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龍 孤星傳 / 第四章 撲朔迷離
撲朔迷離
(박삭미리 : 남녀 구별이 어렵거나 일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구분하기 힘든 경우를 이르는 말)
배각이 앞에 앉자 그 말은 마치 구름과 안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질주하였다. 이것은 그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속도로 달려갔다. 자기도 모르게 몹시 흥분되었다.
알아야 할 것은 ‘속도(速度)’라는 것이 사람들이 즐기는 한 종류로 특히나 사람들을 자극하는 취미이다.
배각은 눈을 감고 난생 처음 느끼는 감각을 음미하고 있었다. 갑자기 코끝에 한 줄기 은은한 향기가 느껴졌다. 뒤에 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자의 몸에서 어찌 여인의 냄새가 날까?’
그의 뒤에 있는 그 사람은 이미 그것을 알고 차갑게 말했다.
“너는 여자이니 일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이후 무공을 배우기 전에는 부디 혼자 나다니지 말거라.”
배각은 듣고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 사람도 또 얘기했다.
“오늘 너는 함부로 나를 따라나섰다. 나니까 다행이지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럼 너는 또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배각은 입이 있어도 말하기 어려워 떠듬떠듬 말했다.
“나는……”
그가 호되게 말했다.
“말이 필요 없다!”
비록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말은 아주 엄하였고 게다가 이면에는 아주 냉랭한 느낌으로 감히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 사람은 또 말했다.
“이후 밖에 있을 때는 나를 냉대숙(冷大叔)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배각은 듣고 속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의 나이가 나보다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데 나보고 그를 대숙으로 부르라고 하네.’
하지만 입으로는 “네”하고 대답했다. 마침내 응낙하였다.
말은 한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다. 하늘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거의 자시가 되었다.
배각은 어디로 달려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갑자기 그는 멀리 불빛이 있음을 보았다. 그곳에는 틀림없이 장터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앞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갔다. 앞에 도착하자 비로소 발걸음이 느릿느릿해졌다. 배각이 보기에는 이곳은 과연 장터였다. 게다가 상당히 시끌벅적하였기 때문에 이 늦은 밤에도 여전히 이곳은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이다. 단지 그가 스스로 북경에 온 이래 더 이상 나온 적이 없었으니 자연히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말이 시장에 들어가자 매우 느리게 걸었다. 그 사람의 손이 배각의 몸 뒤쪽에서 나와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멈춰 세웠다.
배각은 갑자기 그의 몸이 부드럽다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 이상함을 금치 못해 중얼거렸다.
‘이 사람의 무공이 이렇게 훌륭한데 어째서 몸이 이렇게 부드러울까?’
말이 한 채의 멋지고 커다란 객잔의 입구에서 멈춰 섰다. 그 사람이 말에서 내렸다. 배각은 북부 지방에서 오래 살아서 자연히 말을 탈 줄 알기에 따라서 뛰어 내렸다.
그 사람의 얼굴에 또한 놀라는 기색이 어리며 물었다.
“너 말 탈 줄 알아?”
하지만 배각의 답변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앞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옷과 신발은 몹시 부귀한 티가 났고 타고 온 말 또한 고르고 고른 우수한 말이었다. 객잔의 점소이가 사람을 지나치게 훑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무슨 내력이 있는지 그는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점소이는 얼른 달려 나와 아부하며 말했다.
“손님은 물론 방이 필요하시겠죠?”
자칭 냉대숙인 그 사람은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점소이가 말했다.
“부인은 왜 안 들어오시나요?”
배각은 문 입구에 여전히 서 있었는데 이때 다른 사람이 그를 부인(夫人)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질부리기도 쉽지 않았다. 부득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점소이는 신기하다는 듯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원래 그는 발에 변함없이 한 짝의 박저쾌화(薄底快靴)를 신고 있었다. 냉대숙은 자기도 모르게 점소이의 눈을 따라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배각은 그를 바라보고 어쩔 수 없이 웃고 말았다. 이때 불빛 아래에서 배각이 그를 분명히 쳐다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칭찬했다.
