의 유명한 청루(青樓)가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진회루(秦淮樓)와 회월루(淮月樓)와 같았다. 다만 진회하가 동대가가 되었을 뿐, 두 청루의 이름도 이 두 진회하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고언이 호녀(胡女)들이 상주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야와자 종루 광장 남동쪽에 위치한 청루 진환장합(盡歡場合)을 지날 때, 그는 여전히 문밖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호족 소녀에게 걸려들었고, 애꿎은 연비까지 휘말려 곤경에 처했다. 가까스로 연지분과 진한 화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연비가 위기를 넘기고 안도감이 들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청루의 아가씨들은 얌전히 청루 안에 있으면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 아니었나? 어떻게 길거리까지 나와서 손님을 억지로 끌고 들어가려고 할 수가 있지?"

 

고언은 여전히 난감했다. 아귀 같은 청루의 자매들이 고야 앞뒤에서 그를 부르며 그가 청루의 단골손님임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이미 개과천선했는지 여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고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경쟁은 심하잖아! 손님이 많을수록 몸 파는 돈이 많아지니까, 그래도 난 여전히 진회하의 고상한 방식이 좋아. 정취가 있잖아. 진회하에서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곡을 감상하고 술잔을 권하며 심지어 청담도 나눌 수 있는데, 여기 자매들은 한가롭게 너와 그런 수작을 부릴 시간이 없어. 너를 끌고 들어가 방으로 들어가면 바로 성관계를 하고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 에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사실 창녀촌과 다를 바 없어."

 

연비는 기천천이 이런 곳을 개혁하려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습관이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야와자 안에 가장 많은 것은 청루 기생집이 아니라 술집, 다실, 음식점이다. 다행히 모두 밤이 되어야 영업이 허락된다. 그렇지 않으면 낮에만 영업하는 제일루의 많은 장사를 빼앗아 갔을 것이다. 야와자는 밤을 즐기는 사람들의 선계(仙界)로, 청루, 도박장, 술집, 음식점 할 것 없이 모든 건물에 오색등을 걸어 야와자만의 취생몽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펑!"

 

고언은 고개를 들어 야와자 중심구 종루가 있는 광장 상공을 바라보았다. 한 떨기 찬란한 불꽃이 밤하늘에 터지자 흥분하며 말했다:

"광장에 또 무슨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는지 모르겠네. 네가 처음 왔으니 경험 많은 내가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줄게."

 

연비는 마침 건너편 폭죽가게 옆에 자리한 사당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는 건물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긴 뭐하는 곳이냐?"

 

고언이 웃으며 말했다:

"편액에 써 있는 '심선재(尋仙齋)' 세 글자가 안 보이냐? 무슨 한석산(寒石散)이나 영단선약(靈丹仙藥)을 복용하고 싶다면 안에 많이 있어. 이런 단당(丹堂)은 야와자 안에 모두 세 곳이 있는데, 나도 한두 번쯤 이용해 본 적이 있어. 그때 산 것은 선약이 아니라 장양환(壯陽丸)이었지."

 

연비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남북의 사람들이 황인을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알고 보니 어느새 종루 광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눈앞의 시끌벅적한 모습에 세상사에 냉담했던 연비도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

 

유유는 상자에 기대고 바닥에 앉아 기천천과 소시가 방의 등의 도움을 받아 흥겹게 변황공자가 보낸 물건들을 네 개의 큰 천막 안에 배치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즐거움을 느꼈다.

 

비록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때때로 소란을 피웠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기천천의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만 바람처럼 그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갑자기 가슴을 파고드는 상실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동력을 잃은 것처럼 더 이상 그를 흥분시킬 만한 목표가 없었고, 남북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는 요원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눈앞의 미녀가 영원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에게 자괴감과 자기 연민의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어쩌면 연비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옛사랑을 잊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거칠고 야성적인 모용전에게 끌릴 수도 있고, 심지어 자칭 변황공자라는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지만, 결코 유유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천천은 그를 좋은 형제, 친구,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동료로 여길 테지만, 남녀 간의 정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항상 연비를 찾는 것만 봐도 자신이 그녀의 이상적인 상대나 지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생각은 그를 절망과 외로움에 빠뜨렸다.

 

북부병에 가담한 후 청루에 가서 흥을 돋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순전히 색욕을 추구하기 위해서였고, 돈을 주고 즐기는 관계였기에 상대방의 이름은 물론이고 생김새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눈앞의 미녀에게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던 그는 변황집에 있었지만 이곳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전에 매번 변황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랬듯이 그저 어떤 조직에서 내려온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변황집의 자극적이고 활기 넘치는 독특한 생활 방식을 즐길 수 있었지만, 여전히 과객이었기에 결국은 떠나야 했다. 그와는 달리 연비, 방의, 고언 등에게 변황집은 그들의 집이자 어쩌면 유일한 귀착지였다.

 

기천천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녀를 더 끌어당길 만한 곳을 찾지 못하면 그녀는 이곳에 남아 그녀의 아름다운 삶의 빛과 열기를 불태울 것이다.

 

반면 유유 자신은 군인이었고, 남방의 안위와 존망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기에,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지위에 두어야 했다.

 

남녀 간의 정은 더욱 얽매임과 부담이었고, 이전에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기천천을 놓치면 인생에서 만회하기 어려운 큰 실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 큰 문제는 설사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전력을 다해 기천천을 쫓는다 해도 역부족이고, 공연히 그들의 무적조합을 깨뜨리게 되고, 축법경을 암살하는 큰일을 그르치게 되며, 사현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로 인해 사씨 가문이 손해를 본다면, 메울 수 없는 잘못과 한이 될 것이다. 그의 실사구시적인 성격으로는 결코 이런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다.

 

유유는 나비처럼 날아오는 기천천을 힘없이 바라보며 마음속에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기천천이 기뻐하며 말했다:

"손님 천막의 배치가 끝났어요! 유 노대도 살펴보시고 가르침을 주세요. 어! 유 노대,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유유는 총명하고 영리한 미녀가 이미 그의 안색에서 복잡한 마음을 알아챘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복잡한 근심과 걱정을 누르고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무슨 고민이 있겠어요. 그저 천천 소저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벌과 나비를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요."

 

기천천은 그에게 교태로운 눈길로 흘기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거짓말! 그런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오늘 밤 흥을 돋울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머리 좀 굴려 보세요. 천천은 오늘 밤엔 안 잘 거예요! 내일 실컷 잘 거예요."

 

유유는 그녀의 애교가 넘치는 다정한 모습과 입술에서 피어나는 오만 가지 교태와 자태를 볼수록 상실감과 고통을 느끼며, 며칠 만에 자신이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된 것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갑자기 그의 소매가 그녀에게 꽉 잡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손님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유유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며 마음속으로 남녀 간의 정이라는 관문조차 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공한 조적(祖逖)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울려 유유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칠팔 명의 기수가 동대가에서 제일루의 공터로 들어오며 말발굽이 걷어찬 재와 부스러기들이 하늘로 치솟았고, 맹렬한 기세로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상황을 본 유유는 소리쳤다:

"천천과 소시는 먼저 천막으로 들어가시오."

 

기천천은 그가 소시가 놀랄까 봐 걱정하는 것을 알고 얼른 소시를 끌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