‘헉, 엄청 예쁘다.’
원래 이 냉대숙의 양쪽 눈썹은 길게 드리웠는데 눈빛에서 광채가 번득였다. 비록 입이 작지는 않지만 그다지 큰 것도 아니었다. 코는 하나의 옥주(玉柱)와 같아서 아주 똑바르게 이마로 뻗어있었다. 그가 배각에 비해 삼 푼 정도 더 잘생겼다.
냉대숙은 그를 쳐다보고 있는 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여자애는 조금 괴상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어쨌든 자칫하면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이 여자가 뜻밖에도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시중들던 점소이가 웃으며 말했다.
“폐점은 전 객실이 만실입니다. 오직 방 한 칸만 남았습니다. 두 분이 그냥 지내실 만합니다. 그곳은 그런 대로 깨끗합니다.”
그는 눈치가 빨라서 이 두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챘다. 그래서 크게 못 미칠 것 같으니 비로써 아첨하는 태도였다.
냉대숙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좋아, 빨리 안내해라.”
배각은 어려서부터 남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당연히 뭐가 좀 불편할 거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와 남자의 겉모습이 결국 일남일녀로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 냉대숙이란 자는 왜 자기와 같은 방에서 자려는 것일까? 설마 이 냉대숙이란 자의 마음속에 무슨 나쁜 버릇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막 방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냉대숙이 손을 흔들며 점소이에게 가라고 소리쳤다. 한편으론 방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얼른 옷을 벗고 쉬어라.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한다.”
배각은 조금 쑥스러워했는데 그는 다른 것이 아니라 냉대숙이 그에게 어째서 여자 옷을 입고 있냐고 물어볼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냉대숙은 의자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엔 한 줄기 웃음도 보이지 않고서 말했다.
“너는 부끄러운 것이냐? 네가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니 상관없다.”
※ ※ ※
처음에 냉대숙이 옷을 벗자 풍만한 젖가슴과 거대한 둔부가 뜻밖에도 여인의 것이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배각의 얼굴 표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교훈적인 말투로 말을 하였다.
“내가 얘기했던 뜻을 넌 이제 알겠지. 나는 사실 남자가 아니야.”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또 말했다.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네가 어찌 운수 사나운 일을 또 당하지 않았겠느냐?”
배각이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여자가 그의 면전에서 옷 벗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때 정황을 보자면 심장이 마치 떨어져 나갈 것처럼 요동쳤고 얼굴 빛은 뻘겋게 상기되어 깜짝 놀라 얼근 고개를 숙였다. 감히 다시는 냉대숙을 쳐다보지 못했다.
냉대숙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나와 너는 정말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너를 보니 네가 정말 불쌍하고 남에게 업신여김이나 당하고 얼마나 고고영정(孤苦伶仃: 가난하게 되어 남의 도움 없이 고생함)한지 깨달았어. 그래서 제자로 받으려고 데려온 거야. 너는 이것이 간단하다고 여기지 마라. 아마 이후 너는 다른 사람이 듣도록 말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니?”
배각은 고개를 들어 그저 “엥”하고 소리를 냈다. 얼굴빛이 돼지 간처럼 매우 빨게졌다.
알고 보니 이 냉대숙은 마침내 몸에 한 가닥도 없이 옷을 벗었다. 몸매의 굴곡과 풍만함이 아름다웠다. 불빛 아래에 드러난 몸매가 아주 아름다웠다.
냉대숙은 필시 배각의 난처한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너는 이상하게 여기지 마라.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잠을 자왔다.”
웃으며 또 말했다.
“너는 나이가 어떻게 되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게냐? 빨리 옷을 벗고 자자. 너는 여자인 나는 봐도 된다. 뭐가 무섭냐?”
“냉대......대숙.”
배각은 더듬더듬 말을 했다.
“당신은 빨리 옷을 입으세요.....저는.....저는 남자에요.”
냉대숙은 깜짝 놀라 냅다 뒤로 한 발 물러서서 교갈을 터뜨렸다.
“너 뭐라는 거냐?”
배각은 억지로 말을 했다.
“저는 남자에요. 저는.....”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냉대숙은 이미 한 손으로 앞을 스쳤다. 배각은 똑똑히 보지 못했지만 코 언저리였다. 결국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냉대숙은 옥수를 뻗어 그의 앞가슴을 더듬더니 옥 같은 얼굴이 곧 붉어졌다. 배각의 뺨을 후려치며 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네가 감히 나를 능욕하다니!”
배각은 내심 부르짖었다.
‘누가 너를 능욕했단 말인가?‘
이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자기가 설명하고 싶었지만 입이 아파 말을 할 수 없었다.
냉대숙은 머리를 숙이고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자기에게 멈추어 있는 배각의 눈을 바라보더니 손을 뒤집어 또 뺨을 후려쳐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그녀는 신속하게 겉옷을 입고는 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내가 너를 마음껏 혼내지 않는다면 나는 냉월선자(冷月仙子)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냉월선자라는 넉 자를 듣자 이상하게도 바로 머리가 혼미해져 무섭지도 않았다.
원래 무림엔 근 십년 내에 지극히 유명한 인물이 출현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천수서생(千手書生)으로 행적이 묘연했으며 무공은 놀랄 만큼 고강했다. 정사지간의 인물로 지금까지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당신이 만일 그를 건들이지 않는다면 그 또한 결코 당신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당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그의 손에서 도망갈 수 있다는 망상을 갖지 마라.
무림인들이 천수서생(千手書生)이란 네 자를 언급하는 것은 모두가 경이원지(敬而遠之)하는 것이다. 이 냉월선자(冷月仙子)가 본래 천수서생의 처였다. 행위가 천수서생에 비해 더욱 독랄했다.
왠일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냉월선자와 천수서생 부부 사이에 반목이 생기고 천수서생이 갑자기 강호에서 실종되자 저 냉월선자의 강호행도가 시작되었는데 그녀도 종적이 묘연하였다. 또한 남장하기를 좋아하니 남자였다가 여자였다가 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조금만 노여움을 사기만 하면 그냥 끝나지 않았다.
용형팔장과 같은 신분과 무공으로는 이들 부부를 언급한다든가 얼굴색이 변한다든가 해서 절대 이들 부부를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이때는 운명이 서로 맞아떨어졌는지 배각은 뜻밖에도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일이 발생하고 또 그 일을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냉월선자의 평소 성격으로 봐서 배각의 목숨이 끊어지기 십상이다.
배각의 눈빛에 자책, 부끄러움 그리고 불안이 겸유해 있었다. 하지만 구걸하는 표정은 절대로 없었다. 그의 천성이 이와 같아서 설령 머리에 칼이 대어져도 그는 당신에게 일언반구도 간청하지 않을 것이다.
냉월선자의 얼굴에 붉은 노을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그녀의 몸을 본 사람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엔 그녀의 남편조차도 본 적이 없다.
이때 그녀는 오히려 이 소년에게 실컷 눈요기를 시켰다. 마음속엔 물론 분노가 일었거니와 왠지 모르게 또 다른 얘기는 할 수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 느낌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해서 그녀는 배각을 죽이기로 더욱 다짐하게 했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손을 드는 것과 같이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하며 머뭇거렸다.
배각의 눈빛 속에서 그녀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일종의 순진함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오만했는데 천수서생와 결혼한 후 그녀의 성격은 더욱 이상해졌다.
그것은 천수서생이 애정을 쏟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에게 들켜 그녀는 화가 나서 그를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천하의 남자들을 모두 원수로 여겼다. 이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니 배각의 눈빛이 진정 그녀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세상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타인의 감정을 속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절대 잠깐일 뿐이다. 순수한 감정만이 유일하게 타인의 순수한 감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함만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다.
냉월선자는 옥수를 튕겼는데 왠지 모르게 방향을 바꾸어야겠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배각의 머리 뒷부분의 옥침골(玉枕骨)을 가격한 것이다.
배각은 한숨을 돌렸다. 그는 비로소 상대방에게 혈도를 점혈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냉월선자의 눈빛엔 변함없이 한 줄기 호의도 없었으며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배각은 비록 자기가 점혈당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자기가 험사환생(險死還生)했음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냉월선자의 손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드문 경우였다.
혈도가 풀린 뒤 그는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출신과 낮에 겪었던 일을 모두 얘기했다.
냉월선자 예정(艾青)은 비록 겉으론 냉약빙상(冷若冰霜: 얼음과 서리같이 냉엄)하고 행사가 심한수랄(心狠手辣: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하지만 오히려 감정이 풍부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의 이런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엔 허다한 사람들이 있어 배각보다 훨씬 더 비참한 처지에 여전히 직면해 있어도 예청은 지금까지 한 번도 관여한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이때는 배각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들었는데 상황이 오히려 크게 달라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종종 사물을 따라 변천한다. 같은 한 가지 일이지만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람에게서 발생했다. 그 일은 네 마음속에 생긴 인상이다.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
배각은 말을 잘 하지도 못하는데다가 또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우 간단하고도 감동적으로 핵심만 얘기했다.
말 수가 적은 자의 이야기는 종종 요점을 찌르고 감동을 준다.
이때서야 비로소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부끄러움과 어색함 그리고 불안감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피차간에 이해와 동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비록 예청이 일생동안 다채로우면서도 비밀스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적이 없지만 그녀는 경탄하며 말했다.
“너는 괴로워하지 마라. 나의 신세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너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열심히 하기만 하면 앞으로 무공은 아마 나보다 더 높을 것이다. 이후에 천천히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바로 이 한 마디는 배각의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말보다 나은 것이다. 그는 이 나이에 그보다 거의 한 배나 더 많은 여자를 상대로 비록 이때엔 마음속에 성적 욕망이 없었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일종의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일종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유사한 감정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배각의 마음속에 다년간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 ※ ※
냉월선자는 심신이 피곤했다. 이번에 그녀는 북쪽에서 급하게 왔다. 정말 아주 무서운 적수를 피하기 위해서 도중에 쉬지 않고 길을 재촉했었다. 달려오느라 고생을 다한 것이었다.
내일도 여전히 그녀 자신이 언제 도망을 멈출 수 있을지 알지 못하고 계속 도망쳐야 한다.
그녀는 가볍게 하품을 하고 피곤하여 눈은 게슴츠레 하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얼른 자거라.”
말을 꺼내고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온통 뻘게지며 문득 생각이 났다. 어떻든 간에 상대방은 남자아닌가.
예청은 갑자기 문 앞으로 걸어가 옷섶을 여미고 어느덧 문을 열었다. 문 밖은 아무도 없어 조용했다. 문 밖의 긴 복도 양 끝에도 이 시각엔 조용하고 인적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옷이 날리자 얼른 손으로 잡았다. 얼굴은 또 자기도 모르게 붉어지자 고개를 돌려 배각을 바라봤다. 순간 갑자기 놀란 눈빛이었다.
이때 배각은 걸어오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냉......냉대숙, 피곤하실 테니 먼저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곧 날이 샐 테니 제가 문 밖에 서 있겠습니다.”
예청은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갑자기 원망의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보니 너희들이었구나. 뜻밖에도 너희들이 살기가 귀찮아졌구나.”
배각이 깜짝 놀라 망연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이상했다. 예청이 자기를 발견하고 망연한 신색으로 있는 그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 문틀을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것 좀 봐라.”
배각은 보고 깜짝 놀랐다. 원래 문틀에는 정연하게 석회를 발라져 별 모양의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표국에 오래 살아 평소에 사람들이 하는 한담을 들어서 강호상에 벌어지는 일을 적잖이 알고 있었다. 지금 보자 이것은 강호 도당(盜黨)들이 쓰는 사전 예고임을 바로 알았다.
이 의미는 말로 하면 바로 이와 같다.
“이 사람은 이미 우리 것으로 정해진 것이니 다른 사람은 손을 떼어라.”
배각이 급히 물었다.
“이게 누군지 아십니까?”
예청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그 별모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의해서 보거라. 이 별에 무슨 괴상한 점이 있느냐?”
배각은 얼른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본시 아주 총명한 사람인데 수년간 억제되어 비록 그가 자신감을 이미 잃기는 했지만 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함 속에 있는 하나의 조그만 명주와 같아서 아직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뿐 변함없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보고는 간단하게 말했다.
“보통의 별은 오각이지만 이 별모양은 칠각이네요. 게다가 육각은 작으니 그중에 한 각은 클 수밖에 없군요.”
예청은 깔깔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소년의 관찰력이 상당히 날카롭구나.”
즉각 방문을 슬쩍 닫고는 말했다.
“맞아. 바로 강호상의 명성이 최악인 칠인이 남긴 표기다. 흥, 그들이 나를 찾아냈지만 그들에게 악운이 찾아왔구나.”
배각이 물었다.
“그들이 누구예요?”
예청이 말했다.
“그들은 자칭 북두칠살(北斗七煞)이라 하는 일곱 명의 결의형제들이지. 평소에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데 무공도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별것 아니야. 칠살 중에 노삼과 노칠이 가장 호색......”
여기까지 말하고 그녀의 얼굴이 뻘게졌다.
배각은 주의해 듣고 있어서 그녀의 얼굴이 뻘게진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방금 그 도형을 보았듯 비교적 큰 일각부터 위에서 아래로 수를 세는 것이지.....”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배각을 향해 물었다.
“너는 몇 번째 각이 가장 크다고 기억하고 있냐?”
배각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대답했다.
“바로 세 번째요.”
예청이 또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이런 재능으로 무공을 배웠는데 어째서 성과가 없다는 건가. 그 용형팔장이 강호상에서 역시 무공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물인데다 그가 오랫동안 용형팔장의 집에서 살았는데 어떻게 했기에 무공이 이리도 약하단 말인가?’
그녀는 의심이 크게 일어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라 생각해 다시 곰곰이 되짚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최고에 속하는 천부적인 재질을 갖고 있다. 그 용형팔장이 무엇 때문에 또 그가 멍청하다고 줄곧 말을 했을까?’
그녀는 백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그 속엔 분명 이상이 있음을 알겠지만 진상이 어떤지 그녀는 감히 함부로 억측할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후에 이것은 분명 확실하게 조사해봐야겠구나.’
배각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어쨌든 소년의 기분으로 호기심이 크게 일어 물었다.
“이 도형이 표시하는 것이 바로 칠살 가운데 삼살이 왔었다는 것인가요?”
예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렇다.”
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가 왔었다. 아마도 이제 더는 갈 수 없을 것이다.”
배각이 물었다.
“그가 기호를 남긴 것은 반드시 온다는 건가요?”
이때 그는 예청의 무공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자기가 신나게 구경할 수 있도록 북두칠살(北斗七煞) 모두가 오기를 바랬다.
그는 북두칠살을 알고 있다. 강호에서도 쉬운 무리가 아니다. 정말 전부 왔으면 했다. 아마도 냉월선자 혼자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청은 웃으며 말했다.
“온다고 했으니 분명 올 거야. 다만 언제 올지 모를 뿐이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또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보아하니 오늘 밤 우리가 잠자는 것은 틀린 것 같구나.”
약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오로지 문사 장삼만을 입고 있는데 이때 아래 자락이 흩어지며 갑자기 안쪽의 옥 같은 피부가 보이자 그녀는 얼른 배각을 바라봤다. 그가 탁자에 기대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이미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등불 아래에서 진짜 여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또 웃으며 방금 자기가 그의 면전에서 옷을 벗었던 정경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평소 외롭고 아름다우며 이기적이고 오만했다. 평상시 아무도 그녀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 이때는 왜인지 알지 못했다. 마치 마음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손을 쓸 때 불편하지 않도록 옷을 입고 싶어 조용히 움직였다. 배각은 이미 눈을 떴다. 원래 그는 여태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벌써 온 거 아닌가요?”
예청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돌아앉아라. 나는──”
배각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미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어 얼른 몸을 돌렸다. 두 눈은 담장을 단단히 주시하고 있어 그 등불이 반사되는 것을 알았다. 예청이 옷을 벗을 때의 모습이 담장에 비춰지는 것이었다.
이때 이 혈기방장한 소년의 내심은 정말 대해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참아냈다. 더 이상 생각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았다.
짧은 시간에 예청은 몸단장을 마쳤다. 바로 이때, 지붕 위에서 갑자기 매우 기괴한 소리가 났다. 아주 경미한 소리였다. 배각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예청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녀는 조용히 손을 흔들어 탁자 위의 등불을 갑자기 껐다.
그녀의 이 동작은 마치 쉽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만일 무공이 노화순청(爐火純青)의 경지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배각은 눈앞이 캄캄해 졌다. 등불은 이미 꺼졌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순간 그 사람이 이미 왔구나 생각하고는 얼른 거둬들이고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두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지도 않고서 창문을 바라봤다.
돌연 그는 몸에 온향(溫馨)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이 온향의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언제인지 모르게 예청이 이미 그의 곁에 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지 말고 말도 하지 말아라. 벌써 왔다.”
난과 같은 향기를 내뿜는데 사람을 취하게 하는 냄새였다.
배각은 더욱 소리를 내지 못했고 숨도 감히 크게 쉬지 못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몰랐다. 심장이 무섭게 뛰어 심지어는 예청도 다 듣고서 조용히 물었다.
“무섭냐?”
배각은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자기의 심장이 뛰는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찌 말을 꺼낼 수 있으랴.
갑자기 창문이 바람도 없이 스스로 열리고 한 줄기 인영이 창을 힐끗 비추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들어왔다. 분명 건방진 몸놀림이다. 방안에 있는 사람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이 인영의 체격이 몹시 컸으며 몸놀림이 아주 민첩했다. 바닥에 떨어지는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무공이 특출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찌 감히 이렇게 방자할 수가 있을까?
냉월선자는 암암리에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그 인영은 일개 노강호다. 바로 이 콧구멍에서 발출된 한줄기 극히 작은 소리였지만 그에게 벌써 경각심을 갖게 하였다. 신속히 사방으로 눈빛을 굴려보더니 방 안에 두 명의 검은 인영이 앉아 있음을 발견하고는 약간 놀랬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비록 오만방자 했었지만 정말로 일을 마주쳐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있다.
그는 약간 손을 내렸다. 이미 손에서 무기를 치우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방 안에 있는 친구는 이 막서(莫西)에게 이름을 밝혀주기를 청하오.”
냉월선자는 배각의 손을 당겨 그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표시했다.
막서가 또 말했다.
“친구가 어느 쪽 인물인지 입을 열지 않는다면 이 형제가 무례하게 군다고 탓하지 마시오.”
그는 오랫동안 강적을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조금 전에 경솔하게 난입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렇더라도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보았다.
이것은 당연히 그의 소홀함이다. 원래 그는 객잔의 이 방에서 유숙했었다. 조금 전에 냉월선자 예청과 배각이 객점에 투숙할 때에 그는 이미 예청을 보았다. 이 사람의 안광은 아주 매서워 한 눈에 예청이 남장 여인임을 알아챘다. 그는 호색한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의 손아래 얼마나 많은 양가집 부녀자들이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이때 예청의 성숙하고도 매력적인 부인의 풍치를 보았던 것이다. 비록 남장을 했었지만 이미 막서는 색에 빠져 정신이 나갔다.
그는 감히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 타초경사(打草驚蛇)가 두려워 슬쩍 뒤를 밟았다. 배각에 대해서는 반대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다른 여자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그는 색욕에 빠져 대담하기 그지없었고 게다가 무공실력도 특출했다. 그가 안중에 둔
사람이 냉월선자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삼경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남의 방에 침입한 것이다.
하지만 예청의 가벼운 콧소리는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바로 생각했다.
‘이 여인이 남장을 했지만 무공을 소유하고 있을 지는 아직 모른다.‘
머리를 굴리며 무림에 남을 즐겨하는 여자 몇 명을 한번 생각해 봤다. 마음이 크게 안정되었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무공이 모두 자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명성도 자기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만 가지 걱정에 하나를 놓쳤다. 바로 냉월선자를 잊었던 것이다. 이것은 냉월선자의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재차 이 연약한 여자가 무림에서 들리는 색변의 여살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냉월선자는 차가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 이름을 다 묻는구나.”
손을 조금 들어 탁자의 한 쪽을 단단히 잡아 암기로 사용하려 했다.
막서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암기를 사용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쌩’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놀라운 수법으로 뜻밖에 자기가 이전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즉시 그곳에서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신형을 빠르게 옆으로 기울이자 그 암기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쳐 그곳을 벗어나서 담장에 부딪쳤다.
막서는 가히 오랜만에 강적을 만난 셈이었다. 발출된 이 암기의 수법을 보고는 이미 말한 사람의 심오한 무공을 알았다. 뜻밖에도 자기가 평생 보지 못한 것이었다. 속으로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했다.
‘저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생각을 마칠 겨를도 없이 두 발을 굴러 몸을 솟구쳐 창문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냉월선자는 차갑게 웃으며 배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는 잠깐 기다리거라. 나는 곧 올 것이다.”
배각이 바로 대답하자 눈앞의 꽃인 냉월선자는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배각은 몰래 탄식을 했다.
‘나는 언제나 저런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몹시 피곤함과 배가 고픔을 느꼈다.
더욱이 배고픔은 그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는 이미 하루 종일 식사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밤이 깊어 조용한 이 시간에 거기서 뭘 찾을 수 있겠는가?
막서는 신형을 맹렬하게 몇 번 등락하더니 수 장 멀리 달아났다. 북두칠살(北斗七煞) 가운데서 그는 경공으로는 최고였고 무림에서도 삼살 막서의 경공이 꽤나 명성이 높았다.
그는 전력을 다해 달리면서 그 사람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매우 영리해서 견기이작(見機而作: 낌새를 보아 미리 변통함)하고 반응도 가장 빨라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곧바로 도주했다. 비록 작악다단(作惡多端: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많이 함)하였지만 출도한 이래 큰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바로 오늘 같은 날이라고 여겼다.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손해를 보지 않은 셈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냉소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는 마치 그의 등 뒤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는 크게 놀라 감히 몸을 돌려 쳐다보지도 못하고 발끝을 세우고 맹렬하게 뛰었다. 이미 좌전방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 냉소 소리는 끝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시종 그의 배후 부근에 있었다. 그는 신법을 다 펼쳤는데도 그 냉소소리는 여전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혼불부체(魂不附体: 혼비백산과 같은 말)해서 구슬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사람의 경공이 자기보다 훨씬 뛰어남을 알았다. 바짝 이를 악물고 신형을 빠르게 돌리며 손에 든 판관필로 뒤를 후려쳤다. 다급해서 죽을힘을 다했다.
그가 이렇게 돌아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받은 놀라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미미한 약간의 흰빛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별빛에 비친 먼 곳의 지붕을 제외하고 원래 뒤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곳에 그 인영이 있었다.
그가 다시 몸을 돌리자 그 냉소 소리는 심지어 뼈에 붙은 구더기와 같았다. 또 그의 뒤에서 웃음이 터졌다.
막서는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러한 공포는 분명 그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분명 그것은 자기의 목숨이 이미 남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람이 원한다면 자기의 머리를 떼어 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인 것이다.
막서는 위급한 상태에 처하자 도망갈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당연히 이것은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적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자구의 본능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아래로 내려 팔꿈치, 무릎, 어깨 그리고 다리 모두에 힘을 써서 뜻밖에도 연청십팔번(燕青十八翻)의 정교한 솜씨를 시전했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이런 솜씨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가장 좋은 방법이다.